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이 영화에는 없었지만 생뚱맞은 군무가 툭 튀어나오는 인도영화의 발랄함이 나는 좋다.
독특한 그들의 영어 억양이 재미있고, 속눈썹 짙은 그들의 둥근 눈도 참 아름답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건 내가 필리핀에 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아열대인 연대의식’에서 기인한 호감이 더해져서 일수도 있겠다.
필리핀과 인도는 종교도 다르고 점령국도 달랐기에 다른 부분도 많지만 대체적으로 습하고 더운 날씨에 영어를 공용으로 쓰며 개발 도상국이라는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도 영화 속 서민들의 모습, 거리의 풍경, 빈부격차 같은 것들은 마닐라에 사는 나에겐 그다지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며, 자연스레 이 곳 사람들을 떠올려 보게 했다.
이 영화는 ‘발람’이라는 인도 하층민 청년이 부유층 운전기사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계급 간의 격차와 거기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리핀은 인도처럼 계급제도가 있었던 나라는 아니지만 아직도 만연한 극심한 빈부 차이는 가장 엄격한 계급제도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며 가슴 아팠던 것은 처음부터 대놓고 나쁜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점점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 즉 착한 주인이었던 아쇽과 충성스러운 기사였던 발람의 관계 변화 때문이었다.
나도 처음 이 곳 마닐라에 왔을 땐 지리에 서툴고 교통사고 시 안게 되는 외국인으로서의 부담감도 있어 운전기사를 고용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값싼 인건비도 한 몫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적은 내부에 있는 법이라고 가사도우미나 운전기사들과의 작은 마찰이 상상 이상의 커다란 사건으로 발전되는 경우는 이 영화에서 뿐 아니라 실제 이곳에서도 보고 들어 왔기에 웃으면서도 경계심을 놓지 않았고 의심을 거두지도 않았다.
그들 중에는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도 있지만 처음부터 작정하고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 영화에도 나오듯이 기사들이 주인을 속이는 속임수는 다양하고 기상천외하다.
받아간 돈만큼 다 기름을 넣지 않는 주유비 속이기는 기본적인 것이고, 타이어 펑크가 났다고 거짓말해서 수리비 챙기기, 차 수리 시 싼 부품으로 수리하고 정품 값으로 영수증 만들어 제출하기 등 아주 다양하며, 친구네는 기사가 그만두면서 앙심을 품고 스페어타이어를 팔아먹어 버린 바람에 정작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 길거리에서 낭패를 보기도 하였다.
처음부터 대놓고 그러는 사람들이야 무시하고 인연을 정리하면 되지만, 이제 이쯤이면 고용관계를 떠나 친구라고 불러도 되지도 않을까 싶을 만큼 믿었던 사람들이 호의와 신뢰를 무시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일 때는 서운하고 화도 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경우는 오랫동안 잘 일해왔던 기사가 어떤 언질도 없이, 그 전날까지 표정 하나 바뀌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그만둬 버리는 것이었다.
누구나 혹할만한 큰 유혹이 아니라 아주 조금의 월급 인상만 있어도 그들은 쉽게 일자리를 옮겨갔다.
언젠가 제임스라는 기사가 말도 없이 결근을 했었는데 그날 다른 곳의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 그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섭섭하고 화도 나서 혹 돌아오더라도 해고하리라 다짐했었다.
다음 날 제임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을 했다. 직접 가보니 여러 조건이 거기보다는 여기가 나은 모양이었다.
섭섭함으로 심통이 나있는 내 앞에서 겸연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던 제임스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심각한 문제였어요’ 직역하자면 이렇다.
그의 눈동자는 미안함보다는 오히려 당당함, 절박함에서 나오는 당당함이 배어있었다.
작은 돈보다는 우정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고 따져 물어야지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 당당함에 압도되어 그냥 차 열쇠를 건네주고 말았다.
그저 평균치의 급여와 작은 호의를 제공하면서 이만하면 꽤 괜찮은 고용인이라 자만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그 면접 사건을 가끔 농담거리로 주고받기도 하며 잘 지냈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보다도 월급 액수가 이 관계 유지에 있어 가장 큰 의미인, 아니 큰 의미가 될 수밖에 없는 그의 상황을 나는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환기시켰다. ‘.
그래야 그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을 것 같았고, 그가 훌쩍 그만둔다고 해도 화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일여 년 후 결국 제임스는 나보다 꽤 많은 월급을 주는 정식 회사에 취직이 되어갔다.
이번에는 서로 거짓말하지도, 화내지도 않고 웃으면서 월급을 정산했다.
그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에 그 회사만큼 월급을 많이 못 줘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돈 많이 벌라고 덕담도 해주었고, 그는 이때까지 친구처럼 잘 대해줘서 고맙다고, 그 회사가 힘들면 다시 돌아오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고용관계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인간관계는 서로의 입장 차이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입장이란 것은 근본적으로 서있는 곳이 다른 사람의 상황이다 보니 완벽히 좁혀질 수 없고 서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제임스의 입장을 마음으로 이해한다기보다 머리로 외우려고 노력했다.
어설픈 이해보다는 그의 입장을, 그의 결정을 비난하지 않고 그저 인정해 주는 게 내가 베풀 수 있는 최선이었다.
국적도, 환경도, 경제상황도 차이가 있는 내가 그의 입장을, 절박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었다.
그리고 나도 상처 받지 않기 위한 작은 자구책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와 나의 관계가 영화와 다르게 비극적이고 슬프지 않게 끝난 것만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영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제임스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영화 속 발람처럼 떳떳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길은 걸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것 말고는 가난을 벗어나는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도 않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엔딩 크레딧을 오래도록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