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건축에 생명을 부여하는 방법, 피터 줌터의 성 베네딕트 성당
끝이 없는 산골짜기를 달리다 보면 언덕에 몇 가지 집을 걸터앉아 있는 마을에 도착한다. 어느 순간부터 차를 끌고 가기 어려운 길에 도달하면 잔디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걸어가게 된다. 발걸음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경사가 급해져 걸음이 늦어지는 구간에 도달하게 된다. 그때 자연스레 고개를 들면 저 멀리 빛에 의해 빛나는 산 위의 배, 성 베네딕트 성당에 도착하게 된다. 어느 정도를 올라오게 된 나는 온 길을 되짚어 돌아보니 산 골짜기 계곡마을을 품고 있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길을 따라 성당을 마주하는 그곳은 성당의 남서 측이었다. 해가 높게 떠 있을 정오경 성당은 빛을 받아 더 빛났다. 산에 우뚝 서 있는 나무처럼 주변 나무와는 다르지 않은 색감을 드러냈다. 고측창과 형태는 내부를 예측가능했다. 외부를 감싸고 있는 패널들은 전부 각자의 색깔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모여 성 베네딕트 성당을 이루었다.
"나뭇잎 같아..., 가을 단풍과 같은 색감과 누르면 바스락 소리가 날 것 같은 나뭇잎"
"그러게.. 나무 기둥에 커다란 나뭇잎 하나가 얹혀있네"
성당을 설계한 피터줌터는 지붕을 받치는 벽에 유리로 둘러싸 지붕의 물성을 가볍게 만든다.
성당 진입은 콘크리트로 뿌리 내려진 계단을 통해 진입한다. 콘크리트 계단은 비탈 경사지에 얹힌 건물로 콘크리트와 건물은 거리를 두어 얹혀있다. 이러한 수법은 르꼬르뷔지에의 라뚜레뜨 수도원에도 비슷한 형태의 콘크리트 계단이 존재한다. 의도가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당을 항해하는 배로 보아 배로 올라타는 계단을 콘크리트로 거리를 두어 설계되었다.
내부에 들어선 순간 정말 외부가 산이 아닌 바다라고 믿을 정도였다. 남측 고측창에서 들어오는 빛은 북측 벽에 가느다란 목재 프레임들을 피해 리듬감 있는 빛이 들어온다. 내부는 피터줌터의 손길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노출된 목재 구조들과 합판, 줌터의 촛불 조명부터 도어 손잡이까지
조금씩 코를 찌르는 목재 냄새와 눈을 평화롭게 하는 색감, 건물을 하나의 오브제로 봤던 피터의 성당은 건물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모여 완전한 하나를 이룬다. 줌터의 건물을 이루는 요소들은 전부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동감이 있다.
나무 프레임과 촛불 조명들은 합판벽에 그림을 그려낸다.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은 성당 내부에서 볼 만할 것이다.
슬라브 또한 벽과 목재 프레임과 거리를 두고 존재한다. 벽과 슬라브 사이는 200mm가량 띄워져 있다. 정말 건물을 '배'로 본 것만 같은 기분이다.
성당 외부모습은 빛을 받는 곳과 그림자가 드리우는 면의 색감은 다르다. 따스하고 붉은 남측면 검고 회색빛의 차가움을 드러내는 북측면. 건물은 자연과 함께 존재하기 위해 소통한다.
의도적으로 탄화된 외부 우드는 스위스의 자연과 시간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자연 속에서 점차 파괴되는 듯한 질감을 드러낸다.
내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성 베네딕트의 성당에서 끝나지 않는다. 피터줌터는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존중한다. 건물은 완성되어 경험하는 것이 아닌 땅에 뿌리를 내려 그 형채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생동감이 부여된다. 그 의미에서 글의 끝자락에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의 이야기’ ‘퍼포먼스 건축’에 관한 글을 페터 줌토르의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의 이야기로 막을 내리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건물이 지어지는 그 과정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본다. 단순히 건물을 구현해 내는 실무적인 ‘공사’가 아닌 기초부터 하나씩 쌓아가면서 부여하는 건물의 생동감, 그로부터 완성되는 건물의 분위기에 관해 퍼포먼스 건축이라고 하겠다.
