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적 역사수업,
세계 역사에서 길 만들기

수업이야기:수업사례1 - 2019 역사교사의 날

≫ 박혜정(경기 정평중)


* 본 수업 사례는 2019 역사교사의 날(장소 : 울산)에서 발표된 수업 사례임을 알려드립니다

* 본 수업 사례글에 주제가 된 수업 자료는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www.akht21.org/archive/post/117/32138




1. 3년 동안 우리는…


2016년 7월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주최한 ‘역사과 토론식 수업을 위한 워크샵’을 계기로 우리 논쟁적 역사 수업 모임이 만들어졌다. 지난 3여 년의 시간동안 다양한 수업 방식, 역사과에서 논의되고 있는 논쟁들, 외국의 수업 사례, 철학 및 역사교육론 등에 대해 함께 공부하였다. 공부한 것을 자신의 수업에 녹여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모임 선생님들 간에 공유된 몇 가지 원칙이 생겼다.


① 내용 지식의 전달에 집중하기 보다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보편적 가치를 녹여내는데 좀 더 중점을 두자. 물론 이것이 근현대사 수업에는 적합할 수 있지만 전근대사 수업에서는 연결 짓기 힘든 점, 내러티브로서의 역사가 갖고 있는 매력이 충분히 있으므로 가치를 끌어내기 위해 억지스러울 필요는 없다는 점, 사회과의 다른 교과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을 굳이 역사과에서 ‘어렵게’ 할 필요가 있겠냐는 점 등은 늘 염두에 두려 한다. 그렇지만 역사의 방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지식을 활용하여 다양한 관점을 나누고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자는 것이다.

② 상반되는 두 가지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논쟁을 하는 방식보다는 계층, 계급, 입장에 따라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고 다원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찬성과 반대, 긍정과 부정, 옳고 그름을 넘어 그 안에서도 성별, 이해관계, 처한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고려하여 생각하게 함으로서 역사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⓷ 앞선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역사 내용 공부 자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교사가 풍부하게 공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을 때 학생들의 활동과 생각도 다양할 수 있을 것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사고를 전개시키며 바람직한 가치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시간, 여러 공부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공감대를 형성한 동료 교사가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2018년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2019년의 공부 목표를 새롭게 정하였다.


① 역사 내용에 대한 공부를 심도 깊게 하자.

② 모임 구성원의 학교 급별이 다르고 담당 과목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공통된 요소가 무엇이 있을까. 새 교육 과정에서 세계사가 강화되기도 하고(중학교), 세계 근현대사는 한국사의 근현대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므로 세계사의 근현대사 부분을 공부하자.

③ 서양의 입장이 아니라 침략을 받아 정체성에 혼란을 겪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입장에서 세계 근현대사를 이해해보도록 하자. (프랑스와 알제리의 침략과 해방의 역사, 일본과 조선, 대만의 역사,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역사 등)


이와 같은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제일 처음 함께 읽은 책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프란츠 파농)이다. 흑인의 정체성 문제를 심리학 차원에서 분석한 책이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서양, 남성, 중심지(도시)의 입장에 너무 익숙해 있다는 것, 우리 안에 차별의 의식과 언어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깨닫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계사를 공부하기에 앞서 우리가 가져야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어, 우리의 교재로 최종 채택된 책은 『하나일 수 없는 역사』(르몽드 디플로마티크)’였다. 이 책을 기획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민주주의, 평등박애주의, 환경보전, 반전평화 등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독립 대안언론이라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하나일 수 없는 역사』는 그 언론사가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1830년부터 2008년까지의 역사를 다소 진보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책 자체가 논쟁성을 품고 있고 여러 질문을 한다. ‘자유주의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인가, 파시즘은 어떻게 탄생했고, 세계적 규모의 전쟁은 몇몇 괴물의 잘못이기만 한가, 식민 통치가 긍정적 결과를 남겼다는 말은 맞는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이념인가’ 등이 그 예이다.1)


