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읽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거지

읽지 못한 이야기, 쓰지 못한 나

by 밤버울

기억도 흐릿한 내 독서의 시작을 떠올려보면 그 흔한 그림책도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어찌 한글을 떼고 나서야 내 손에 책이 있었달까.

부모님에게 물어보진 않았으니 철저히 나의 기억을 토대로 글을 써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엄마는 내가 읽을 책을 직접 사기보다는 지인들에게 얻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어린이 서적의 짧은 유효기간도 기간이거니와 외동인 나를 위해 굳이 새 책을 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한 철 지난 그림책과 어린이 백과사전으로 시작한 나의 독서는 홀로 방을 뒹굴던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총천연색 그림과 기름냄새가 옅게 나던 백과사전 속 우주 사진은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떠오른다.


첫 시작이 그랬던 탓일까.

내 독서 목록엔 소설이 아주 적다.

언젠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나의 꿈이 민망할 정도다.


그나마 다행이랄지, 학창 시절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은 그 당시 10대들이 그랬듯 내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친근하고 현실감이 넘치는 등장인물과 대사들을 통해 울고 웃었던 시간이었다. 동시에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흥미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 소설도 한 때뿐,

금세 다른 흥미를 좇던 나는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을 잊은 채 살았다. 세상엔 책 보다 재미있는 게 더 많게 느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달까.


공부에도 그다지 취미가 없던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로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사회생활도 하고, 돈도 벌고, 내가 나를 책임지기도 해야 했다.

크게 바쁘지도, 그렇다고 한가하지도 않은 날들이 반복됐다. 가만히 앉아 멍을 때리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활자와 거리가 먼 시간을 보냈다.

활자를 볼 시간도 아까웠다.

하지만 책을 사 모았다.


누군가가 내 취미를 물으면 ‘독서’라고 대답을 하며 괜히 우쭐거리는 게 좋아서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사 모았던 책을 보면 배움이 부족했던 학창 시절의 틈을 메꾸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배우고픈 마음은 있다.

하지만 거창한 행동은 소심한 탓에 하지 못했다(예를 들면, 대입 재도전?)


당장에 할 수 있는 건 독서였다.

이미 읽지도 않는 책을 야금야금 사모으던 나는 책을 꽤 많이 갖고 있었다.

아마 다 읽으려면 적어도 내 속도로 몇 년은 걸릴 정도?


독서 방법을 몰라 이 책 저 책 읽어보았지만 딱히 와닿지도 않고 나와는 맞지 않아 보였다.

그냥 내 인생을 살듯, 독서도 그냥 부딪히고 해 봐야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것만 같았다.


과시는 결핍이라고 했나.

모자란 지식 탓에 책을 사 모았던 걸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나의 독서법은 공부와 다름이 없다.


books-1.jpg 유튜브가 잘 되어 있는 세상에서 책으로 운동 배우기 �


밑줄을 치고, 플래그를 붙이고, 밑줄을 정리하고, 그중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은 노트에 적는다.


내 독서법을 적어보자니 참으로 비효율적인 공부법과 다른 게 없다는 사실에 실소가 터져 나온다.

괜찮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게 좋다.


덕분에 나는 그나마 읽은 책의 감상을 조금 더 기억할 수 있고, 나와 맞지 않는 책을 판단하는 능력도 생겼다.

이런 작은 성과에 독서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 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비효율적이어도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책을 만나기도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읽고 난 후 뿌듯함으로 끝내지 않고,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책을 이용하는 내 모습이 썩 싫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론 지식이 쌓여가는 것은 좋았다. 내 감정의 원인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가니 재미도 있었다.


다만, 내가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게 문제였담 문제랄까.


‘어? 글 쓰는 거 재밌는데?’하고 생각했던 건 아마 중학교 무렵이었다.


국어 시간에 소설 ‘소나기’의 뒷부분을 이어 썼는지 어쨌는지.

강렬한 기억치곤 세부내용을 잊어버렸지만, 아무튼 내가 쓴 짧은 뒷 이야기는 좋은 평가를 받았더랬다.


그 이후 몇 번 정도 인터넷에 내가 쓴 글을 올렸다 지워보기도 하고 좋은 반응을 얻어 본 적도 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도 10대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을 뿐, 지금 와서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글이었고, 그 자신감은 어려서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내가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지금.

글을 쓰다 보면 바삐 움직이던 손가락이 멍하니 멈추는 순간이 많다.


딱 맞는 단어가 있었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이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가 있었는데 생각나지 않았다.

상황을 풀어낼 스킬이 있을 텐데 머릿속이 백지장이다.


그렇게 재밌다고 느껴졌던 글쓰기인데.

마치 친구처럼 느껴졌던 글쓰기가 이제는 처음 본 타인처럼 느껴졌다.


뭐가 부족한 걸까 생각을 해봤다.

시중에 나온 작법서를 도장 깨기 하듯 사 모으고, 읽었지만 내게 딱 맞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books.jpg 뒤에도 작법서 있어요 (소근소근)



그러던 중에 무심코 바라본 책장에서 나는 내 글쓰기가 정체된 원인을 찾았다.


소설은 온 데 간 데 없는 책장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배우기는 어렵다.

내가 이용한 책에서 ‘지식’은 배웠지만 ‘이야기’를 배우진 못한 것이다.


책장에는 이미 흥미를 잃은 소설이 작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중 일부는 절반도 읽지 않은 상태로 있을 뿐이었다.


멈춰버린 이야기는 좀처럼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내 부족함을 깨달은 나는 짐짓 겁을 먹었다. 어차피 나는 부족한데 글을 더 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만 하는 날들이 지났다.

원인과 결과를 알았으니 이제는 행동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 원점엔 독서가 있었고, 어떤 소설이던 손에 잡고 그 글들에 푹 빠져 살아야만 했다.


나는 왜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여태껏 무시하고 살았을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그냥 책을 펼쳐서 읽으면 그만일 일을 이렇게 미뤄왔던 걸까.


글을 쓰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겠다 결심한 순간부터라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면. 그랬다면 지금처럼 멈춘 채 불안해하지는 않았을 텐데.


사실 그동안 나의 부족함을 알아차린 후 내가 가지고 있는 소설의 숫자를 늘려 나갔다.

나의 기본적인 독서 태도가 민망하게도 ‘돈 아까우니 읽기는 하자’니까.


장르는 가리지 않았다. 고전도, 현대도, 판타지도, 웹소설도 소설이라면 읽어 보려 한다.

나는 독서를 읽기만 하기보단 ‘이용’하는 편이니까.


이번에도 나는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 독서를 ‘이용’할 생각이다.


여태껏 나의 독서가 열등감에 굶주린 지식의 빈자리를 채웠다면,

이번엔 메마르고 갈라진 감정과 이야기에 대한 열정을 촉촉이 적셔 주리라 믿고 있다.


그래, 나에게 독서는 ‘이용’하는 대상이다.


뭐, 이것도 나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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