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야기 - 중학생과 역사교사 나눈 수업에세이
≫ 류승현, 정선우 학생(경기 하안중) / 지도교사 : 손석영
편집자주] 교육은 배우는 사람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어야 한다. 독일 보이텔스바흐 합의(1976/77년)에서 내세웠던 교육 원칙 중 하나다. 최근 역사교육에서도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원칙을 받아들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역사교육이 민주적 토론과 소통 문화를 학습하고 훈련하는 장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수업 현장에서 논쟁성을 구현해야 학생 스스로의 사고와 판단 능력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발전시킬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교육> 2019 겨울호에서도 이 흐름에 함께 하여 수업에서 논쟁성을 실현한 수업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손석영 선생님(경기 하안중)이 진행한 ‘여성 단발이 논쟁거리였다고?’는 1920년대 여성 단발에 대한 핵심 논쟁을 다룬다. 학생들은 여성 단발이 남성 중심 사회에 일으킨 논쟁을 살펴보며, 오늘날 페미니즘의 쟁점을 톺아보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학생 스스로 나의 의견이 어디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게 된다. 이번에는 이 과정을 교사가 아닌 학생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볼 것이다. 하안중학교 류승현, 정선우 학생은 논쟁성을 중심으로 한 손석영 선생님의 역사 수업을 1년 간 함께했다. 두 학생의 수업 에세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 류승현 학생(경기 하안중 3학년)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학생인 나에게 역사란 단순 암기 과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수업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시간에 배우는 것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역사란 존재하고 있는 사료들에 대해 학자들이 해석해 놓은 것이고, 이를 권위 있는 매체인 교과서로 만듦으로써 그 해석만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교사는 이 권위 있는 교과서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시험 점수가 우선인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배우고 암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가 생겼다. 중학생이 되고 손석영 선생님과 역사 수업을 한 뒤로 이전과는 다른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암기 과목이 아니라 역사를 배우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성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기로 발표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무역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일에 대해서 정치인들이 자신의 세력을 모으고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 일으킨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큰 흐름을 보면 역사의 반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백여 년 전에 이미 우리나라는 일본에 의해 굴복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때와 유사한 힘의 논리가 가해지는 지금 우리는 그때처럼 힘없이 굴복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굴복하면 역사는 또다시 반복된다.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했고, 국민들은 일본 제품과 관광을 불매하며 백 년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는 반복되지만 교훈을 얻으면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역사는 왜 배우는 걸까? 단순히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서? 역사에 기록된 위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런 생각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역사를 배우는 진정한 의미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에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비교해보자. 두 사람이 장애물을 만났을 때 누가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확률이 높을까?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넘어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때 얻은 교훈을 통해 금방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넘어져 본 사람은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가 장애물을 만나고 시련에 부딪힐 때 올바른 방법으로 잘 일어서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접할 때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모습과 연결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면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수업은 그런 점에서 단순히 암기 과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인 사건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를 현재와 잘 연결해 미래를 대비하는 수업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거울에 현재를 비추는 방식으로 진행하며, 이를 함께 고민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수업방식이라면 역사가 주는 교훈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방식의 수업은 학생들이 가지는 수동적인 태도를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손석영 선생님과의 약 1년 반 정도 함께 한 수업 방식이 위에서 언급한 수업 방식과 같다. 역사적인 사실을 단순히 조명하기보다는 그 사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여 서로 나누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수업 방식이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제 징용 노동자 합의 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위안부 합의 건을 비교하며 공통점을 찾는 방식의 수업이다. 처음에는 이런 수업방식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저 사실만을 외우기 바빴던 나에게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의견을 내놓는 일은 힘겹기만 했다. 