1)하나일 수 없는 역사, 김육훈 선생님의 해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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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함께 읽으며 이 시기 역사를 공부하였고 논쟁적 수업을 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였다. 우리의 공부 중에 언급된 논쟁 주제는 대략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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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선생님들이 근무하는 학교와 과목이 다양한 상황에서 이렇게 공부한 내용을 자신의 수업에 모두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본인은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마침 이 부분을 가르치므로 공부한 내용을 학생들의 학습지와 학생 활동 발문에 적용시킬 기회가 있었다. 본인의 올해 학습지와 그것을 바탕으로 수업된 학생들의 활동을 이곳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3. 그래서 나의 수업은,


현재 교육과정에서 3학년 2학기 학생들은 영국혁명과 산업혁명에서 시작하여 근대국가의 출현, 각 국의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성립, 제국주의 경쟁과 1,2차 세계 대전을 거쳐 냉전과 현대 사회의 과제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본인이 근무하는 학교는 1학기 역사 시간이 주당 3시간, 2학기는 주당 2시간이라 이런 진도가 가능하다.)

서양 뿐 아니라 세계의 역사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되는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성립, 제국주의와 침략, 러시아혁명과 공산주의의 형성에 대해서는 각각 3~4시간을 들여 모둠 수업을 진행하고 글쓰기를 하게 했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한 시간 동안 교사의 강의, 짧은 동영상, 길지 않은 읽기 자료, 교사의 질문과 학생의 글쓰기로 이루어졌다. 그 중 강의와 학생 발표 수업을 먼저 소개하고 이후 모둠 수업으로 이루어진 수업에 대한 소개를 하려고 한다.


(1) 강의식 수업과 학생 발표


1) 프랑스 혁명 평가하기

프랑스 혁명은 학습 내용이 방대하고 용어나 인물의 이름이 낯설어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단원 중 하나이다. 내용 공부로 이미 지친 학생들에게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혁명의 의의에 대해 간단히 점수를 부여해보도록 했다. 프랑스의 여성 운동가 올랭프 드 구주와 여성 참정권에 대한 간단한 읽기 자료를 제시하고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으로 상징되는 프랑스 혁명에 점수를 부여한다면 몇 점을 부여할 수 있을까?’라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1점이나 2점을 준 학생들은 재산에 따른 차별, 성별로 인한 차별, 식민지 독립에 대한 프랑스의 태도에 비추어 낮은 점수를 주었다. 반면 3점과 4점을 준 학생들은 다소의 한계가 있더라도 인권 신장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 평민들에 대한 기본권 부여의 첫 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높은 점수를 주었다. 학생들 스스로 혁명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 말할 수 있었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라는 것이 중점을 두는 기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19세기 유럽: 빈체제와 저항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힘겹게 넘고 나면, 19세기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나폴레옹 몰락-빈체제의 수립과 저항(7월 혁명, 2월 혁명과 유럽혁명)이라는 높은 산을 또 넘어야 한다. 급격한 변화와 낯선 인물의 등장으로 가르치는 교사에게나 배우는 학생들에게나 어려운 단원이다. 이 부분에서는 ‘내가 이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인물을 지지했을까?, 또 어떤 인물을 싫어했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메테르니히, 루이 필리프, 마르크스, 루이 나폴레옹을 후보로 제시했다.


학생들의 글쓰기와 발표를 진행한 후 생각할 지점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⓵ 학생들은 “내가 여성이라면”, “내가 평민이라면”, “내가 귀족이라면”, “내가 노동자라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성별이나 계급을 정하고 글쓰기를 진행했다. 투표가 계급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⓶ 학생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은 것은 4번 루이 나폴레옹이었다. 다른 인물에 대한 자료는 교과서를 활용하여도 충분한 편이었으나 루이 나폴레옹의 경우에는 교사가 직접 자료를 찾아 소개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후보의 긍정적인 점이 더 부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⓷ 2월 혁명을 겪은 당시의 프랑스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는 부족했지만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왜 그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결과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투표의 결과가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는가’, ‘그 인물이 갖고 있는 역사적 한계를 짚어낼 수 있었는가’와 같은 이야기를 녹여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⓸ 싫어했던 후보를 대체로 1번(메테르니히), 2번(루이 필리프)으로 정한 점에서 그 인물들이 갖고 있는 역사적 한계나 문제점들을 학생들이 짚어낼 수 있던 점은 긍정적이었다. 변화하고 있었던 유럽의 상황에서 보수·반동적 입장을 갖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탄압하는 구시대적 인물의 한계를 학생들의 발표로 수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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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국 참정권 확대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과 참정권 확대를 공부하며 여성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을 포함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에밀리 데이비슨의 급진적인 행동을 어떻게 평가 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결론적으로 이 질문은 좋지 않은 질문이었다. 시대를 앞서 나가며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적인 시도를 하거나 절박한 요구를 한 사람들의 노력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좋지 않았다. 학생들이 여러 가지 근거를 대며(사람들이 놀랐을 것 같다. 경기하는 선수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관람하는 사람들의 권리도 있다 등등) 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들에게 교사가 직접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에 불편했다.


