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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은지 Feb 16. 2016

아이슬란드에서만 허용되는 것들

동성애자 정치인, 독서 토론 프로그램이 시청률 1위, 돈 많이 버는 어부

아이슬란드에는 'Icelandic(아이슬란딕)'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이슬란드스럽다'라는 형용사로 쓰이곤 하는데, 음악, 풍경, 그림 등 모든 것에 아이슬란딕 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있다. 단, 사람에게 쓰이면 조금 다르게 해석된다. 한 남자가 있을 때 그가 내 주변의 모든 친구와 잤다는 내용으로 커플이나 사람에게 쓰면 치명적인 표현이라고 한다(아이슬란드 대학으로 교환학생 다녀온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다.). 아이슬란드는 인구는 고작 32만 명, 아주 작은 섬이라 다양한 성문화가 공존한다.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큰 게이 퍼레이드 축제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게이퍼레이드 때문에 무지개로 변한 레이캬비크 메인 스트릿 . 무지개로 덮인 이 거리를 성소수자와 그의 가족들이 함께 행진한다.
동성애자도 국가의 원수가 될 수 있는 나라


아이슬란드의 첫 여성 총리인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총리는 세계 국가 지도자 가운데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힌 최초의 인물이다.그는 2010년 총리 신분으로 오랜 연인과 결혼했다.  


요한나 시거다도터 총리(좌)와 그녀의 부인 요니나 레오스도티르(우)


1970년 결혼해 두 아들을 낳은 요한나 전 총리는 남편과 이혼한 뒤 여류작가 요니나 레오스도티르와 동거해왔다. 2002년 동성부부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았으나 결혼식을 올리진 않았었다고 한다. 성별 상관없이 성인 2명이 동의하면 결혼과 입양이 가능한 아이슬란드 법이 지난 16일 국회를 통과하자 시거다도터 총리는 시행 첫날인 27일 결혼식을 올려 첫 동성 부부로 거듭났다. 결혼식을 마친 뒤 시거다도터 총리는 “새로운 아이슬란드 법으로 이득을 얻었다.”고 짧고 유쾌한 소감을 남겼다고 아이슬란드 언론매체들은 전했다.  


뿐만 아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시장, 욘 그나르는 러시아 정부의 게이 혐오,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에 대한 대우가 점점 악화됨에 따라 레이캬비크와 모스크바의 자매결연 협정을 파기했다(2013년).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욘 그나르 레이캬비크 시장

욘 그나르 시장은 게이 퍼레이드 영상으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었다. 레이캬비크 게이 퍼레이드에서 시장은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발라클라바 모자를 쓰고 나와, 유죄 판결을 받은 러시아의 록밴드 '푸시 라이엇'을 패러디했다.



대한민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국가의 원수가, 혹은 차기 총리 후보가 그렇다면, 어떨까. 확실한 건 '빨갱이'보다 더욱 심한 원색적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당선은커녕 후보 지명에도 오르지 못하고 희화화 될 것이 자명하다. 동성애자 정치인이 국가의 원수가 되는 일은 아이슬란드에서만 허용되는 것이 아닐까.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대단하다. 여기서 대단하다고 느끼는 점은, 동성애자를 정치인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 정치인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동성애자  정치인뿐만이 아니라, 동성애가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들이 온전히 '성소수자'가 아니라  '그저 국민'이라는 점이다. 소수자가 아닌 보통이 된다는 건, 그만큼 대단한 일이다. 자유의 나라 미국도 아마 이러진 못할 것이다.


독서 토론 프로그램이 TV 황금 시간대에  편성된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이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대우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아이슬란드이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배 속에 자신만의 책을 갖고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아이슬란드는 인구 대비 저술가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


인구 약 32만 명 중 1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10%나 된다고 한다. 저자가 많으면 수요도 많다. 출판업, 서점업계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진다. 당연한 결과다. 독서 토론 프로그램이 TV 황금 시간대에 편성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인기 선물로는 언제나 책이 1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의 책사랑은 국제기구로부터 인정을 받았을 정도이다.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는 지난 2011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를 ‘세계문화도시’로 공식 지정했다. ‘세계문학 창의도시’는 전 세계에서 레이캬비크를 포함해 아이랜드 더블린, 영국 에든버러, 호주 멜버른, 미국 아이오시티 5곳뿐이다. (문화일보 2013년 10월 17일 기사 中 발췌)

아이슬란드는 스토리텔링의 나라

아이슬란드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트롤과 요정, 이밖에 지역마다 전설이 다 있다. 영국 BBC는 전체 인구수가 웬만한 도시 한 곳의 인구보다 적은 아이슬란드가 세계적인 ‘책사랑’ 국가가 된 비결을 집중 조명한 적이 있는데. “아이슬란드는 스토리텔링의 나라”라면서 “어둡고 추운 밤에 이야기를 지어내고 들려주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일이 있겠는가”라는 인터뷰가 실린 바 있다.