내가 생각한 의견의 논리가 맞는지 확인하는 일조차 힘들어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해석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의견을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일은 역사를 암기 과목으로만 여기던 나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그래서 초기에 발표했던 의견들은 사건의 핵심은커녕 그저 1차원적인 생각만을 억지로 발표하는 게 전부였다. 3학년이 되고 나서야 여전히 부족하지만 조금씩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단순히 사실에만 주목하던 부분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질문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생겨서 기존 고정관념들과 반대로 생각해보기도 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한 발표에서 친구들의 많은 동의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한 의견을 내게 되면서 이전과는 내 생각의 폭이 많이 넓어지고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도 많이 생겨서 뉴스도 자주 챙겨 보는 등의 변화도 생겼다. 역사 수업에서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려면 정확성과 논리가 필요한데, 이런 부분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러한 내 변화를 통해 배운 점은 역사 수업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역사 수업은 단순 암기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학생들이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나중에 학생들이 장애물을 만나도 다시 일어 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3학년에 올라와서 가장 인상 깊은 주제라 한다면 나는 여성 단발 논쟁을 꼽을 것 같다. 수업 당시 선택할 수 있는 토론 주제는 백정의 형평운동과 여성 단발 논쟁이 있었다. 전자는 일제 강점기 시대 백정들이 받던 차별을 알아보고 현재에도 비슷한 대우를 받는 약자가 있는지 찾아보는 활동이었고, 후자는 일제 강점기 시대 당시 심각한 사회 문재로 대두되었던 “여성이 단발을 해도 되는가?” 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들어보고 이러한 논쟁이 발생한 이유와 현재 사회에도 이와 같은 논쟁이 있는지 찾아보는 활동이었다. 이 두 선택지 중 나는 후자를 택했다. 여성 단발 논쟁은 여성 인권에 대한 주제이기 때문에 현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같은 나이의 학생들은 페미니즘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여성 단발에 대한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여성도 당연히 단발을 해야 한다는 입장과 여성의 단발은 불가하다는 입장.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 논쟁에 대해 후자로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해답은 이 논쟁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던 일제강점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약자로 분류되어 사회적으로 권력을 쥔 강자들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던 시대이다. 약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백정, 어린이, 노동자 등 다양했지만 그중엔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약자로 분류되어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빼앗겼다. 또한 여성은 일본인에게는 식민지 조선인, 고용주들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 남성들에겐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서 평가받았다.
사회적으로 여성이 차별받는 이런 상황에서, 계급투쟁을 통한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사회주의 사상과 인간은 누군가에게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자유주의와 같은 사상이 들어오게 되면서 여성들은 자신들도 독립된 하나의 주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유연애, 단발, 여성 인권, 노동권 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단체로는 근우회라는 여성 운동 단체가 조직되기도 하였다. 전과 달리 여성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강자들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단발 논쟁이 생겨나게 되었다.
친구들과 여성 단발 논쟁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선생님께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차별들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셨을 때, 의외로 여학생들이 쉽게 답하지 못한 점이다. 그 모습을 보고, 혹시 여성이 당하는 차별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음에도 그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여성 단발을 주장한 여성들이 자신이 당하는 차별을 인식하였고, 변화를 주장한 점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당시에는 여성들이 단발을 못 한다는 것은 아무도 반박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했던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차별임을 인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주장한 변화는 여성들이 머리 스타일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재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 토론 주제는 우리가 여성들이 당하는 차별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 단발 논쟁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내가 당연하게 사용하던 말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점이다. 예를 들어 여성들의 신분이나 직업에는 꼭 “여대생”, “여가수”, “여류작가” 와 같이 “여”가 붙는데, 남성들에게 “남”은 붙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아래 예시와 같은 남성의 기준에 맞춘 용어들이 우리 일상 속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굳이 이런 작은 용어들까지 바꿔야 할 필요를 못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말과 생각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평상시 내뱉는 말은 자주 쓰이는 만큼 우리의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꾸면 말이 바뀌고, 거꾸로 말이 바뀌면 생각이 변한다는 말처럼 지금부터라도 성차별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차별적인 용어 이외에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중 또 다른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렇게 접하게 된 영상이 요즘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엘레노르 푸리아 감독의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oppressed Majority)”이다. 이 영화의 주 내용은 남녀의 성 역할을 반전시켜 표현하여 현재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폭력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의 등장인물 중 남성은 홀로 아이를 돌보고, 여성에 의해 자신의 옷차림을 강요당하며, 지나가던 여성들에 의해 성희롱, 성폭력을 당한다.