이번 울산에서 진행된 역사교사의 날에 이 발표를 하며 고민을 나누었더니 발표 후에 한 선생님(반짝이는 신규선생님이셨는데, 성함을 모른다.)이 오셔서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에밀리 데이비슨 사건이 일어난 후 영국의 언론은 그 사건의 배경이나 그들의 요구에 대한 기사를 쓰기보다는 다친 말이나 선수에 대한 보도를 집중적으로 했는데, 이런 언론의 태도에 대해 평가를 하게 하면 어떨까’하는 말씀이었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내용을 보완해서 새로운 학습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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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독일의 통일


이제 분열하였던 독일이 통일하며 등장한다.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으로 특징지어지는 ‘작금의 문제는 연설과 다수결이 아닌, 철과 피로써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라는 연설과 그로 가능해진 독일의 통일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고 접근해야할지가 늘 어려웠다. 공부를 하다 보니(주로 검색이다) 그가 노동시위의 과격화를 막을 의도로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권력을 잡는 빌헬름 2세에서도 비슷한 면모가 발견되어 그 둘을 함께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학생들에게 물었다. ‘국내적으로는 사회보장제도를 만들거나 적극적인 노동인권 정책을 펼친 인물이다. 반면에 대외적으로는 통일을 위한 전쟁이나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쟁을 실시하였다. 이런 지도자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제기도 좋지 않은 발문이었다.


전쟁의 규모나 시대적 상황, 현재 독일에서의 평가를 두고 보았을 때 그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 또한 그런 지도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전쟁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해서 반전평화를 역사 수업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교사의 생각과 어긋나기에 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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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1차 세계대전: 전쟁에 나갈 의무, 거부할 권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경쟁은 모둠 수업으로 진행했다. 아시아·아프리카의 저항과 근대화를 위한 노력은 그 모둠 수업에서 짧게 짚고 넘어 갔다. (나름대로 교육과정 재구성이지만, 서구 중심의 역사를 온 몸으로 실현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은 든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자료를 찾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과정을 너무 잘 쓴 논설이 있어서 감탄했는데 그 글의 결론이 내 예상과는 다르게 맺어져서 놀랐다. 글의 결론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독일의 손아귀 속에 조국의 운명이 맡겨지는 것보다는 처절한 전쟁터로 달려 나가 희생될 것을 각오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한 극한의 임무를 흔쾌히 담당했다. 이들의 희생 때문에 오늘의 영국과 프랑스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전쟁터의 처절한 모습은 국가와 전쟁 그리고 국민의 임무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나라가 요구하는 극한의 임무를 감당하겠다는 젊은이가 많은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강대국이다.”(가)였다.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한 끝에 이런 결론이 나오다니,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좀 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새롭게 찾은 자료의 핵심 내용은 “독일에서는 탈영병을 위한 기념비 건립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기념비는 1,2차 대전 때 탈영한 독일군인 뿐 아니라 모든 전쟁의 탈영병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평화의 의미 중 하나가 ‘전쟁 없는 세상’이라고 했을 때 그 전쟁을 막는 가장 쉽고 단순하지만 보통 잘 상상하기 어렵기도 한 방법은 군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나)이었다.

