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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Sep 17. 2019

차라리 죽어버릴까?
그러면 다들 후회하겠지

고래이야기 그림책 <두고 보라지>

사진: 산책하는 고래 https://blog.naver.com/whalestory3/221079527070


“지긋지긋해
모든 게 짜증 나!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
멀리 사라져 버릴 거야
차라리 죽어버릴까?
그러면 다들 후회하겠지”

- 고래이야기 <두고 보라지!> 중에서


아마 5살, 6살 무렵이지 않을까?

무엇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나는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았다. 그 시절 나는 빗자루, 먼지떨이 등 손에 잡히는 기다란 것들로 흔하게 맞았던 것 같다. 엄마에게 뭐라고 쫑알쫑알 대다가 빗자루를 든 엄마의 모습에 두 손을 싹싹 빌었다.

푸닥거리가 끝난 후, 나는 엄마 몰래 집을 나왔다. 분한 마음에 무작정 가출을 단행했으나, 6살 아이에게 집 밖은 너무 크고 무서웠다. 딱히 갈 곳 없었던 나는 대문 옆 골목 구석에 몸을 숨겼다. 엄마가 애타게 찾는 모습을 상상하며 복수를 꿈꾸었다. 나의 예상과 달리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는 나를 찾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엄마가 좀 더 찾기 쉬운 곳으로 슬금슬금 이동했다. 결국 대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나를 애타게 찾아주기를 기다렸다. 혹시 찾는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감각의 촉은 집을 향하고 있었지만, 집은 아무일 없는 듯 조용하기만 했다. 배가 많이 고팠지만 6살의 자존심은 제 발로 집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덧 해 질 무렵이 되자, 퇴근길 아빠가 대문 옆 시무룩한 나를 발견했다. 누가 이렇게 화나게 했냐고 나를 번쩍 안아주었다. 나는 결국 꾹꾹 눌러놓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기세 등등하게 아빠 품에 안겨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친구 집에 놀러갔을거라 생각했고 나의 복수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이 났다. 그날따라 아빠가 일찍 퇴근해서 참 다행이었다.


나는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없어지면 얼마나 슬퍼할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비뚤어진 방법으로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우리 집 막내도 약간의 부딪힘에도 다리를 절뚝거리고 조금 울다가도 쓰러진 것 같은 오버액션을 한다. 살짝 스친 상처에도 엄마의 호들갑을 기다린다. 그렇게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건데, 그 마음이 귀여워 웃음이 난다.


고래이야기에서 나온 <두고 보라지!>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참 잘 표현한 책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 참 따뜻하고 상쾌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넌 가장 좋은 친구였어”
“나무들도 슬퍼하나 봐”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너를 좋아한단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할 거야”

- 고래이야기 <두고 보라지!> 중에서


뭐 그렇게 거창한 말도 아니고, 그냥 이런 말이 듣고 싶은 것뿐이다.

그림책은 이렇게 어린 나를 소환하고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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