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나아가고 싶을 땐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좋은 친구사이로 지냈으면 좋겠어

by 밤버울


다시 취업을 한 지도 벌써 3개월이 되어간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뉴스에서 보도하던 ‘그냥 쉬는 청년’ 중의 한 사람이었다. 정말 ‘그냥’ 쉬고 싶어서 2년을 내리 쉬었다. 덕분에 내 통장 잔고는 바닥. 돈도 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쉬었다기엔 생각보다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다.

회사에 출근을 하려고 일어나면 눈을 뜬 순간부터 말 그대로 ‘절망적’이었다. 그냥 지금 세상이 한순간에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경력을 쌓자고 들어간 회사의 업무가 워낙에 맞지 않았다. 진득하니 앉아서 하는 일을 좋아하는 내가, 매 시간마다 현장을 돌며 생산 현장을 확인하는 건 그저 고역일 뿐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잠들기 전까지 ‘회사 가기 싫어’를 염불처럼 외던 나는 결국 1년도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그게 나에게 생긴 2년 공백의 이유다.


공백을 생산적이고 재미있게 보냈다면 후회스러운 마음이 지금처럼 있지는 않았겠지. 나의 2년은 허울만 좋았을 뿐이었다.


회사가 싫어 나왔으니 혼자서 해보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별 다른 건 없었다. 그냥 백수.


업무 전화가 없는 일상, 어딘가 바쁘게 향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 무엇보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리트는 더 긴 공백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만 좋은 평화’는 정말 나에게만 좋았다. 정신적으로는 잠시 좋았지만 물질적으로는 나를 점점 궁지로 몰았다. 결국 정신마저 몰아붙였다.


돈은 없는데 돈이 필요한 일은 계속 생긴다. 엄마가 남들과 이야기할 때 나의 근황을 얼버무리는 모습도 괜히 짜증이 났다.


당당해지고 싶지만, 돈은 없고 빚만 있어서야, 당당할 리가 없지.


…그래서 일을 해야 했다.


누구도 나에게 도움을 줄 처지는 아니었고, 나도 염치는 있었다.

이제는 내가 나를 구할 시간이었다.




*



집에서는 조금 멀지만 출퇴근이 나쁘지 않은 곳에 취업을 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가 있던 지역이어서 익숙하기도 했다.


아, 다시 평일마다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그렇다는 건 이젠 ‘쓰는 생활’이 아닌 ‘갚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


이제 회사를 다니게 되었으니, 앞으로의 꾸준한 수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생각 만으로도 쪼잔해졌던 마음이 다시 여유를 찾았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나는 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대할 것도 없고, 바랄 것도 없던 매일이었다. 내일을 이렇게 기대하도록 만든 건 아침 햇살과 나른한 봄바람 덕분이었을까? 최근 몇 년 중 가장 긍정적인 순간이었다.


‘글을 쓰자’라는 막연한 생각도, ‘브런치 작가를 해보자’하는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기게 된 것도 아마 봄바람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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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기 위해 퇴근 후 어설프게나마 글을 쓰고, 퇴고를 반복했다. 겨우 세 편의 글이었지만 나를 표현한다는 것만으로 재미있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도 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데 힘이 되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과, 평탄한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이 샘솟았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즐거움과 미래를 생각하는 와중에도 잠깐의 틈은 찾아온다. 잠시 숨을 돌리는 순간, 나의 과거들이 어디 가냐며 나를 붙잡는 기분이었다.


‘뭘 피곤하게 이것저것 하느라 고생이야? 대충 해’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겨.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생각들이 익숙했다. 너무나 익숙해서 ‘그래, 그랬지!’하고 고개를 끄덕일 뻔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나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데 왜 과거는 나를 이렇게 붙잡는 걸까. 미래로 나가는 내 모습이 낯설어 그런 걸까?


과거는 심술궂게도 나에게 차가운 기억만 되살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좋았던 기억. 예를 들면 차 없는 거리에서 목적지 없이 드라이브를 하던 일이 떠올랐다. 얼굴을 스치는 미지근한 바람이 기분 좋았지만 답 없는 미래에 가슴은 시렸다.


더 먼 과거의 기억도 떠올랐다.

학교가 멀었던 나는 학교 근처 학원을 다니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 언젠가 하굣길, 홀로 가을 단풍잎 가득하던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던 기억.


떠올리면 괜히 가슴이 찌르르하게 저릿한 기억이다. 무엇하나 유쾌한 기억이 없었다. 분명 나에게도 좋은 기억이 있을 텐데, 나의 과거란 녀석은 내 틈을 묘하게 파고들었다.


아마 몇 달 전 나였다면, 과거의 이런 유혹을 ‘기다리고 있었다!’하며 옳다쿠나 손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분명 제정신으로 살고 있지는 못했겠지.


한 달만 참으면 통장 잔고가 늘어난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나를 참고 버티게 만들었다. 왜냐면 돈이 없다는 그 절박함은 나에게 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빚을 다 갚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당장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가 되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손을 흔들고 기다릴 것이라 믿고 있다.




이미지.png 차창 밖으로 보이는 노을





*





합리화와 회피가 디폴트이던 과거의 나를 구한 건 지금의 나다. 어떻게든 바깥으로 다시 나온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지금 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대단한 미래는 아니겠지만 낙관적인 전망으로 가득한 미래의 나는 항상 내 쪽으로 손을 뻗고 있다.


가만히 있는다면 그저 그런 과거의 나로 남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한 발짝이라도 떼면 어딘가로는 향하지 않을까?


퇴근 후 유튜브만 보던 내가 이제는 워드를 켜고 키보드를 매일 같이 두드린다. 소심한 발버둥. 그래도 작은 움직임은 되리라.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예고 없이 내 등 뒤로 찾아온다.


잠깐 눈을 감고 쉬어 보려 숨을 돌렸을 때.

시린 바람이 내 가슴을 식히던 가을의 그 냄새가 날 때.

습기 섞인 바람이 나의 이마를 스칠 때.


피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과거의 생각들을 이제는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으리라.

너무 익숙해서 끌려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어찌 되었건, 그게 비록 정신 승리라 하더라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앞에 보이는 미래의 손을 잡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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