끝이 어딘지 모를 벌판에 세워진 작은 오브제
마을 농부들은 직접 채플 공사에 나섰다. 112개의 소나무 줄기들을 엮어 쌓아 올려 구조체를 만들었다.
그 외곽으로 콘크리트를 부으니 콘크리트는 솟아오른 구조체를 비비며 층층이 쌓여간다. 진흙이 섞인 콘크리트는 마치 밭이 수직으로 쌓여가는 기분이다. 하루 500mm씩 24일을 한 층 씩 쌓아 올라갔다.
여러 결의 무늬를 쌓아간 콘크리는 24일 후 콘크리트를 지탱한 거푸집에 불을 붙였다.
불은 줄기의 끝에서부터 타고 내려오며 재들은 이리저리 날리며 바닥에 떨어진다. 약 3주 동안이다.
3주 동안 불이 타며 콘크리트를 조금씩 그을리며 무늬를 더 거칠게 만들었다.
불에 타며 연기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천장의 오큘러스로 빠져나갔다. 마치 캠프파이어의 한 장면과 같았다. 외벽은 이렇게 한 줄 한 줄 쌓아가며 자연을 담아냈다. 콘크리트 타설 중 거푸집 폼타이 구멍에 유리봉을 넣어 간결하고 얕은 빛이 내부로 들어오게 하였다.
건물이 풍화하듯, 생물이 알에서 깨어나듯 하나의 축제처럼 건물은 완성되었다.
불에 타 없어진 거푸집들은 형채를 감출 뿐 콘크리트 벽에 그을린 자국과 냄새만을 풍기며 살아 숨 쉰다. 거푸집의 온기는 콘크리트로 옮겨져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내부는 소나무 줄기를 나타내며 동굴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낸다.
벽을 쌓아가는 구조체부터 그 구조체가 불에 타 없어질 때까지 그 기억을 온전히 갖고 있는 완성된 채플까지 하나의 퍼포먼스와 같은 건축이다.
검게 그을린 콘크리트 속 오로지 들어오는 건 작고 얕은 빛에 의지하며 공간 내에서 누군가는 농사에 대한 기도, 전쟁에서 희생된 아들, 삶에 대한 사유를 하며 서로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
콘크리트가 양생 하는 과정은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콘크리트가 그 장면들을 하나씩 접어간다. 바람의 자국, 빛의 색깔, 공기의 온도 등 하나씩 느끼며 거푸집과 작별인사를 한다.
채플은 단순 공간으로써 기능이 아닌 한 편의 이야기, 예술작품이다. 피터줌터는 2년을 공부하고 설계하며 그 과정을 하나씩 담아냈다. 이러한 피터의 작품은 기다림의 미학이 존재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을 여행하며 작품을 완성해 간다. 이렇게 완성된 채플은 지층 속 동굴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준다.
이렇게 피터줌터가 건물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방법을 채플을 통해 확인해 본다. 한 가지의 말을 하고자 글을 쓴 건 아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오가며 읽는 독자에게 혹은 글을 쓴 자신에게 다양한 영감과 생각을 품고자 글을 시작하니 어느새 끝자락에 왔다.
글의 마지막은 학부기간부터 영어 원본부터 한글 번역본까지 적적할 때 손에 쥔 페터 춤토르의 글을 언급하고 끝내고자 한다.
물질의 양립성
" 엄청난 비밀, 위대한 열정, 영원한 기쁨. 나는 일정량의 오크 나무와 응회암을 고르고 은 3그램과 열쇠를 추가한다. 원하는 재료가 있다면 사용해도 좋다. 먼저 각각의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재료들을 모아서 혼합할 수 있다. 혼합은 우리 머리에서 시작해 실제 세계에 적용된다. 재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질은 서로 반응하고 빛을 발산한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혼합물은 독특한 성질을 지닌다. 물질은 무한하다. 돌을 보자. 우리는 돌을 자르고 갈고 뚫고 쪼개고 광을 낼 수 있다. 매번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소량이나 대량으로 같은 돌을 다시 택하여 작업하면 또 다른 것이 만들어진다. 돌을 빛에 가져가면 또 다른 결과를 얻는다. 하나의 물질 속에 수천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나는 그런 일이 좋다. 하면 할수록 더욱 신비로운 일."
-페터 춤토르 분위기(Atmosphere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