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게는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화구도 옛날버전이었다. 그래서 화구의 구멍이 막히면 화구를 불에 태워서 안에 들어간 이물질들을 다 태워서 청소를 해야 했다. 이렇게 청소를 하면 엄청난 연기와 독한 냄새가 나온다. 그래서 내가 있을 때는 하지 말라고 난리를 치니까 내가 없을 때 했었다.
이렇게 청소하는 모습도 마음에 안 들고, 불완전연소로 인해 나쁜 가스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화구를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알아보다 포기하다 알아보다 포기하다를 반복하고 있던 어느 날, 가게에 한 아저씨가 찾아왔다.
화구 안내 책자를 가져왔다. 완전연소가 가능하고 청소도 태워서 하지 않아도 되는 화구였다. 알아보고 있던 거라 내심 반가웠다. 정수기 렌탈하는 것처럼 3년 약정으로 계약을 하면 계약 만료 후에 소유권은 우리에게 온다고 했다. 3년 이내에 가게를 폐업하게 되면 회사에서 다른 곳으로 연계해서 우리 가게에는 피해가 생기지 않게 해 준다고 했다. 그리고 4개월마다 관리를 해주며, 혹시 그 사이에 화구에 문제가 있으면 새로운 걸로 교체를 해준다고 했다. 관리를 해준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때, 엄마는 자리를 비웠고 아빠랑 나는 이때다 싶어서 계약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계약을 하는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요금 납부를 회사 CMS나 자동이체가 아니었다. 내 신분증을 요구했고, 인증번호를 달라고 했다. 하다 보니 캐피털에서 대출을 받는 형식이었다. 마치 차량 구입하는 것처럼. 그래서 자리를 비운 엄마 대신 내 명의로 게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세금계산서 요청을 했는데, 처음에는 된다고 했다가 조금 이상하게 부가세는 따로 통장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정말 빠르게 당일 화구 설치가 완료되었다. 화구가 바뀌니 참 행복했다. 사실 이 시기가 엄마의 폐암 수술 후였기 때문이다. 10여 년이 넘게 화구 앞에서 나쁜 가스를 들이마셔서 폐암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항상 마음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적어도 이젠 나쁜 가스는 적게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첫 세금계산서 발행 시기가 되었는데, 발행이 되지 않았다. 기다렸다. 두 번째, 세 번째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연락을 할까 하는 중 관리를 해주겠다고 왔다. 와서 쭉 둘러보고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아직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괜찮다며 다음에 올 때는 뭔가를 갈아주겠다고 했다. 세금계산서 발행 이야기를 하니 사무실에 연락해서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세금계산서 발행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관리가 와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 오지 않았다. 세금계산서 발행도 멈췄다. 나도 바쁘다 보니 놓쳐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무하다 싶어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핸드폰도, 사무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해봤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다른 번호로 전화를 해봐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핸드폰 컬러링은 변함없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 차단을 해 놓은 것일까?
그래서 일단 따로 보내던 부가세는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소비자 보호원에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이것은 개인간이 아니라 사업상 문제이므로 다른 곳에 연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연락처를 알려주기는 했는데, 연락을 해보지는 않았다. 귀찮았다. 싸우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한테는 그럴 기운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냥 두기로 했다. 화구를 바꾼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화구 사기꾼아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말지 뭐. 시간은 참 잘 흐른다. 벌써 납부해야 하는 횟수가 10번도 남지 않았다. 뭐든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충분히 알아보고 제대로 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