고민보다Go! : 걱정만 하긴 꽤 젊은 교사들의 수업 에세이
≫ 김현진(전북 이리고)
-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이다. 성리학은 공론(公論)의 정치를 추구한다. 공론이란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옳게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공론의 주체는 양반 유생들이었다. 서원은 유림이 집단으로 상소를 올리고 지역 공론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공론장이었다. 서원을 기반으로 한 유림의 집단 상소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커져 수백 명에서 수천 명으로 규모가 커져갔다. 19세기 말부터는 1만 인 내외의 유생들이 연명한 집단 상소가 등장했는데 이를 만인소(萬人疏)라 한다.
�19세기 인민의 탄생 -민음 한국사� 일부
위의 글은 ‘위정척사 운동과 임오군란’ 수업의 탐구 활동을 위해 학습지에 제시한 글입니다. 정부 주도의 개화 정책에 대한 양반 유생들과 하층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위정척사 운동과 임오군란으로 나타나게 된 과정에 대한 수업이었습니다. 저는 이 수업에서 조선 사회 공론의 주체인 양반 유생들이 자신들의 공론을 왕에게 전달하여 바로잡으려고 한 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위정척사 운동이 단순히 ‘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자’는 철학적 사유에 그친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글을 쓰고, 이름을 적고, 두 발로 나아가 자신들의 신념으로 나라를 바로잡으려 한 실체가 있는 사건이었음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수업을 마친 뒤 학생들에게 ‘우리 학급 공론 모아서 전달해보기’라는 활동을 제시하였습니다. 저는 한 학기 4번 정도 역사 토론 활동과 이를 바탕으로 수업일기를 쓰게 하는 수행평가를 실시하는데 이 수업일기 영역과 연계하여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꼼꼼한 계획 없이 수업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해보면 괜찮을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다분히 즉흥적으로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이 활동은 각 학급 자치 활동 시간에 진행하게 하였고, 다음과 같은 공론 주제들이 나왔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어떤 주제가 눈에 들어오시나요? 학생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재밌을 때가 많습니다. 위의 공론 주제들도 그러했습니다. 어떤 주제는 감탄이 나왔고, 어떤 주제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활동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여러 가지입니다. 먼저, 학생들 중에는 공론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불편한 점을 해결하기 위한 건의사항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저의 의도는 학급이나 학교 차원에서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이나 모습에 대해 공론을 모아보라는 것이었는데 의도와 다르게 흘러간 반이 여럿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학생들 대부분이 교장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모든 학교의 정책이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왜 학생회가 아니라 교장 선생님에게 전달하려고 하냐?’라고 물었는데 학생들은 ‘학생회는 어차피 이야기해봤자 소용없어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실제로 3반만이 학급 대표를 뽑아 자신들의 공론을 교장 선생님께 전달하였는데, 조목조목 반박당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학급 대표 학생의 수업일기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쓴 이유는 역사 교사로서 현재 저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사라는 과목이 학생을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성장시키는데 그 어떤 과목보다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의 학생들이 역사를 통해서 배움을 얻기를 희망합니다. 과거 사람들의 생각, 행동, 결정 등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과거 사회는 어떠했는지, 차별은 없었는지 비효율적이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정의로웠는지 등을 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인생에서 지양해야할 점과 지향해야할 점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자신들의 일상에서 그 깨달음을 실천하였으면 합니다.
위정척사 운동과 임오군란 수업을 통해 과거 조선 사회의 주체였던 양반들이 서원이라는 공간에서 마주앉아 불합리한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하면서 작성한 만인소와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듯이 우리 사회의 주체이자 시민으로 성장할 학생들이 학교라는 자신들의 공간 안에서 마주보고 앉아 토론하고 이야기하면서 자기 주변을 좀 더 좋은 사회로 만들어가기를 바랬습니다.
#5
‘수업을 잘하고 싶다’는 김태정 선생님(2019 가을호 고민보다 GO 참조)의 마음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 역시 교사의 전문성과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수업이라 생각하였고, 능력 있는 교사로 성장하기 위해 여태껏 여러 책을 읽으면서 각종 모임과 연수에 참여하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임용에 합격했을 당시에 능력 있는 교사란 ‘풍부한 역사 지식과 그 지식을 판서를 통해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적당한 위트를 통해 수업을 자신 있게 이끌어가는 교사’라고 여겼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첫 학교의 아이들에게 그런 능력 있는 교사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은 중학교 때 반에서 거의 꼴지만 하여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탈락해서 온 경우가 대다수였기에 무기력감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를 나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아이들도 많았으며 학교폭력이나 교외에서 저지른 사건들로 인해 전학을 가거나 퇴학을 당하거나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교사의 지도보다는 선배나 힘 있는 친구의 주먹이 더 무섭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수업에 절망하고 학생들에게 절망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아이들에게 ‘역사와 나의 수업은 무엇일까?’였습니다. 그러면서 고민의 방향을 조금씩 수정해나갔습니다. ‘수업 시간이 재미있다고 느끼게 해주자, 주먹보다는 말이 더 무섭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자.’라는 결론 속에서 수업 방향의 큰 틀로 잡은 것이 ‘동기유발’과 ‘토론’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3년차 때 그 학교를 나왔습니다. 3년 간 학생 생활지도와 학교폭력 업무를 전담하면서 교직생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도망치듯 나온 거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습니다. 3년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교사가 그 학교에 있었다면 그 아이들의 상황과 수준에 맞춰 역사를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배움을 이끌어내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은 남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곳은 저희 지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입니다. 작년에 왔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그 때부터 능력 있는 교사의 정의를 다르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에서 ‘학생들을 옳은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수업을 하는 교사’로 말입니다. 이 변화에는 ‘교직 생활 동안 능력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을까?’, ‘나 자신은 옳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물음과 고민들이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교사인 나의 본업(本業)에 계속 충실하다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같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어 가면서 저의 본업(本業)을 충실하려고 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수업을 위해, 학생을 위해 밤낮없이 고민하고 계시는 전국에 있는 모든 역사 선생님들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냅니다. 아자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