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평화로
- 한일 갈등 수업 어떻게 할까?

수업이야기 - 수업사례2(2019 역사교사의 날)

≫ 박중현(서울 영등포여고)

* 본 수업 사례는 2019 역사교사의 날(장소 : 울산)에서 발표된 수업 사례임을 알려드립니다

* 본 수업 사례글에 주제가 된 수업 자료는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akht21.org/archive/post/117/32137


1. 주제 선정의 의미


2019년의 여름은 아베 정권의 한국 공격으로 뜨거운 공방이 진행 중이다. 한국의 시민들은 자발적 불매 운동, 여행 자제 등을 통해 이에 맞섰다. 이러한 일은 이미 21세기 시작부터 있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및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지칭되는 역사 전쟁이 있었다. 20세기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극복하고 새천년을 맞이하려는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이분법적 배타주의를 극복하고 우리들의 동아시아를 만드는 것이다.


유럽에서의 화해에는 독일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자신들이 침략했던 프랑스, 폴란드 등과 앞장서서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고 진심으로 사죄하였다. 빌리 브란트 수상이 바르샤바의 유태인 집단 거주지였던 게토 지역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은 냉랭한 가슴에 훈기를 돌게 했다.


당연 동아시아 화해는 일본 정부와 국민이 나서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역주행을 계속하며 치유를 어렵게 하고 있다. 1980년대 말 이후 버블 붕괴에 따른 일본 경제와 자민당 정권이 몰락하였다. 놀란 보수 우익들은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면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자 하였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부정, 역사교과서의 왜곡, 야스쿠니 참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뒤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있기 때문에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 중심으로 위로와 배상을 촉구함과 함께 피해자들도 화해 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도 해결의 주체로서 나서야 한다. 이런 화해 노력을 통해 갖게 되는 도덕적 품격, 국제 사회의 지지, 자부심 등은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다. 일본으로부터의 물질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진정한 사죄를 요구한 황금주, 김복동 할머니들이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해의 길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아베 정권의 폭거에 대한 저항은 비단 한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많은 양심세력들은 한국 사회가 나서기 이전부터 강제 동원 피해 문제를 밝히려 노력하였고, 이들은 단체를 만들고 기금을 조성하여 재판을 지원하였다. 그들은 일본에서 일고 있는 혐한 시위에 적극 저항하고 있으며, 아베 정권의 조치와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비판하며, 동아시아와 함께 평화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아베와 일본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와 함께 얼마 전 서울의 한 구청이 ‘NO JAPAN, BOYCOTT’을 외쳤을 때 시민들이 보여준 질타는 성숙한 우리의 모습이 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국역사교사 모임에서도 이와 관련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수업 자료와 구상을 홈페이지에 공개에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한 바가 있다.1) 우리 모임의 일본 파트너인 역사교육자협의회에서는 이미 대법원의 징용판결이 있은 직후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은 과거 징용공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라’는 장문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는 일본 NHK의 여론 조사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해 69%가 ‘납득할 수 없다’고 반응을 보인 후 나온 것이었다. 또한 2019년 여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으로 갈등이 첨예화되었을 때 일본 지식인들은 7월 25일 ‘한국은 <적>인가?’라는 성명을 통해 지식인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1) 성명서의 내용 중요에 ‘NO JAPAN, NO ABE’라는 문구에 부적절함을 본인이 지적하기는 하였지만 성명서의 전반적인 기조는 우리 모임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학교에서의 일본 관련 역사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해 돌아보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미디어에서는 한국의 역사 교육이 ‘반일 교육’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생각이 반일적으로 형성된다고 비판한다. 정말 학교 교육이 ‘반일 교육’이라면 문제라 필자는 생각한다. 그 전제는 ‘일본 제국주의자’, 아베로 대표되는 우파 정치가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과 일본 일반 시민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의 교사 모임 성명서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 인터넷 사이트에 ‘일본인 친구를 둔 한국인으로서…’라는 글이 올라왔다. 일본 학생과 함께 다니는 학교의 역사 선생님은 ‘완벽한 반일파’ 분이라고 했다. 2005년 당시는 독도 관련해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이 일본, 일본놈… 하며 분기탱천한 수업을 하는데 일본 학생(요코)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이 어두워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학생의 마무리는 “일본 내 극우파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한국에 머무는 일본인들이 무시당하고 가슴 아파 하는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우리네 수업에서 이런 적은 없는 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일본인을 욕하지 말자는 이 친구의 소리에서 나아가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과 손을 적극적으로 잡아야 하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교육에서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수업에서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 교류를 하는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일본의 교사들만이 아니라 일본의 시민과 접촉을 넓혀가려는 것이다.


