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선생님 언제 놀러 와?
“엄마, 다음 주 금요일 10시야”
PTC(parents and teachers conference) 약속이 또 잡혔다.
그냥 학생 편에 들려 보내 주셔도 될 것을 굳이 내 얼굴은 왜 보자고 하시는 건지, 참.
아이의 학교는 일 년에 세 번, 학기말 고사가 끝나 성적표가 나오면 담임선생님이 꼭 부모님을 불러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누며 성적표를 나눠준다.
아이들이 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는 그나마 좀 익숙해졌지만 이곳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는 적잖이 부담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식을 맡겨놓은 입장에서 선생님은 참 어렵고 조심스러운 대상인데 이곳 학부모들은 선생님 앞에서도 스스럼이 없었다.
두 손, 두 다리 가지런히 모으고 선생님 앞에 경직되어 앉아있는 나와는 달리 그들은 느긋하고 재찍한 자세로 편하게 앉아서 친한 친구에게 얘기하듯 자식 걱정을 털어놓고 또 자랑을 하기도 했다.
큰 아이는 한국에서 겨우 한 달 정도만 초등학교를 다니다 이 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 한 달 동안 겪은 초등 1학년생의 엄마 노릇은 나에게는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등교 첫날 교실이 어딘지를 알려주는 것으로 엄마의 의무는 끝나는 것인 줄 알았던 나는 1학년 엄마들은 자발적으로 교실 청소 당번, 환경미화원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두어 주쯤 지나 전출 수속을 밟으러 가서 다시 뵌 담임 선생님은 어머니 얼굴 보기 너무 힘들다는 뼈 있는 말씀과 함께 아이가 산만하다는 걱정도 한참을 풀어놓으셨다.
이렇게 깐깐하신 선생님을 1년을 안 봐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여기 마닐라로 왔지만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의 학교생활이 처음부터 순조로우리 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큰 아이는 성격이 외향적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입학 첫날부터 교실 입성을 거부했고
겨우 교실에 들어가서도 책상에 얼굴을 묻고는 몇 시간을 울며 버티다 왔다. 반마다 두 어명씩은 있는 이런 녀석들 때문에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담임 선생님 대신 교장, 교감 선생님이 교실 앞에서 아이들을 회유하고, 가끔은 일부러 관심 없는 척해가며 아이들을 지켜봐 주었다.
빨리 영어와 가까워지는 것이 학교와도 가까워지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집으로 와서 수업을 해주는 튜터 선생님을 수소문했다.
한국 엄마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꼼꼼하고 수업내용 충실한 여자 선생님을 어렵게 모셔 왔지만 공부에 뜻이 없는 아들은 일주일을 채우지 못했다. 겨우 그 선생님의 소개로 다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경력도 없고 나이도 어린 남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과 아이를 방으로 안내하고 방 밖을 서성이며 조마조마한 맘으로 귀를 기울이는 며칠이 지나자 간간히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간식을 넣어준다는 명분 하에 염탐하러 들어간 나는 나란히 누워서 얘기하고 있는 둘을 보고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엄마 마음은 타 들어갔지만 선생님과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며 선생님이 놀러 오는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을 비우고 어쩔 수 없이 몇 달을 기다리자 그들은 슬슬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외국인 학생을 가르쳐 본 경험은 없었지만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같이 노는' 그 선생님 덕분에 학교 적응도 더 빨라졌던 거 같다.
학교에 슬슬 적응이 되어가자 예체능 교육은 초등 저학년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한국 엄마들의 불문율에 따라 나도 피아노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투덜대며 끌려 온 아이 앞에 나타난 피아노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등장한 그녀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내 말에 당연히 그 주체가 아들이 아닌 나라고 생각했는지 피아노를 배운 경험, 기간 등에 대해 물었다.
피아노를 배울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들이라고 말하자 당황한 웃음을 지으며 아들을 불러서 피아노를 만져보게도 하고 연주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며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수업 스케줄, 강습비등을 확인하고 시간을 결정해서 다시 오겠다며 나가려 하자 그녀는
‘당신의 아들이 지금 정말로 피아노 배우기를 원하나요?’ 하고 목소리를 고쳐가며 물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대답을 얼버무리며 나왔지만 돌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피아노에 대한 갈망은 고사하고 단순한 호기심도 없는 아이를 나의 욕심 때문에 윽박지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 학원에 가기 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를 회유하기 위해 시작한 허심탄회한 대화는 피아노는 지금 배우지 않고 축구 교실에 등록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이렇게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12년을 보내는 동안 아이와 나는 참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아들은 장난스럽고 다소 산만한 성격 때문에 앳된 여자 튜터 선생님을 울린 적도 있고, 나를 PTC에서 만난 담임 선생님 앞에서 연신 사과만 하고 오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울며 보낸 처음 두어 달을 제외하고는 늘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으로도 활동해서 초등 1학년 담임으로부터 책상에 엎드려 있던 그 울보 소년의 큰 성장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았으며, 피아노 대신 선택한 축구부 활동에서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재바른 몸놀림으로 코치의 사랑과 주목을 받았다.
필리핀 교육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질 차이도 크고, 사실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따져 보자면 한국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공부, 입시에 대한 압박도 집착도 많지 않은 탓에 한국처럼 성적비관 자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폭력도 심각하지 않다. 물론 이런 자유로운 상황이 전체적인 교육 수준을 하향화 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간의 수많은 선생님들 모습을 떠 올려 보면 그들은 언제나 아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여유를 갖고 있었다.
아이들을 닦달하지도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때론 좀 애착을 가지고 엄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분발시켜주지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선생님들보다 실력이나 교수법은 좀 부족할지 몰라도 친구 같은 선생님으로는 만점인 그분들 덕에 아들의 학창 시절은 마닐라 하늘 마냥 늘 푸르고 맑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과도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고 장난치며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그 학창 시절은 필리핀이 아들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선생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