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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Jul 15. 2020

그의 죽음에 대하여

그의 죽음을 생각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검은 옷을 챙겨 입고 곧 부질없어질 소지품을 가방에 챙겨 넣었을 그의 떨리는 손길을 떠올려본다. 책상에 앉아 마지막을 떠올리며 남겨진 가족을 향해 단어를 고르고, 수많은 생각 속에 차마 전하지 못할 단어를 홀로 삼켰을 그를 생각해본다. 매일 나서는 집을 돌아보며 그는 그동안의 삶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을까. 마지막까지 그를 붙잡았던 생각은 무엇이고 누구를 생각했을까. 한 발 한 발 산으로 내딛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을까 무거웠을까. 마침내 삶의 끝자락을 내려놓았을 때 그는 정말 편안했을까...


오래전 <아름다운 가게>의 연보 디자인을 의뢰받으면서 난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편집담당자를 통해 듣게 된 그는 굉장히 진보적이고 선진적인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앞선 기획과 남다른 고민으로 실무담당자들조차 부담스러워했던 상관.

꼼꼼하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심이 무언지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가 시장이 된 후,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 느끼는 서울은 예전의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소소한 일상에 말을 건다고 생각했다. 

도시라는 차가운 말 대신 '마을'이라는 따뜻한 정서를 갖게 하고

개별 일상 속에 '함께'라는 단어를 심으려 한다고 느꼈다.

서울시와 홍보 관련 일을 하면서 서울시가 지향하는 것들을 조금은 체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기도 했지만,

대한민국의 가장 큰 대도시를 이끄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가, 그도 사람이니 완벽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단단함이었던 것 같다.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뚝심 있게 살아온 활동가.


그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았다. 그것도 성추문을 남긴 채...


연일 뉴스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꿈인 것처럼 그 어떤 사실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정말 그가 그랬단 말인가, 그가 그동안 걸어왔던 길은 무엇이었던가,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이었던가, 그에 대한 어떤 내러티브도 자연스럽지 않았고 그 어떤 반전의 영화도 이렇게 이해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에게서 나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끝내면 끝나는 것인가, 남겨진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만약 그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가 용기 있게 맞섰더라면...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었을 그녀를 생각해본다. 

공무원이 되어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쌓아나가고 나름의 계획과 목표가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을 그녀... 그저 모나지 않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처리했을 그녀. 언제부터인가 소박한 꿈과 일상이 변질되기 시작했을 그녀의 삶. 무언가 계속해서 꼬이고 잘못되고 있음에 괴로워하는 그녀를 떠올려본다. 삶은 언제나 나의 편이 아니었다고...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주홍글씨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리라는 공포에 떨었을 그녀를 생각해본다. 지워지지 않는 몸서리쳐지는 그 순간, 용기 내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했을 그녀의 눈물을 가늠해본다.


난 그를 존경했었지만, 

그의 낮고 고된 삶을 응원했었지만,

그가 해왔던 많은 실천에 감사했었지만,

그를 추모할 수는 없었다. 


자신 눈밑의 일상까지 채울 수 없었던

한 인간의 허기와 쓸쓸함에 다만 연민할 뿐...


그리고 반복되는 무책임한 도피가

사회적으로 유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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