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환경에 대한 관(觀)
코이라는 물고기는 사는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성장한다. 흔히 알고 있는 잉어가 일본어로 코이라고 불리는데 작게는 5cm에서 크게는 1m 이상도 자란다. 어항 속 코이와 연못이나 강가에서 사는 코이는 크기가 다르게 성장을 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먹이를 잘 주고 관리를 해 준다면 작은 어항에서도 평균치 이상만큼 크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아쉽게도 코이는 자신의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스스로 주어진 환경에 순응을 하고, 결정된 그릇의 크기에 몸을 맞추게 된다. 설령,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하더라도 생명을 오래 유지하기는 대단히 희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코이와는 다르게 자신의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 주어진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의 선을 작게 그을 수도 있지만 그 선을 크게 그을 수 있는 마음가짐과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
작은 어항 속 코이는 불행할까?
앞서 사람은 코이와 다르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선택해 나갈 수 있다고 언급을 했지만, 사람 역시 자연 또는 사회라는 많은 제한과 제약, 극복해야 할 요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과 좌절, 포기 등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불행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 역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해 나가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렇듯 작은 어항 속에서 사는 코이라고 해서 모두가 불행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늘 불행한 코이는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스스로 정한 삶의 한계
자신이 만든 환경, 또는 자신이 처한 환경의 크기가 얼만큼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그릇의 크기가 작은 어항인지, 연못인지, 강인지를 알아야 한다. 만일, 작은 어항에 살고 있게 된 것을 알게 될지라도 절대 실망하지 말자. 그동안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떠한지를 냉정하게, 제대로 평가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지라도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나 스스로가 환경의 제한선을 정하고 살았던 건 아닌지, 또 그 이상의 것을 보려는 노력이 미미 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의외로 삶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외부요소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정한 것이 많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성장해야 스스로가 성장한다.
태어난 환경이 좋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 봤었다. 금수저, 은수저, 티타늄 수저 등등. 결국 태생은 그러하지 못했고, 반전과 역전이 있기는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기도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이제는 뭐. 다음 생에는 기대를 해 본다^^)
돌아보면 근시안적으로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하루하루 대처하고 극복해 나갈지 고민만 했지, 한발 뒤로 물러나 내가 처한 환경이 작은 어항인지, 연못인지를 심도 있게 고민을 해 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대로 좋은가?
우리는 코이와 다르게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고 앞서 말했다. 내가 선택하는, 선택될 환경은 지금의 환경보다는 성장하는 환경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가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이다.
20대 청년의 시기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열정과 패기, 에너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이" 때문에 못한다는 핑계부터 떠올리는 자신을 보면서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알고 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이다.
코이와 다르게 우리는 환경을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선택한 환경은 성장하는 환경이어야 한다. 삶이 당신에게 "주어"졌다. 당신은 주어진 삶의 "주어"로 살 자격이 있다.
성장하는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며 걱정과 불안을 줄이고 조금씩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삶을 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