처음에는 성 역할이 반전된 모습이 신기해서 웃으며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마음이 불편하고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과 차별을 다룬 영화들을 볼 때는 안타깝고 화가 났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남성들이 현재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과 차별을 겪으니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차별과 폭력을 당하는 건 여성이라는 사실이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여성들이 당하는 차별과 폭력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 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성 역할이 바뀌었음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화장을 하고, 귀걸이를 하는 등 자신을 꾸민 모습이고, 남성은 편한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는 것이다. 자신을 꾸민다는 것 자체는 성차별의 요소로 칭할 순 없지만 현재 대부분의 여성들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하고, 꾸미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의해 딱 붙는 유니폼을 입고 구두를 신으며 일한다. 성 역할을 바꾸었음에도 이러한 점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이 영화를 통해 성차별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뜻깊은 경험이었다.
아직도 세상에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성차별들이 많이 무수히 많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점점 많은 차별과 폭력을 인식하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페미니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공부하고, 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이 알면 알수록 내가 인식하는 것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변화가 생기게 될 것이다.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수업 방식은 앞서 언급한 이상적인 수업 방식으로 가기 위한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진행하는 수업은 학생들의 흥미를 끌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수업 방식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지금은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발표에 참여하여 다양한 관점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게 되었다.
다만, 충분히 토론을 하기에는 비교적 수업 시간이 짧다는 것이 아쉽다. 이로 인해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신의 의견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생님이 정리해주시는 결론에 도달하여 수동적으로 결론을 수용하는 경우가 생긴다. 또한 논리가 부족한 의견도 공유하고 그 의견을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가 생략되는 경우가 있어 토론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답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토론 방식의 역사 수업을 이상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수업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방안을 고려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역사를 잘 이해하였는지는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평가 방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평가할 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느냐보다는 역사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현재의 삶과 어떻게 관련지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암기 위주의 역사 수업에서 벗어나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루어지는 평가 방식은 현재 기준보다 낮추어서 역사에 대한 간단한 기본 지식을 확인하는 용도로만 함께 쓰이면 좋겠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 학생들은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역사 교육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성숙한 사고가 필요한 것 같다. 학생들이 자신이 받는 교육에 대해 지금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낸다면 교육도 지금보다 더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정선우 학생(경기 하안중 3학년)
역사라는 학문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사실 저도 이에 아주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아직 저와 같은 젊은 세대에서는 역사를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상당히 아쉬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글이 앞으로 역사 수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상당히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역사란 쉽게 말해 ‘과거에 일어났던 일’ 이자 우리 선조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을 기록 해둔 것입니다. 저는 역사가 저 자신과 더불어서 인생에서 한번쯤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다시금 스스로를 성찰하고, 그 어려움을 해쳐나갈 수 있게끔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동양의 역사서 가운데는 자치통감 같이 문헌 끝에 거울 감(鑑)을 붙인 역사서가 많습니다.)
또 역사란 쉽게 말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자 우리 선조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을 기록해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 수업을 통해 역사를 배우면서 단순히 ‘이 전쟁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디서 일어났다.’ 역시 중요할 수 있지만 ‘이런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이런 전쟁은 더 이상 일어나면 안 돼.’