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혼자인적은 없었다.

by 시 쓰는 소년

2020년 코로나 시기 때부터 써 오던 자작시가 어느덧 100여 편이 넘었다. 물론 중간에 마음이 흔들린 순간이 많았고, 시를 잊고 아예 쓰지 않았던 기간은 3년 정도 된다. 내가 쓴 시 중에서는 개인계정에 공개한 것도 있지만, 적절한 시어를 선택하지 못했거나 다소 어색하다고 생각한 시들은 곧장 마음속에 묻어버리기도 했다. 모든 활동이 창작의 결과였고, 나름 고민을 해서 썼지만 모든 시와 글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브런치 스토리 초기에 이런 글을 썼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글을 쓰겠다.'


사실, 이렇게 표현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대학로 어느 소극장을 연상케 했다. 열심히 무대를 준비했지만, 나의 연기를 보러 오는 사람이 단 두 세 사람일 때 배우의 심정은 어떨까? 이 공연이 끝난 뒤에는 대관료도 내야 하고, 연기자들은 식사를 해야 했고, 집에 오갈 차비도 필요한 거 아닌가? 그럼 무엇으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하겠는가? 어렵고 힘든 선택을 그들은 해 나가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이라면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비용까지도 고민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현실은 더 피부로 와 닿는다.


'내 연기를 봐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연기를 하겠다.'


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솔직히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반면에, 글을 쓰는 것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물론,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생활에 필요한 부가적인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단순히 펜과 종이만 있어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이면지에도, 신문 귀퉁이에도, 아니면 스마트폰에도 얼마든지 원한다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글을 쓰겠다.'라고 뭔가 대범하고 대단한 것처럼 것 나를 표현한 것 같다.


그렇게 표현할 당시에는 브런치 스토리를 막 시작하는 단계였고, 흔히 말하는 독자도 소수였기 때문에 나를 담금질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글을 쓰겠다는 굳은 결심이 그렇게 표현이 된 것 같다. 정말 나의 글쓰기가 소극장의 알려지지 않은 배우와 같이 관객수에 따라 직접적인 수입과 연결이 된다고 하면 마음이 정말 힘들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니까 때문에 비록 지금은 읽어주시는 분이 적더라도, 단 한분이라도 있으시면 꾸준히 써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그런 말을 용기 내어 쓰게 되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 글을 꼭 누가 읽어줘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코로나 시기에 어떠한 누구의 개입도 없이 스스로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줄곧 노트에만 끼적거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주지 않아도 그날 내가 느낀 하루의 느낌, 사물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들을 노트에 마음껏 적어가면서 나만의 희열을 느끼는 게 좋아 무척 열정적으로 썼다.


지금은 브런치 스토리와 같은 개인 계정에도 내 글을 종종 올리고 있다.(아직까지 연재는 고민 중) 이러한 계정에 글을 올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것이 시쳇말로 '좋, 댓, 구, 알' 지표이다. 나 역시도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비교하는 순간 '불안'하다고 하지 않았나? 다른 분들의 계정에는 많은 의견과 댓글이 달리면서 활발한 소통을 이어나가는 반면에 내 계정들은 대부분 조용한 편이다. 나도 그분들처럼 인플루언서(?) 팬층 확보(?)를 잠시 기대한 적도 이었지만, 사실 이렇게 글을 본격적으로 쓰고 정리해 본 것이 채 6개월도 되지 않기 때문에 너무 과한 욕심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사실 혼자인적은 없었다는 사실.

photo by 시쓰는 소년 / 네잎클로버 7개를 내손안에

고요한 새벽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더라도 나와 영혼을 같이하는 동반자와도 같은 분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 명상을 하더라도 지구 저편의 또 다른 명상가와 연결이 되어 있으며, 자연과 동물과도 보이지 않는 시냅스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는데, 말 못 하는 지나가는 개한테 문득 말을 거는 행동을 보면, 어떠한 교감을 느끼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이렇게 쓰면서도 살짝 웃음이 난다. 교감이라니.) 자연과 시냅스가 잘 연결된 사람은 꽃과도 흐르는 물과도 바람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접촉하거나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열심히 쓴 시나 글을 비록 많이 읽어주시지 않더라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겠다. 단 한분이라도 읽어주신다면 그 분과 나의 우주같이 광활한 교감은 실행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누군가와 교감을 하고 있었고, 그도 없었으면 내면의 나와 늘 교감하고 대화를 하고 있다. 이런 작은 깨달음을 알게 되어서 인지, 가끔씩 연락이 닿거나 얼굴을 내비쳐주시는 분들과의 소통이 즐겁고, 그게 아닌 날에는 나와의 소통이 즐겁게 느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참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산과 들과 나무와 바람과 구름, 그리고 나 자신과 소통하기도 바쁜 하루. 오늘 하루도 꽉꽉 채우는 하루가 될 것 같아 벌써부터 신이난다. 오늘 아침에는 5시에 짹짹 새가 울었고 작은 교감을 했다. 모두들 행복한 하루, 목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요? 우연히 찾아온 복, 만남. 그런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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