교육부, 동북아역사재단도 이번 한일 갈등에 즈음하여 학습 자료를 만들어 보급하였다. 교육부의 자료는 교육청 공문을 통하여 각급 학교에 전달되었고,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제작한 것은 재단의 홈피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이러한 일들이 계기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기관의 면벌부 성격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한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실을 기초로 하고, 평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목표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내각부에서 매년 조사하는 세론조사(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감정이 가장 좋았던 해는 2011년으로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62%였다. 연말을 마무리하는 NHK 홍백가합전에 한국 출신 가수가 3팀 출현했다. 그러나 2012년 호감도는 39%로 떨어졌고, 홍백가합전에는 한국 출신 가수가 한 팀도 등장하지 않았다. 홍백가합전 출전 가수는 여론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일본 일반인들의 정서를 알 수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천황의 사과 발언 등으로 감정으로 극도로 악화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인접한 나라들 간에는 대개 경우 감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장기간의 역사 속에서 전쟁과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우열 경쟁으로 나타나 스포츠 경기도 과열되곤 한다. 그러나 감정적인 문제를 떠나 가까운 이웃끼리 서로 장점을 취하면 반도체에서 보듯이 서로가 발전할 수 있다. 화해란 미래를 위한 것이지만 과거를 잊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더욱 확실히 하고 그 바탕 위에 현재를 다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수업 자료는 동북아 역사재단의 계기 수업 자료를 활용하여 진행하였다.(본의 아니게 일본 TBS방송에서 취재도 함께 이루어졌다.)


2. 수업의 전개


가. 수업 지도안

나. 수업 전개상의 특징


1) 강제 동원 판결문의 의미

수업의 도입부에 사용한 대법원 판결 동영상은 대법원 홈페이지에 있는 것으로 대법원 판결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2)아래 링크

https://www.scourt.go.kr/supreme/media/MediaActivityViewAction.work?gubun=706&pageIndex=2&pageSize=12&seqnum=66&searchWord=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소영)은 2018. 10. 30.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신일철주금)의 상고를 기각하여, 피고가 원고들(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 시켰음.


2) 강제 동원의 진상 : 여운택 할아버지 증언

여운택 할아버지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의 핵심 원고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2013년 파기 환송된 서울고법에서 승소한 후 얼마 안 돼 사망하였다. 이 재판은 여운택, 신천수 두 분의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운택 할아버지의 동영상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처음에 일본에 가는 방법이다. 그는 평양일보에 난 기사를 보고, 지원해서 일본의 회사로 갔다. 지원해서 갔기 때문에 이것은 자발적이 아니냐고 할 수 있으나 강제동원의 유형에는 국민 징용과 함께 할당 모집, 관 알선 등도 있다. 할아버지는 모집에 의해서 갔으나 처음에 약속과 달리 강제로 구금되다시피 혹독한 환경에서 근무하였고, 이후 징용령에 의해 징용이 된다.


명찰이 달라지고, 징용에 의하게 되면 근무지를 마음대로 옮겨 다닐 수 없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강제로 저금을 내도록 하여 한국으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는데 저금 통장을 받지 못했다.


