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반백 수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닐라 Jun 08. 2022

마음에 이름 붙이기

<어떤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줄 아는 깊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마음의 고통에는 여러 가지 것이 속한다. 

외로움도 고통이고, 불안함도 그러하며, 슬픔도 포함된다.

그러나 난 나의 마음을 그러한 단어로 규정짓는 것이 싫었다.

복잡 미묘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형용사로 표현해 내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 감정이 그 단어가 지칭하는 그것이 맞는지 자신이 없었으며,

내가 그 형용사로 표현해 버리면 내 감정은 그것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외롭다고 말하면 외로움에게 지고, 쓸쓸하다 말하면 쓸쓸함에 굴복당할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없애고 달래는 방법은 그것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는 것이라 정했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얘기하지 않는 것이 그 고통을 없애는 가장 신속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은 점점 섬유화가 돼가고 있는 듯 보였다.

딱딱해지고 표독스러워졌다.

시시콜콜 자기감정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른스럽지 못하다 비난했고,

정말 저들은 저리도 자신의 감정을 잘 아는지 의아했고, 그러다가 그들의 솔직함이 부럽기도 했다.

슬프다, 힘들다, 외롭다 전하는 그들의 말에 찬물을 끼얹으며 그들의 고통에 같이 이름 붙여주고, 토닥여주길 꺼렸다.






나는  스스로 선을 그어놓고 "이 마음은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저 마음은 하찮아" 하며 입을 막고 귀를 닫았고아무도 내 고통은 모른다고 단정 지었다. 

감정풀이, 신세 한탄하는 철없는 사람이 될까 봐, 그렇게 보이는 게 두려워서 나를 꽁꽁 싸맸던걸 후회한다.

내 고통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털어놓아야 남들 또한 나에게 그렇게 다가올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임을 몰랐다.


 “나는 예전에 이랬었어."

 "나 요즘 ㅇㅇㅇ 때문에 힘들어"

" 나는 이럴 때 너무 외로워” 하고 시작하는 그 말들이 

그저 그들의 넋두리가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작은 몸짓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서로 자연스레 자신의 상처를 얘기하며 친해지고, 공감하고 또 치유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지나간 인연들이 아쉽다.





자신의 얘기를 먼저 꺼낼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실수를 무안해하지 않고 얘기해주고, 자신의 고통을 끄집어내 보여줄 용기가 있는 사람이 타인의 고통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 깊이 공감해줄 경험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바람의 냄새를 맡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