‘물과 불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빙하와 화산으로 뒤덮인 장엄한 환경 속에서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됐고, 자신이 직접 책을 쓰거나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기 좋아하는 성향이 ‘국민 기질’로 깊이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독서광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가벼운  읽을거리만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셀러닷컴은 “경제위기부터 화산 폭발에 이르기까지 어떤 주제든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방송보다 책을 통해 정보를 얻기를 좋아한다”면서 아이슬란드를 강타한 경제위기의 원인을 파헤친 의회 특별조사위원회 보고서가 2010년 출간되자마자 난해한 내용과 2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팔려나가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온 국민이 독서광이다 보니 아이슬란드에서는 1년 내내 책 관련 페스티벌이 이어진다. 매년 봄 시즌에 레이캬비크에서 열리는 ‘북마켓’ 행사는 마음에 드는 책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9월에는 ‘국제문학페스티벌’ , 10월에는 전국의 모든 학교와 도서관들이 공동 개최하는 ‘독서 페스티벌’이 열린다.

‘독서 페스티벌’은 해마다 1권의 책 또는 하나의 주제를 선택해 온 국민이 함께 읽고 토론해 보자는 취지에서 열리는 행사이다. 정부도 저술 및 번역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전 국민의 80%가 어부인 나라

아이슬란드의 국민 대부분의 직업은 어부다. 어부였거나 어부를 했거나 다시 어부로 돌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작은 나라에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태풍이 불어닥쳤다. 바로 돈 태풍을 맞은 것이다. 은행을 통해 돈장사를 한 것이다. 어부들은 고기를 잡지 않아도 아주 쉽게 큰 돈을 벌게 됐다.


영화 <빅 쇼트>를 보았는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바람이 아이슬란드까지 불었다가 역풍으로 돌아온 거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기 전까지도 아이슬란드 내에서는 주택붐이 일어나 새집을 사는 게 유행이었고 집값의 100%까지 대출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대출하면 곧 외화대출을 의미했다. 돈맛을 안 이들에게 이제 고기를 잡으로 추운 바다로 나가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었다. 거리는 온갖 호화 명품으로 넘쳐나고 최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거리를 누비게 되었다.



어부가 세계적인 금융 투자자로

아이슬란드는 외국 돈을 끌어들여 쉽게 돈을 벌어보기로 결정했다. 해외자본의 투자 관련 규제를 풀고 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투자하기는 쉽고 이자는 높으니 해외투자자에게는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이미 국제적으로 유동성이 넘쳐 갈 곳을 찾아 헤매던 시기였다. 세계적인 투자회사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시작으로 국제 자금이 아이슬란드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2003년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의 자산은 합쳐야 수십억달러(수조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3년 뒤 이 3대 은행의 자산을 합치니 1400억달러(약 154조원)가 됐다. 전체 자금의 3분의 2를 외국에서 가져왔다. 영국에서는 아이슬란드에 투자하는 ‘아이스 세이브’라는 금융상품이 대히트를 기록한다. 얼음나라에 돈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그 아이슬란드가 2008년 갑자기 국가부도를 선언한다.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빚을 늘려놓았다가 상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예금이 인출되고 지급불능 사태가 벌어진다.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파산 뒤 한 여론조사에서는 아이슬란드 국민의 3분의 1이 ‘이민을 원한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한겨레 21, 20156년 2월 6일 발췌)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1153.html


정부가 3대 은행을
파산시킬 수 있는 깡다구

아이슬란드 정부는 3대 은행 모두를 파산시킨다. 정말, 파격적인 행보다. 이는 은행과 아이슬란드 국민의 자생력을 위해서라고 아이슬란드 정부는 밝혔다. 그리고는 위기 직후에 모든 고기잡이 장소를 개방하고 시민 누구나 하루 650kg까지 물고기를 잡고 팔 수 있게 규제를 풀었다. 돈에 대한 규제는 묶고 고기잡이에 대한 규제는 푼 셈이다. 몇 년 전 금융 규제를 풀었던 것과 정반대 방향의 정책이다.


놀랍게도 아이슬란드 사회는 다시  행복해졌다. 자산 가치는 추락하고 금융산업은 쪼그라들었다. 대신 시민들은 너도나도 주중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물고기를 잡으러 몰려나온다. 몇 년 동안 추락하던 어업은 다시 아이슬란드의 주력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어업이 아이슬란드 수출의 42%를 다시 차지하게 된다.  (한겨레 21, 20156년 2월 6일 발췌 및 편집)

아이슬란드에서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아이슬란드에서 허용되는 것들'이라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이것들은 아이슬란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한 것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한편으로는 부럽다. 국민 정서나 시스템이 매우 우리나라와 상반된 점이 특히 그렇다. 아이슬란드가 어떤 이에게는 유토피아로, 어떤 이에게는 이상한 나라로 비치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어떤 이들에게도 이런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그럼에도 국민 삶의 만족도가 전 세계 1위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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