3) 판결의 과정

1997년 신천수, 여운택은 일본에 제소 하였으나 모두 패소 하게 되었다. 2005년 한일기본조약과 관련한 문서 공개 후 한국의 법원에 제소 하였다. 1심, 2심에서는 패소 하였으나 2012년 대법원에서 이를 다시 고법으로 다시 심의하도록 하였다. 이에 고법에서는 2013년 원고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보다 앞선 2011년 8월 30일 헌법 재판소는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3조 부작위 위헌 확인(2011.8.30. 2006헌마788)’에 따라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가 ‘부작위로 인하여 청구인들에게 중대한 기본권의 침해를 초래하였다 할 것이므로,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피고인 신일본주철 등이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양승태 대법원에서는 6년을 끌다 2018년 10월 김명수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를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2011년, 2012년이라는 시점에 주목하여 헌재와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앞서 생각열기 부분의 동영상에서도 나타나듯이 미지급 임금이나 저금 등에 대한 손해 배상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청구권 협정과 별개로 일본의 불법적인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4) 혐한과 강제동원의 진상을 규명하는 사람들

자료 화면으로 혐한 시위 장면을 넣었다. 방송에서는 혐한만을 부각하는데 비해, 혐한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일본 사회에서 노력하는 그들이 바로 화해를 위한 파트너이고, 그들을 확산하는 것이 교류의 필요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법안을 만들도록 하였고, 혐한 시위를 저지하고, 약화시켰다. 언론에서 혐한만을 통하여 민족 감정에 호소함으로 자신들을 애국자로 카무푸라치(camouflage;눈속임)하고, 클릭 수를 늘리려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으로 강제 동원의 진상을 파악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한 단체와 인물 중에 일부를 뽑았다. 이외에도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이러한 활동에 참가하였다. 특히 인물과 단체에서 일본 측의 것을 뽑은 이유는 현재 한일 간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반일 감정이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부나 시민 단체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던 시절부터 일본의 시민 사회는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의 활동은 피해자들의 증언, 피해자들의 재판 지원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를 통해 일본 사회에 양식 있는 사람들의 참여와 이해의 확산에 노력하였다.


한국의 시민 단체나 인물들보다 일본에서 더 먼저, 강력하게 이런 활동을 전개하였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과 함께 인권을 목표로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점을 수업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시민 사회도 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이러한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시민 단체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그 수효가 너무 많고, 어느 특정 단체만 싣게 되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


하야시 에이다이씨는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며 많은 증거와 자료를 수집하여 기록을 남기고 증정하였다. 계명대에서 강의도 하였던 후쿠도메 노리아키씨는 강제동원과 관련한 시민운동을 적극 전개하였고, 강제동원진상네트워크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이러는 과정에서 후쿠도메씨는 병은 얻어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다. 학생들의 의견


학생들의 의견은 크게 3개 부류로 나뉘어 진다. 명확하게 분류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분류하였을 때 두 번째 의견이 50% 가까이를 보이고, 나머지를 다른 두 의견이 차지하였다. ① 일본과는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 ② 일본의 사과를 전제로 과거를 회복해야 한다. ③ 한일 관계가 좋아지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직접 학생들의 소리로 들어본다.



① 일본과는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

- 김○○ : 우리나라가 더 많이 피해를 본다 해도 계속 대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사과하지 않고 있고,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냐는 식으로 수출 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혐한 시위를 하는 것을 봐서 우리나라를 아예 무시하는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홍○○ : 현재 일본 정부와 언론 등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강제 동원에 대해 사과는커녕 적반하장 격으로 우리나라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가 입장을 바꾸어서 강제 노동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자신들의 과거에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 국민에게 바른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자신들의 나라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② 일본의 사과를 전제로 과거를 회복해야 한다.