자료를 찾기는 했지만 발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가)와 (나)를 읽고 핵심 주장을 파악하는 활동 자체를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여럿 있었기에 내용을 파악하게 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그리고 (가)에 대한 적극적 지지, 소극적 지지, (나)에 대한 적극적 지지, 소극적 지지로 구분하여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름의 근거를 갖고 발표되었다.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의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전력의 확보를 위해 (가)를 적극적·소극적으로 지지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지만 ‘전쟁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되어야 하고 오히려 그들이 좀 더 적극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며 (나)를 지지하는 의견도 동등하게 발표되었다. ‘평화로운 방법, 이를테면 정보력, 신기술 등으로 강대국을 가려야 할 것이다. 나라가 요구하는 극한의 임무를 감당하겠다는 젊은이가 많은 나라는 강대국이 아니라 전범국이 될 뿐이다’란 학생의 의견은 교사가 입으로 말할 때 보다 울림이 컸다. 발표하는 모든 학생이 논거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발표했고 누가 누구를 설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 생각이 공존하며 소수의 의견도 존중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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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공황과 전체주의: 사진전

『하나일 수 없는 역사』 책을 보다 보면 대 공황기에 대한 다양한 사진 자료를 볼 수 있다. 교사가 찾아서 수업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학생들 스스로 자료를 찾아 다양한 사진으로 사진전을 열어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3학년은 이 부분 진도가 나갈 무렵이 수행평가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평가와 연결 짓기가 어려웠고 이즈음의 학생들은 이미 그런 의욕이 없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사가 상징적인 몇 장의 사진을 주고 스마트폰을 활용해 자료를 찾게 하는 활동을 했다. 방대한 자료를 학생들이 검색하고 걸러내는 것으로도 교사의 제한적인 강의의 지루함을 깰 수 있었다. 데이터 사용의 한계라는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이 있어서 교과서의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찾아 쓰게 하기도 했다. 마침 미술 교과의 작품 논평 평가 주제가 ‘게르니카’여서 예기치 않은 융합수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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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참상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20년 만에 어떻게 또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게 될까? 늘 의아한 부분이고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일 수 없는 역사』 에서 전쟁의 참상을 알려주는 여러 수치들을 학생들에게 읽기 자료로 제시하기로 했다. 자료를 찾는 것보다 그것을 활용한 매력적인 질문을 만들어내는 일이 늘 더 어렵다.


2가지 질문을 했는데, 1번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가(인물)를 2개 꼽아보고 그렇게 정한 까닭을 쓰라”이고 2번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인류에게 남긴 교훈과 과제를 2가지씩 정리해보자”였다. 질문이 너무 뻔했고 학생들의 대답도 1차 세계대전에 대해 반성하지 않은 독일과 히틀러의 책임, 또는 무리하게 전선을 확대한 일본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된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크다, 이상한 지도자를 뽑으면 안 된다 등의 발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몇 개 학급 수업에서 반복되는 학생들의 발표를 듣다가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책임이 독일에게 있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히틀러에게 있는가, 아니면 그를 지도자로 뽑은 독일 국민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가’였다. 둘의 책임에 대하여 그 책임을 히틀러:국민=( : ), 이렇게 비율로 물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히틀러:독일국민 = (7:3)이라고 한 학생은 ‘히틀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고 패전 후 독일 국민들이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겠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독재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크게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도 3정도의 잘못이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썼다. (5:5)의 비율이라고 한 학생은, ‘반인류적 사상을 내세우며 끔찍한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나 이런 히틀러를 지지하고 지도자로 선출한 독일 국민들 중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고 똑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4:6)의 비율로 국민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 학생의 발표도 인상적이었다. ‘각자 자신의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생각하는 방향도 서로 다를 수 있어서 히틀러의 잘못된 의견도 존중해 줄 수 있으나 이에 대한 결과를 많은 국민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지지했던 국민들의 잘못이 조금 더 크다고 생각 한다.’ 이 학생의 대답이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역사 수업이었던 것 같았다. 다양한 생각을 표현하고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학생들의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첫 번째 질문보다 두 번째 질문이 나에게는 더 좋은 질문이었다.


<질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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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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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둠 수업과 학생 활동


1) 산업혁명

산업혁명과 관련된 읽기 자료를 모둠원들이 나누어 읽고 서로가 읽은 내용을 공유한다. 읽은 자료를 바탕으로 산업혁명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정리한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둠원들 간에 나눈다. 모둠에서 이야기된 것들을 모둠의 발표자가 반 전체에게 발표하고 그 발표를 듣는 학생들은 경청학습지를 작성하며 발표를 듣는다. 수업했던 내용과 관련된 글쓰기 과제를 하는데 이것이 첫 번째 수행평가였다.


