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연대기

알을 깨며

by 밤버울

내가 처음 글을 쓴 건 아마 초등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라곤 이웃 언니가 썼던 한철 지난 올컬러 백과사전을 읽었던 것뿐이고, 정작 소설은 읽지 않았던 내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왜인지 모르겠다.


어설픈 글씨체로 가상의 인물에 대한 소설을 짧게 끄적이다 같은 반 친구에게 보여줄 때도 있었고, 작은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보기도 했었다.


당시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할 때라 지금처럼 공격적인 어투나 빨간펜 선생님 같은 댓글들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


어린아이가 으레 그렇듯 나는 금방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잃고 암흑과도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두운 기억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거세게 온 중2병 덕분에 나와 세상을 단절한 채 다른 데 정신이 팔렸단 게 맞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어딘가에 나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은 나에게 없는 것 같았다.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내 글을 남긴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부끄러움이 먼저인데, 그때는 얼른 내 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작은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엄청난 인기는 아니었지만 어설픈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소소한 독자들을 모으며 반응도 얼추 나쁘지 않았다.


글에 대한 자신감은 그때 붙었다. 그 이후로 ‘나도 글은 좀 쓰지.’하고 으스댔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달콤한 경험을 한 뒤, 나는 대학에 가지 않고 그 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돈도 벌고 쓰는 재미에 빠져 글쓰기는 뒷전이었다. 글쓰기에 쏟을 열정은 돈 쓰기에 쏟아부었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


그렇게 열정이 털리고 나니 좀처럼 키보드 위에서 고민 없이 움직이던 내 손가락이 조금씩 움츠러들고 망설임을 더해갔다.

재밌는 영상에 재밌다고 댓글을 다는 것도,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글을 향한 열정에 조금 더 불을 지폈어도 좋았겠지만, 성숙하지 못한 나는 소비와 나를 지치게 만드는 인간관계에 공을 들였다.


결국 남은 건 쌓여 있는 카드값과 사소한 오해, 잠들 수 없는 밤의 이불킥뿐이었다.






사회생활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한 선택 중 올바른 선택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 내 인생의 늪과 같은 시간이었다. 움직일수록 숨 쉴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당시에는 그 원인을 남에게서 찾았다.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다니.’

‘내 마음을 왜 몰라주지.’

‘내 의도는 이게 아닌데.’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내가 그 생활과 환경에 맞지 않았고,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았고, 나는 내 삶을 살지 못한 것뿐이었다.



*



뭘 해도 풀리지 않아 쪼그라든 마음과 자신감은 나를 점점 두꺼운 갑옷 속에 파묻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바깥에서 사용하는 가면의 종류가 늘어난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괜찮았다. 적어도 나는 상처를 덜 받고, 조금씩 나만의 패턴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다시 용기를 주었던 것도 글이었다.


읽는 것보다 사는 속도가 빨랐던 나의 독서 습관은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나의 글쓰기 열정에도 불을 붙였다.


다만, 젖은 나무에 불 붙이듯 그 과정은 지루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멈추는 일은 없었다.



*



처음엔 무슨 글을 써도 문장이 문장 같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쓴 글을 읽고 ‘이걸 내가?’하는 날이 많았다.

시간은 지났지만 내가 쓴 문장이니 내 취향이었고,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와의 비교는 나에게 독이 될지도 몰라 일부러 피하고 있던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과거의 나 자신이라니.


끝을 맺지 못해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던 글들을 읽으며 다시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한 날이 많았다. 그야말로 ‘삘을 받아’ 쓴 글들도 있었지만 어딘가 모자라고 성에 차지 않았다.


연습을 해보는 셈 치고 묵혀 두었던 글 몇 편을 어느 플랫폼에 올려 보았다. 생각보다 저조한 반응에 좌절도 잠시, 업로드를 했다는 사실 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분이 됐다.



아, 이런 마음이었지. 이런 감정으로 글을 올렸었지 싶었다.



이제 아무런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머리에선 점점 새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글을 쓴다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글쓰기는 지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도 글을 쓸 때만큼은 어느 때보다 나는 나에게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올린 글의 저조한 반응을 본 그 순간이란. 쥐구멍이 있다면 정말 숨고 싶을 정도였다.


아직도 어설픈 글이 부끄러움은 물론이요,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나의 특성들을 글을 통해 보니 마치 길바닥에서 발가벗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선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니 견뎌내야 했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결국 그때 올렸던 글은 얼마 후에 삭제를 했다. 씁쓸하긴 했지만 글을 내리니 마음 한구석은 시원했다.


왜 그랬을까. 나의 부끄러움이 사라졌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마 내 글 속의 나를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며칠,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나는 나의 존재를 꽁꽁 숨기고 글을 쓰리라 생각했다.


나를 숨긴다고 숨겨질 게 아닌데, 어떻게 하면 나를 숨길 수 있을까 생각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얼마나 모순적인 생각이었는지, 나는 그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내가 글쓰기를 결심한 이상 나는 나를 드러내야만 한다.

인정하고 나니 이제야 조금 숨통이 트인다. 소심하게 움츠렸던 몸이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앞으로 글을 쓰는 이상 나는 조금씩 나를 드러낼 생각이다.

처음엔 분명 어설프겠지만 결국엔 익숙해지리라.



나는 나의 적응력을 믿기로 했다.

글을 쓰지 않고 보내는 시간을 후회하기보다 글을 쓰며 성장해 나가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글쓰기를 결심한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솔직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어야 할 마음가짐은 내 결심에 내가 찬물을 끼얹지 말자는 거다.


KakaoTalk_Photo_2025-05-18-23-47-36.jpeg 동해의 일출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 간 여행에서. 태양같은 글쓰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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