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티로스 Sep 01. 2023

놓칠 수 없는 기회

아이 케어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뇌피셜)

오늘도 여전히 글루틴 엔딩요정 글향작가님께서 글감을 내어주셨다. 오늘 글감은 '기회'이다.


기회라는 말은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많이 접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기회는 세 번 온다', '할 수 있을 때 해라. 시간과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회는 항상 찾아온다. 단지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작은 기회로부터 종종 위대한 업적이 시작된다.'와 같은 많은 격언들로 우리 주변에 항상 있으면서, 잡힐 듯하면서도 잘 잡히지 않는 묘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기회'라는 말을 생각해 봤을 때, '후회'라는 말이 언뜻 떠 오르는 것 같다. 왜 흔히들 '기회를 놓치면 후회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온 기회를 잘 알아채고 기회를 잘 잡고 기회를 잘 살린다면, 너무 좋은 것이겠지만, 우연찮게 온 기회를 잘 알아채지 못하거나, 우연하게 잡은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한다면, 흔히들 후회하게 되는 게 우리 사람들 같다.


그래서 나도 살면서,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잘 알아채고, 그 기회를 잘 잡고, 또한 그 기회를 잘 살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 기준에서 가장 후회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가족이고 내 아이들이다.



나는 결혼을 못 하는 줄 알았다. 2012년도에 그 당시 3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요즘이야 30대 후반에 결혼하는 것이 빠를 수도 있을 나이이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늦게 장가가는 케이스라, 친구들도 주변 지인들도 내가 장가가는 것을 보고 놀래기도 했고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결혼을 못 하는 줄 알았던 이유는, 사회생활을 아주 늦게 해서 결혼 준비는 아예 못 해 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늦은 나이가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쫓아가기보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어서, 많은 시간을 백수?로 지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철이 덜 든 사람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나이가 한창 꽃 피울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까지는 공부?. 아니 꿈(학교 선생님; 전문대 졸업하고 4년제를 수능쳐서 다시 들어가서 공부함)을 위해 쫓아다녔던 시기인 것 같기도 하고, 그 꿈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공무원 준비도 하면서 방황하며 보낸 시간들이었다.


친구들과 주변 후배들은 한창 잘 나가며 차도 끌고 다니고 주말 때마다 술 한잔 하러 나오라고 성화를 부렸던 적도 있다. 나가서 한창 끓어오르는 젊음을 태워버리고 싶었지만, 친구들한테도 빈대 붙어서 노는 것도 한두 번이지, 눈치 주는 친구들은 없었지만, 내 자존심은 편하지 않았고, 눈치도 보였다. 요즘 말로 '그냥 찌그러져 있는 것'이 편했다. 그렇게 찌그러져 살면서, 나이가 계속 차니까, 도저히 그런 허황된 꿈을 좇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어서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직장도 알아보고 했었다. 그전까지는 알바로 전전긍긍하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제대로 된 직장이 없었기 때문에 모아 둔 돈이 없으니, 공무원 학원에서 알바(수업 영상 촬영알바)해서 공짜 수업을 들었었고, 생활비도 만만치 않아 고시원 총무 알바(청소, 밥 짓기, 신규등록)하면서 숙식을 해결했었다. 30대가 되어서도 고시원 생활하고 있으니, 주변 시선들이 그리 고울 리 없었다.


하지만, 신기했던 건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에 영어강사로 들어간 첫 직장에서, 영어학원에는 여자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니,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선생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어디에 사세요?"라며 여자강사분들이 내게 물으면, "네, 시내에 있는 고시원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보게 되는 이상한 분위기도 몇 번 있었다.


