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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by 방석영 씨어터
기다림 Waiting (2025. ink on korean paper. 130x130)

삶은 체념의 연속이다. 체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부족한 부분을 수용하는 것이다.

전자는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버리는 청소의 과정이다. 내가 지키고픈 것이 또렷하게 있다면 그 외의 것들은 놓더라도 내게 큰 타격이 되지 못한다. 독수리는 40년을 산 후에 더 살지 말지를 자신이 선택한다. 더 살 것을 택하면 오래된 발톱과 깃털을 뽑고 낡은 부리를 바위에 부딪고 부수어 새 삶을 준비하는데, 그 괴로움을 어떻게 가늠할까! 독수리에게 그것은 익숙한 것이 주는 안식을 포기하는 과정이지만 그 고통 뒤엔 삶이 덤으로 있으니, 체념은 설레는 편지를 가져다주는 집배원 아저씨다.

남의 땅에 씨를 심어 신세를 지는 것처럼 정신은 몸을 빌려 신세를 진다. 몸은 나(정신)를 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은 곧 누구에게나 발휘해야 할 몫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생에 나는 이 몸을 하례받아 장착하고 살아간다. 주어진 몸에 조금 하자가 있더라도, 내가 장차 발현할 것은 이 몸이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아무렴~. 나의 이런 경우가 후자에 해당한다.

자신이 무엇을 펼치기 위해 태어났는지 살펴보는 과정에서 체념은 반드시 필요하다. 버릴 때, 정신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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