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 가게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김밥 16줄을 주문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시설이라 예산 정리를 해야 하는데, 끝자리가 88원으로 맞춰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56,000원인데 55,988원에 해줄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예산을 끝자리까지 맞춰서 써야 한다고 했다. 나도 아주 잘 안다. 옛날에 일했던 적이 있어서 예산을 다 맞춰서 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끝자리 맞추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는 흔쾌히 해주겠다고 했다. 물론 엄마, 아빠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해주실 분들이다. 전화를 마친 뒤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를 했고, 엄마, 아빠도 잘했다고 했다. 사회복지시설에서는 김밥 16줄을 잘 포장해 갔다.
가게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 급식비로 사용해야 하는 예산이 있는데, 12월까지 사용해야 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건 1월이라서 혹시 미리 결제하고 1월에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물론 이것도 엄마, 아빠의 동의를 구하기도 전에 해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마치고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를 했고, 역시나 이것도 어차피 엄마, 아빠도 해줄 일이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은 가게에 와서 카드 결제를 했고, 결제한 금액만큼 1월에 와서 식사를 하거나 포장해 가겠다고 했다. 장부를 만들어서 기록하겠다고 했다.
25년도가 마무리되는구나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역시 한 해의 마무리는 예산 사용이다. 모든 정부 보조금을 받는 곳에서는 예산을 다 쓰고 정리하는 게 중요하니까. 종종 생각한다. 사회복지시설이나 교육현장에서는 예산을 좀 더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정작 필요한 1월에는 예산을 사용 못 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데, 이를 보완할 방법을 찾아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