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한편으로는 역사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역사는 다양한 역사가들의 해석으로 구성된다는 점에 있어서 기록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체험할 수 있기에, 역사 수업은 분명 다른 과목의 수업들과는 차별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공감하실지 모르겠으나, 저는 기존에 역사를 배울 때는 암기과목으로써 딱딱하게 느껴졌으며, 연표를 외우고, 기존 역사 사건들을 배우는 수업은 저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중학교에 와서 친구들, 선생님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토론식 수업을 접하면서 역사라는 과목은 분명 암기해야 할 부분도 있기는 하나, 학생들이 쉽게 접하고, 수업을 통해서 현재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목표라고 확고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역사라는 것이 상당히 예민하고, 유동적인 학문이기에 정해진 교과서적 해석, 그 중에서도 역사적 사건이나 문물을 과연 무조건 교과서의 시각에서 ‘옳다, 그르다’ 라고만 정의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현재 사회에서는 역사를 단지 시험이나, 특정 목표를 위해 배우는 분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역사를 단시간에 암기하여 한국사 검정 시험이나 학교 역사 내신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맞는다고 해도, 그것이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역사는 절대로 고입, 입시, 취업 등 ‘한정적인 목적지’ 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암기를 통해 역사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역사는 한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조선 역대 임금 암기, 연표 암기 등의 암기식 학습은 오히려 역사가 가지는 의의를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시각으로 보아야하는 역사가 폐쇄성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이 인정될 때, 역사가 비로소 한 곳에 국한된 목적지가 아닌 내가 가고픈 모든 지역 즉 인생의 목표를 찾아갈 수 있는 ‘지도’ 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수업은 단순히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역사 사건을 가르쳐 주는 것만이 아닌,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현재의 사건을 비교, 대조해보고, 반대로 ‘현재 어떤 사건이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쳐 기록이 왜곡되지는 않았을까’, ‘이 기록은 과거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등의 역사를 탐구하고, 의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 위해서라도 역사 시간에는 친구, 선생님들과 자유롭게 토론하고, 반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필요가 있으며,(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에 반론을 할 때 당황하지 않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태도 등) 서로의 의견에 공감할 수 있는 수업이 만들어 질 때 역사 수업이 가지는 의의를 보여줄 수 있음과 더불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수업시간에 역사 선생님과 했던 토론 수업 주제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수업이 있었는데, 그것은 단언 ‘여성 단발 논쟁’ 이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우리 역사 속에서 단발이라고 하면은 갑오개혁 당시 시행된 단발령이 떠오르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실제로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유교적 관습(身體髮膚 受之父母 신체발부 수지부모) 등을 이유로 단발 문화를 받아드리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여성 단발은 그로부터 훨씬 뒤에 논란이 일어났으며, 단발령 본래 사건과 성격이 살짝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발령과 기본적으로는 같은 맥락이기는 한데, 이것이 여성 인권 신장과도 결합되어, 이전의 단발령 문제가 ‘전통 문화’와 ‘새로운 문화’의 충돌이었다면, 여성 단발 문제는 현대의 페미니즘 운동처럼 여성의 자각과 여성 권리 신장이라는 성격까지 가지게 되는, 더욱 복잡한 문제입니다.
일단 제가 이 주제를 접했을 때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보면 여성 단발 논쟁은 여성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한 상황에서 ‘여성이 단발을 해야 하는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된 논쟁입니다. 그러니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이런 논쟁이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보통 많은 사람들이 원할 때 미용실에 갑니다. 그리고 원하는 요구 사항을 미용사 분께 말씀드리고, 머리카락을 자르면 그만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지금은 남녀구분 없이 모두가 원할 때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습니다. 근데 지금은 이렇게 사소한 일을 가지고, 과거에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분류되었다고 하니, 주제를 접한 당시에는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친구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매우 궁금했기에 ‘백정의 형평운동’ 과의 토론 주제 선택에서 이 주제가 좀 더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희 반의 대부분이 ‘이 주제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드는가?’ 라는 질문에 ‘이해할 수 없다.’ 등의 답을 내놓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점에서 아마 선생님께서는 현재 사람들과 과거의 사람들과의 사회 문화적 인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도 자주 논란이 일고 있는 여성 인권 문제 등과 비슷한 맥락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이 논쟁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좀 더 수월해집니다. 1917년에는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레닌이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세우게 되는데 이게 그 유명한 소련입니다. 그리고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함으로써, 조선 내에도 사회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함으로써 식민지조선에서 자본가들, 지주들인 친일파들을 배척할 수 있는 힘, 즉 이러한 계급투쟁을 통하여 독립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열쇠가 사회주의에 있음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암태도소작쟁의, 원산 총파업과 같은 사건들은 사회주의의 계급투쟁 사상을 통해서 약자들이 강자들을 상대로 대항하는 힘을 준 예시입니다. 이러한 계급투쟁의 모습은 점점 노동자들뿐만이 아닌 조선에서 약자들이었던 여성과 백정들에게까지 퍼져나가, 그들에게 ‘자유’ 라는 개념을 심어주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백정들은 조선형평사를 조직하여 백정 인권을 보호하고, 여성들은 근우회를 조직하여 여성 인권 신장 활동을 하는 등 이런 사회적 상황에 의해서 백정의 형평 운동은 물론이거니와, 제가 말하고자 하는 여성 단발 논쟁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여성 단발 논쟁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여성 단발 논쟁은 1920년대 앞에서 말했듯이 사회적으로 사회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일어난 논쟁으로 (다만 김활란 등의 여성들은 자유주의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고 합니다. 당시 여성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여성이라서, 조선인이라서, 노동자여서, 그리고 가난하여 더욱 차별받아왔기에 이러한 논쟁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별건곤’이라는 잡지에서 여성 단발 논쟁을 다루며 토론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장난치던 아동배들도 ‘야 단발 미인 간다 이거 봐라!’하고 떠들어 대고 가게 머리에서 물건 팔던 사람들도 뭇는 구경거리나 생긴 듯 멍하니 서서 그들의 가는 양을 유심히 본다.] 별건곤 (1926)