산업혁명의 결과 발생한 가장 큰 문제들로는 장시간·저임금 노동, 아동노동과 같은 노동 문제, 환경오염과 자연 훼손을 주로 꼽지만 학생들은 농촌 문제, 청결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언급한다. 해결 방안으로는 관련법을 제정한다는 의견이 가장 손쉽게 나오지만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가 노동자를 위한 법을 제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교사가 언급하기도 한다. 이후의 역사가, 열악한 상태의 노동자가 끊임없이 투쟁하는 역사이기도 하므로 앞으로의 공부를 위해서라도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의 노동자의 상황을 확실히 학생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여겨 이 부분에 시간과 공을 들인다.


이번 논술 문제는 “산업혁명의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을 서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쓰라”는 비교적 단순한 문제였다. 문제를 조금 더 예리하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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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국주의

2학기 첫 시간에 우리가 배울 것을 훑으며 제국주의 풍자화를 학생들과 함께 본다. 이 시대를 풍자하는 다양한 그림들이 많기에 그것을 공부하여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고 학생들도 집중해서 본다. 그 그림들 중 8개를 출력 후 코팅하여 4등분을 하고 학생들에게 제각각 배부한 후 그림 조각을 맞추며 모둠을 구성한다. (같은 모임의 김지연 선생님이 주신 아이디어이다.) 이 풍자화를 활용한 학생활동과 수행평가를 궁리해보곤 하지만 아직 좋은 아이디어를 찾지는 못했다.


제국주의를 주제로 수행평가를 하겠다고 계획은 세워두었는데 좋은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고 3학년 입시와 관련하여 정해진 수행평가 마감 일자는 다가온다. 그래서 올해는 급한 대로 백지도 활동을 했다. 모둠원들 중 2명은 교과서의 여러 지도들을 활용하여 열강들과 그 국가들의 식민지를 각각 같은 색으로 칠하는 활동을 한다. 그리고 2명은 각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의 저항과 근대화 노력을 백지도에 요약하는 활동을 한다. (내용이 방대하므로 교사가 미리 포함시켜야하는 핵심 요소를 정해 준다.) 한 시간 동안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학생들 색칠공부와 글쓰기 연습밖에 안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학생들이 힘들다고 투덜거리면 “이거 시험범위로 넣어서 다 외워야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라고 얘기해 주니 수긍했다.


제국주의 시대를 땅따먹기 하듯 색칠한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각 국가의 지리적 위치를 학생들이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을 한 번 짚어줄 수 있다는 점, 당시의 세계 분할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도 있었다. 이와 관련된 얘기를 모임 선생님들과 나누던 중, 신경래 선생님이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아시아·아프리카의 저항과 근대화와 관련된 인물(이를테면 조선의 전봉준, 태국의 쭐랄롱꼰, 필리핀의 호세 리살과 같은)의 사진과 그의 활동을 정리한 후 스티커 용지에 출력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백지도에 붙이게 하는 활동은 어떻겠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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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활동을 한 후 제국주의와 관련된 글쓰기를 진행했고 이것이 2번째 수행평가였다. 제국주의 일반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고 식민지인들의 입장에서 제국주의를 비판하라는 주제였다.


3) 사회주의


한국의 1920년대를 가르치다보면 사회주의 사상을 갑자기 가르쳐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마주치게 된다. 사회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모른 채 갑자기 사회주의 사상을 이해시키기도 쉽지 않고 그 사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사상을 기반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의 역사적 의미를 학생들에게 설득시키기도 어렵다. 그 부분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 세계사 근현대사 수업이 분명히 선행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세계사에서 이 부분을 가르칠 때에도 갑자기 등장하는 러시아의 상태와 2월 혁명과 10월 혁명, 사회주의 사상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볼셰비키, 코민테른, 소비에트 등 용어도 어렵다.) 또한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는 자료를 찾는 것도 어렵고 교사 스스로 자기검열 같은 것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을 갖고 자료를 찾던 중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어 학생들에게 읽기 자료로 제시했다. 자본주의의 문제, 그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꾸준한 투쟁과 러시아혁명, 사회주의 국가는 실패했지만 그 사상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 등에 언급한 읽기 자료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에 대해서도 틈틈이 언급하려고 하지만 늘 미흡하다.


