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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Jul 23. 2019

남의 아들은 위험하지만 내 아들은 위험하지 않다?

며칠전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단톡방에 떼톡이 울렸다.

고1 남자아이들끼리 방학을 맞아 주말에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엠티를 가려고 계획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어른이 동행하지 않고 아이들만 가는 것에 대해 걱정스럽다는 의견부터 해마다 남자아이들은 엠티를 갔었으니 괜찮을 거라는 의견, 아이들 펜션 옆에서 부모번개를 하자는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왔다. 여자아이들도 한 아이의 생일파티 때 모일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정보도 올라왔으나, 여자아이들끼리의 엠티는 반대한다는 부모의 의견도 함께 올라왔다. 여러 말들이 오간 후, 결국 괜찮을거라며 여러가지 조심할 것들을 일러두고 펜션사장님에게 안전을 부탁해서 아이들끼리 다녀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딸을 키우는 나로서는 의견을 내기보다는 그들의 논의를 쭉 지켜보게 되었고 만약 내 아이가 자기들끼리 엠티를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다행히 여자아이들은 구체적으로 엠티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자기들도 부모 허락이 쉽지 않을거라는 학습된 나름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엠티 당일 부모 단톡방에는 아이들이 해수욕장에서 노는 모습, 다같이 모여서 치킨을 먹는 모습 등 장난기 가득하고 즐거운 모습의 사진들이 올라왔다. 아직 어리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부모 도움없이 자기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특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자아이들도 저렇게 놀고 싶을텐데, 여행이나 외박에 자유로운 남자아이들이 부럽단 생각이 들었다.



딸 셋에 아들 하나.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셋이나 낳아야했던 집에서 둘째 딸로 키워진 나는 존재자체로 사랑받았던 막내동생과 달리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고 결과로 인정받아야하는 노력형/성과형 인재로 키워졌다. 애지중지 막내아들을 자랑스러워했던 부모님 밑에서 불평등에 쉽게 노출되었고 그만큼 민감했다. 서운해하는 딸에게 속좁고 야박한 누나라는 비난이 돌아왔다.


내 아이에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성장하길 바랬다. 오히려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더 혹독하게 젠더감수성이 몸에 베이도록 교육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나뿐만 아니라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외박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부모님이 생각하기에 안전한 핑계들을 만들어내야 했다. 부모님이 확인할 동선까지 파악해서 2차, 3차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했었다. 남자동기들은 어디서나 널브러져 자고 굳이 외박자체를 집에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저 며칠에 한번 생사확인만 하면 그만.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세상이 험한게 내 탓은 아닌데, 늦게 다닌다고 나무라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활동반경이 넓어지니 나에게도 갈등 상황이 생겼다. 아이가 친구집이나 외부 행사로 외박을 하게 될 경우, 친구가 누구이며 어디에 살고 그 집엔 누가 있고 등 확인하고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서로 잘 아는 이웃이거나 교류가 있는 가까운 친구 집에 가기 때문에 쉽게 허락한 경우가 많았는데,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학교 자치활동으로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 많아졌다. 미성년 자녀의 활동을 확인하는 일이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점검이 유독 딸에게만 더 강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자녀가 성장할수록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관대하게 아이를 키운다. 반대로 딸을 키우는 부모들은 자녀가 성장할수록 자유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보수적으로 키우게 된다. 나는 보수적으로 키우지 말아야지 다짐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허용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나의 불안이 너무 컸다. 


딸아이를 함께 키우면서 만난 부모들 중에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부모조차도 딸에게는 외박과 귀가를 단속하면서 아들 형제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가 여성에게 불리하고 어쩔 수 없으니 딸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당하지만 조심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내 딸은 남의 아들에게 조심시켜야 하고 내 아들은 상관없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남의 아들은 위험하지만 내 아들은 위험하지 않다는...


세상이 험하다는 이유로 딸의 귀가시간과 외박을 단속하는 일은 성범죄가 일어나니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미투운동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많이 커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매사에 몸을 사리고 조심하도록 강요받는다. 남성들에게만 허용적인 사회분위기가 일정부분 여성들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새벽 귀가 길에 일어난 젠더폭력에 대해 새벽에 돌아다니며 폭력을 일삼는 남성보다는 '그러게. 일찍일찍 다녀야지, 그 새벽에 왜 돌아다녀'라며 여성을 탓하는 말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모 연예인이 함께 일하는 스텝을 성폭행한 사건에서는 "그러게 왜 남자집에서 잠을 자냐, 꽃뱀 아냐?" 하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젠더폭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남성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당하는 여성에게 잘못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우가 많다.


난 아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아들의 외박에 너무 관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못하니 너도 하지 말자'가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자녀의 귀가시간과 외박이 걱정스럽다면 그 규칙은 아들과 딸을 막론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면 좋겠다. 외박을 금지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외박에 대해서 딸에게 하는 것처럼 아들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점검하고 책임감을 가지자는 거다. 딸에게 위험한 사회는 아들에게도 위험한 사회고, 함께 조심하고 그 책임도 함께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딸에게 만일의 경우를 걱정하는 것처럼, 아들에게도 만일의 경우를 걱정하고 조심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남의 아들이 위험할 수 있다면, 내 아들도 위험할 수 있다.


세상이 위험하니 새장에 가두고 새장 밖으로 나간 새를 탓하기보다 새장 밖을 모두에게 안전한 환경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이 불편한 것이 어디 이것뿐이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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