그런 나였기 때문에, 주변 여자분들이 나를 가만히 두었다. 아무 터치도 하지 않고... 정말 가만히 두었다. 왜 같은 직장에서 호감이 가는 이성이 있으면, 관심이 가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거리가 더 멀어지는 기이한 현상도 한 번 정도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찐 흙수저는 아니더라도 모래수저는 되니까, '이번 생은 여자는 없는갑따'하면서, 결혼을 포기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도 부끄럽지 않았던 건, 나 나름의 소신대로 부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서는 늘 인사 잘하고 다니고, 일 할 때는 니 일처럼 해 주고, 남 해코지 하지 말고'라고 하신 말씀들을 그대로 지키고 생활했기 때문에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운이 좋게도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고 결혼했고, 시간이 지나니, 두 아이도 낳아 기르고 있다. 기회를 얘기하면서 서두에 다른 얘기들이 많았던 이유는, 그만큼 소중하게 만들어진 가정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나에게 찾아 온 축복이자 기회인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결혼도 초보이고 육아도 초보라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힘들게 꾸린 가정. 정말 잘 꾸리고 싶었다. 결혼 초기에는 나라는 인간도 제대로 된 인간이 못 되었기에, 그 상태로는 올바른 가정을 꾸리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가 많았다. 내가 아빠로서 낙제점이 아닌가 하고 고민할 때도 많았고, 아내한테도 내 마음속에 있던 못 된 말들이 한 번씩 불쑥 나올 때면, 내가 아직 인간이 될 되었나! 라고 후회하고 반성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반성하고 다음부터 좀 더 나아져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가족들과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아이들 케어하는 데에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생각했다(뇌피셜). 내가 생각하는 골든타임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스스로 약속 정해서 놀러 가거나, 영화 보러 나갈 때까지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정서적인 가까움 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가까움도 고려해서 주말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마트며 캠핑이며 영화관이며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확보해 주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그렇다고 아주 화목한 가정은 못된다. 원래 성격이 장난을 잘 못 치는 타입이라, 그렇게 재미난 가정분위기는 못 된다^^)


아직 아이들이 다 큰 게 아니라서(첫째 10살, 둘째 7살), 이렇게 보내는 것이 과연 정답인가요?라고 물으신다면, 확답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아침에 초등학교 등교하려는 아들, 아침참 많은 아들 깨울 때, 큰 소리 대신 마사지로 잠을 깨우고 있고, 준비하는 동안 학교에서 있는 일들을 한 두 마디라도 해서 물어보고, 학교 행사라든지, 최근에 사귄 친구들도 물어보고, 가방 매기 전에, 삐져나온 머리 드라이해서 정리해 주고, 엘베 타기 전에 한 번 안아주고 이마에 성호를 그으며 기도도 해 주며, 조금이라도 아이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원래 나의 1순위는 일이었다. 학원 일이었다. 일 욕심이 많아서 토요일도 일요일도 학원에 나가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올해 초 겨울 때, 갑작스럽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다들 황망했지만 나에게 크게 느껴지는 마음은, 아버지와 많이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였다.  


워낙 아버지 세대도 70~80년대를 어렵게 살아오시면서 가난을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셨고, 그러니 당연히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번의 가족 여행?도 사진으로 남아있지만, 여가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세대 셨기 때문에, 주말에 시간이 있더라도 가족들과 보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볼 일 보시거나 개인 취미생활을 하러 나가셨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또한 아버지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는, 제2의 영업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의 글에서 아버지 얘기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나 함께 하지 못한 것들이 내 마음에 계속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쓸 때도, 아이들과의 어린 시절 교감을 자주 얘기하는 것도, 나의 기준에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정이 많이 고팠나 보다.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솔직히 처음엔 조금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몇 번 글을 쓰면서 그런 아쉬움 마음을 내어 놓았고, 주변 작가님들께서 위로와 이해를 시켜주셨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아버지를 잘 헤아리지 못한 저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게 계셔요~^^)


평소에 갖고 싶던 아이템이 있다고 예를 든다면, 처음 선택한 A물건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다음에 B와 같은 다른 제품을 사면 되지만, 아이들과의 교감은 인생에서 한 번뿐이고, 그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아이들이 컸을 때, 큰 후회가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어린 시기의 이 기회를 놓치고 않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함께 하고 싶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