- 윤○○ : 일본이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면 우리나라도 그 사과를 받고 나빠진 관계가 점차 좋아지고 이 관계를 회복했으면 좋겠다. 내 생각은 일본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떳떳하게 자기들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시위를 하고,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 양○○ : 한일 관계가 앞으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나라를 비판하는 그러한 모습이 보여짐에 따라 우리나라와 대립하는 것 같다.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 잡음으로써 우리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일본과 우리나라 공동으로 프로젝트 등 친교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 윤○○ :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은 일본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만 일시적인 것으로 하고 앞으로는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삼가며 역사왜곡 문제 등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일본의 혐한 시위가 계속되더라도 그것에 동요하지 않고 왜국된 역사를 바로 알리는 집회 등을 원래 하였던 것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③ 한일 관계가 좋아지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 김○○ : 나는 서로가 존중하는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존중하게 되면 서롤 얼굴 붉힐 일도 없고 현재 한국을 다녀간 일본인들에 의하면 한국을 응원하고 후기도 너무 좋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아베에 대한 일본 시민들의 불신도 커져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들에게 더욱더 잘해주어 일본 시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 일본도 역사교육에 힘을 썼으면 좋겠다. 현재 혐한이 생긴 이유도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라 생각한다.

- 강○○ : 너무나도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 서로 돕는다면 일본과 우리나라 모두 좋은 일이다. 일본인 모두가 혐한을 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며 서로 나쁘게 지내서 좋은 게 없다.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양○○ : 양국 간의 이해와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지속된 역사적 감정 때문에, 일본은 역사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태가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노력만이 아니라 상호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각 개인이 진실을 모른 채 과장된 언론의 말이나 선동에 휩쓸려서도 안 된다.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한일 관계의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적으로 공감으로 얻을 수 있는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수업을 통해 느낀 생각은 학생들의 역사인식에는 지금 수업에서 알게 된 것만이 아닌 이제까지 학교 안팎에서 얻게 된 의식적・무의식적 학습이 어느 정도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세 부류 학생들 모두에게서 국가와 국민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보이긴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그 속에 있는 시민의 역할에 대하여도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다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여 수업을 진행할 필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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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역사 화해’ 수업 실시 장면(2019.09.24.) ▲(좌) 일본 TBS방송에서 나온 화면(2019.09.30.) '반일? 한국 역사교육의 실정'이라는 타이틀이 달려있다.




3. 마무리


현재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의 날을 즈음하여 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나비기금을 모으기 위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그러한 일들이 왜 필요한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추진하는 주최자도 잘 모르고 있었다. 교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할 의무도 느꼈다.


학생의 의견이나 교사모임의 성명서에도 나타나듯이 우리가 종종 범하는 잘못 중의 하나가 인식의 단위가 국가와 국가라는 것이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만 문제를 본다면 화해의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국가를 해체할 수는 없더라도 각각의 영역에서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의 주장이 식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된다면 결국 정치가들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지난한 일이라도 역사교육에서도 대증적 활동이 아닌 지속적으로 평화와 인권의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이들과 함께 닫힌 국가의 틀에서 열린 세계로 호흡할 때 보편적 세계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고 꼰대들의 것이 아닌 학생들의 동아시아를 건설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유럽 사회 못지않게 고대 이래 많은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적 연원을 갖는 정체성부터 최근에는 음식문화, 가요, 영상, 애니메이션, 스포츠 등 각종 영역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문화의 공감대에서 시작하여 생활과 역사, 나아가 정치, 경제의 분야까지 상호 교류와 협력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동아시아를 학생들이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평화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때 진정한 역사 화해가 가능할 것이다.


(수업을 취재한 TBS방송에서 방영된 영상이 도착하였다. 제목이 “한국, ‘반일’? 역사교육의 실정은?”이었다. 위안부 집회에 초등학교 학생이 참여한 것, 서대문 형무소를 통한 대중의 역사교육, 학교 교과서에 나온 일본식 성명 강요 등을 통해 역사교육이 ’반일‘ 감정의 뿌리라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다만 프리 허그를 실시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시민들 중에는 관계를 바람직하게 가지려는 노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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