이 외에도 ‘단발은 하면 머리가 몇 년 내로 다 빠져버린다.’ 는 괴이한 의견이 있는 등 이러한 모습으로 보아 당시 여성 단발이 얼마나 조롱 받고,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여성 단발이 위생적이고, 경제적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기에 비단 남성뿐 아니라 같은 여성들끼리도 서로 단발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논쟁을 계속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저는 여성 단발 논쟁에서 분명히 여성들 역시 자유롭게 단발을 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성들 역시 사람이고, 사람이면 자신이 가지는 사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확고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런 점에서는 페미니즘 사상을 떠나서,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권리인 인권과도 관련된 문제라고도 크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여성의 인권 의식 수준이 현재보다 낮았고, 유교적 관습에 의해서 여성들은 차별 받아왔기 때문에 이 당시에는 여성 단발이 받아드려지기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는 것이 마음속에 아쉽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 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성 단발 논쟁은 본질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보장이 되지 않았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여성 단발에 찬성하는 자들과, 부정하는 자들로 나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사회에서 여성인권이 더욱 보호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페미니즘’이 여성 단발 찬성론자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 (물론 본질적으로 페미니즘이 더욱 적극적이지만) 두 경우는 서로 상당한 공통점을 가집니다. 한편 현재 여성 인권 문제로는 직장 내 여성들의 승진과 관련된 유리 천장 차별부터 명절에는 여성들이 일을 하는 유교적 관습 등의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겠네요. 그럼 정확히 페미니즘이 무엇일까요?
‘The belief and aim that women should have the same rights and opportunities as men; the struggle to achieve this aim.’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믿음과 목표, 혹은 이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
/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기입된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 中
위에 서술된 페미니즘의 정의와 같이, 페미니즘은 18세기 정도 쯤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은 권리를 주장하며,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 당시에는 만인이 가지고 있는 인권이 여성들에게 만큼은 적용되지 않는 등 여성들이 상당히 핍박받던 시기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여성들은 이 당시에 핍박을 받지 않는다고 느꼈으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몇몇 여성들은 자신들과 남성들은 엄연히 똑같은 사람인데 자신들만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것은 차별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페미니즘운동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과거 많은 여성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 버지니아 울프 등)와 학자들 그리고, 현재에도 세계적인 유명인사(배우 엠마 왓슨, 브리 라슨 등이 대표적인 스타이자 페미니스트입니다.)들 역시 페미니즘에 동의하며, 이를 실천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페미니즘이 상당히 의미 있는 사상입니다. 이러한 의도는 남성인 저 역시 분명히 인정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도 남녀 구분 없이 공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보는 시선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심지어 제 가까이에 있는 또래들에게도 페미니즘은 욕설의 대상이며, 유튜브, SNS 등의 매체에서도 페미니즘은 큰 비난거리이거나, 조롱의 대상으로도 여겨지는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 페미니즘은 의미 있는 사상임에도 이러한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로는 현재의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 중 극단적인 유형의 페미니즘 사상이 페미니즘이 탄생한 본질 그 자체를 해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본디 페미니즘은 남녀의 평등과 소수자를 위한 사상이나, 최근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등의 성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모습도 보이며, 속히 말해 메갈리아 등으로 불리는 몇몇은 여성 우월주의를 앞세우면서, 여러 매체에서 극단적인 행위를 일삼으면서 자신과 같은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페미-나치(페미니즘과 나치의 합성어)라고 불리는 극단적 여성 우월주의 까지 생겨났을 정도니 페미니즘이라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생긴 사상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 같아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어쩌면 매체에서도 과격한 모습을 보이고, 같은 페미니스트들끼리도 서로 분열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에 거부감과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다만 남성들 역시 페미니즘을 무작정 편견을 가지고 보기 보다는 페미니즘을 이해해 나가려는 노력도 나름 필요하겠네요.)