노동자들이 꾸준히 투쟁한 까닭, 현대 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주의적 성격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만들어 모둠원들 간에 토론을 진행하고 학급 전체를 상대로 발표하였다. 이것은 따로 글쓰기는 진행하지 않고 포트폴리오 항목으로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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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업 평가와 앞으로 할 일.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까지로 수업을 마무리하고 학생들에게 나의 수업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상단에는 내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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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에는 학생들이 답해야 하는 질문을 간단히 했고 다음과 같은 다양한 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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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마지막의 답변을 한 학생도 저렇게 성의 없게 쓸 학생은 아닌데 싶어 추후에 개인적으로 역사가 그렇게 어렵고 귀찮았냐고 물어보았다. 공부에 대한 여러 가지 회의가 들며 자신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2학기를 보냈기에 저리 썼다며 미안해하는 대답을 들었다. 다양한 상태의, 사춘기가 진행 중인, 역사에 대한 관심과 사전 지식도 다양한 학생들과 수업을 해야 하는 일은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수업이 교사와 학생이 함께 힘을 합쳐 해나가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올해 2학기 수업의 내 학습지와 학생들의 발표는 긍정적인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수업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역사교사의 날 발표를 앞두고는 고민이 많았다. 깊이 있는 문제 제기와 다양한 자료 제시가 이루어지는 훌륭한 학습지로 좋은 수업들을 하는 교사들을 두고 이렇게 보통의, 일반적인 한 학기 수업을 발표해도 되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답변이 다채로웠고(수업 자체가 늘 이렇게 다채로운 발표로 원만하게 흘러 간 것은 아니다.)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지점에 대해 공감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잘 들어주셔서 재미있게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지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①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발표하는 편이다. 학생들의 발표를 통해서 수업이나 내 이야기가 풍부해질 때가 많다. 그렇지만 이런 수업(교사의 설명-읽기 자료-주제에 대한 글쓰기-발표)이 반복되면서 관성화 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다른 학생의 의견에 반박하고 논쟁하기 보다는 “너 생각은 그렇구나, 내 생각은 이러해”정도로 발표하고 끝내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였다. 의견을 좀 더 팽팽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수업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②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극복하자고 이야기하면서 서양사 중심의 진도를 나가고 있다는 것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해야 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사람들의 사례에 대해 개발하고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수업 모임은 내년에 대만과 홍콩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③ 반전, 평화, 국가 폭력, 인권 등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 큰 주제 안에서 역사 수업을 녹여내는 선생님들의 수업 자료를 보면서 교과서에 언급된 주제에 대해 따박따박 진도를 나가고 있는 내 수업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한 번씩 생각해 본다. 교과서의 내용으로 진도 나가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하는 학생들과 시민으로서 지녀야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싶은 교사인 나와의 타협점이 이 정도인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하곤 한다.

④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가치를 체화시킬 수 있는 수업, 다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고 싶다는 글 서두의 바램과는 달리 한계나 문제점이 명확한 발문이 많다. ‘단순하게 하여 이해를 명확하게 하는 것’과 ‘다원적 가치를 추구하며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시키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앞의 것을 선택할 때가 많다. 그러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나 교사가 더 깊이 고려해야 할 지점에 대해서는 모임 선생님들과 꾸준히 보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발표 과정의 에밀리 데이비슨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집단 지성의 힘은 늘 기대 이상이다.

⑤ 글 중간에도 썼지만 모임 선생님들을 늘 좋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신다. 모둠활동지의 틀은 맹수용 선생님의 수업일기 양식을 차용한 것이고 발표할 때 사용했던 PPT템플릿은 김민정 선생님이 작년 발표에서 쓰신 것이다. 수업 중 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발문은 공부 중 선생님들이 언급하신 것들이다. 수업 아이디어와 고민, 생각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수업 모임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우리 수업 모임에 들어오셔도 좋고 자신의 지역에서 공부 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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