반면 저와 같은 남성들의 시각으로 보면 남성 화장 문제나, 남성 의무 군 입대 문제 역시 ‘성 평등’ 문제로 일어나는 요즘 사건들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큰 사회 문제였던 여성 단발 논쟁은 21세기에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물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논쟁이고, 쉽지는 않겠지만, 부디 이 문제가 남녀 모두가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결과로 끝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조지 버나드 쇼의 격언 中 일부
앞에서도 말했듯이 역사는 상당히 예민하고, 유동적인 학문입니다. 같은 문헌이라도 여러 시각에서 보면 해석도 다양하게 나오며, 해석에 답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역사는 절대로 ‘한정된 목적지’ 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역사라는 것이 비단 학문으로써가 아닌 내 삶에 있어서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을 통해서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거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앞으로는 역사 속의 비참한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게 이를 저지해주는 역할을 맡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역사 수업을 들으면서 묘하게 자신의 경험과 비슷한 구조의 사건을 배우는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앞에서 언급한 여성 단발 논쟁 같이 인상 깊었던 수업은 토론식 역사 수업에서 제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저는 이 수업 전까지는 페미니즘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페미니스트의 ‘ㅍ’만 들어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곤 하는 등, 페미니즘에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수업을 통해서 이제 저는 페미니즘의 본질만큼은 분명 인정할 수 있으며, 페미니즘이 남녀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정당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글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수업 중 개화기를 배우면서 당시 조선에 유입된 신문물이었던 시계를 가지고 ‘과연 시계는 우리 생활을 유익하게 해주는가?’ 라는 주제를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오히려 시계가 저희 생활을 유익하고, 올바르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시계는 저희 생활을 ‘시간’이라는 제한을 걸어서 삶의 여유를 줄이고 있을 수 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토론 주제는 ‘개화’, ‘발전’ 이 무조건 유익하지는 않은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의심하는’ 역사는 저의 생각을 다시금 성찰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구들 역시 역사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뀜으로써, 이에 따른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 역시 바뀌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 역사 수업 시간마다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2학년 1학기 때부터, 3학년 1학기 그리고 현 시점 까지 토론식 역사 수업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과거 역사를 대하던 태도와 지금의 태도가 크게 변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상당히 의미 있었습니다. 저에게 역사수업이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삶에서 ‘지도’가 될 수 있을 때 가장 큰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역사 수업은 문헌, 학생, 선생님과의 다양한 해석, 교류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실제로 저희가 수업할 때 자연스럽게 많은 의견을 주고받고, 이에 대한 반론이 오고갑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받고 있는 토론식 역사 수업은 훌륭한 역사 수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 수업에서는 선생님이 작성한 글로 된 활동지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다보니 요즘 학생들이 더 친숙해하는 영상과 같은 복합적인 텍스트나 매체가 많이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아 분명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또한 친구들이 의견을 공유할 때 한정적인 시간 때문에 (물론 선생님은 최대한 많은 의견을 듣고자 하시지만) 서로의 의견 공유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점은 아쉬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토론식 역사 수업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역사 수업, 즉 지나치게 성과 중심적으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고, 서로간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토론식 수업이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더불어 향후 저희 세대와 더불어서, 제 위 아래의 모든 세대에 있어서 역사 교육은 단지 딱딱한 암기식 교육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역사는 고입, 대입, 그리고 입사를 위해서만 쓰이는 한정적인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역사 교육은 소기의 목적을 위해서만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지나치게 결과 중심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암기 중심적인 역사 시험 문제는 축소시키고, 어떠한 역사 사건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할 수 있는 제도가 좀 더 활성화 될 때, 비로소 역사교육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학생들이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역사가 무조건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런 인식이 차차 바뀌어 나가리라고 분명 믿습니다.
글이 많이 부족함에도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를 비롯한 젊은 세대 그리고 수업을 위해 늘 고군분투하는 역사 선생님들께서도 즐겁고, 교훈적인 역사수업을 만들어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위 글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학생주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공모 사업' 중 학생·교사 역사 수업 에세이 부문에도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지도교사 : 경기 하안중 역사교사 손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