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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크샐러드 Mar 09. 2017

무조건 이득인 줄 알았던 2+1의 함정

합리적 소비가 대체 뭘까 ? 합리적 소비 강박과 인지부조화 



대체 합리적 소비라는게 뭘까


K씨에게 쇼핑이란 실로 피곤한 노동입니다. 얼마 전 헤어드라이어가 고장 나서 새로 구매하는 데만 일주일이 꼬박 걸린 것 같습니다. 우선 '온라인 비교쇼핑'을 통해 전 제품을 가격대별로 쭈욱 훑어봐야 합니다. 보면서 너무 비싼 제품군과 너무 싼 제품군을 걸러낸 후 브랜드별로 장단점을 비교해봅니다. 소비자들의 제품 사용 후기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고, 추려진 대상들 중 쿠폰 할인, 카드 포인트 할인 등의 혜택 적용이 가능한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나중에 A/S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도 점검합니다. 그러는 동안 헤어드라이어가 없어 머리 말리는 데 고생한 남편은 '그까짓 거 그냥 하나 사지 뭘 그리 오래 고르냐'며 타박했지만, K씨는 왠지 불안해서 절대로 그냥 확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필요한 제품을 구매할 때 합리적 구매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가격 대비 품질’일 것입니다. 동일한 품목의 몇 가지 상품들을 서로 비교해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에게 매우 당연하고도 중요한 행위입니다. 즉 비교를 해서 가격 대비 양이 많든 질이 좋든 따져봐야 내 선택이 ‘합리적’이라는 ‘안심’을 하고 기꺼이 내 ‘피 같은 돈’을 지불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간장 하나를 사더라도 습관적으로 이것저것 비교를 해보게 된다는 K씨는 그런 자신이 피곤하고 싫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혹여 선택을 잘못하여 반품이라도 하게 되면 그 수고로움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어서일까요? 선택 행위는 선택 당사자의 책임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일까요? 혜택이라고 주어지는 각종 할인 전단지 광고나 각종 쿠폰들, 그리고 적립된 포인트는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합리적 소비의 유혹입니다. 어차피 사야 할 것을 할인해서 사는 것은 할인된 만큼 비용을 아끼는 셈이니까요. 적립된 포인트를 현금처럼 쓸 때면 그 혜택은 또렷이 내 가계부에 적용됩니다. 결국 할인된 것을 많이 산다면 그만큼 아끼는 비용도 커지게 되는 셈입니다. 싸다고 이것저것 카트에 담아 예산을 훨씬 초과하는 지출을 했어도, 아낀 비용을 더하며 ‘오늘 얼마 정도 번 셈이네~’ 하는 이상한 계산법 빠지게 됩니다.  



대형마트라는 '물품비교전시장'은 우리를 여러 선택의 딜레마에 놓이게 합니다. 생활용품 15~20% 할인쿠폰을 가지고 차로 30분 이상 와서 주차 대열에 합류하여 기다려야 했다면, 그 이상의 이득을 보고야 말겠다는 ‘본전심리’가 생길 법도 합니다. 일단 이렇게 어렵게 온 이상 더 싼 것들을 더 많이 사가야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이지요. 와서 식사를 하거나 커피 한 잔 하는 등 부대비용이 상승하면 ‘본전심리’는 비례하여 더욱 상승합니다. 그래서 또 다시 카트는 싼 물건들로 가득 차 애초의 소비예산을 초과하게 됩니다. 애초에 2000㎖ 우유 한 팩만 사려던 건데 두 팩 묶음을 사면 할인도 적용되고 500㎖ 우유 하나를 더 얹어주니 훨씬 이득이라며 두 팩 묶음을 삽니다. 두부도 한 팩만 사면 되는데 두 팩을 사면 하나 더 얹어 준다는 말에 도합 세 팩의 두부를 사고 맙니다. 유효기간 내에 미처 다 못 먹은 우유와 두부는 억지로 먹게 되거나 결국 버려지게 됩니다. 참 이상한 나라의 합리주의입니다. 











대체 뭣이 중한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어이가 없습니다. 헤어드라이어나 샴푸 등 사소한 생활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요? 싸다고 많이 사면 과연 이득을 본 걸까요? 돌이켜 생각해보고 다시 자신의 소비 습관을 점검해보면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소비의 결과를 생각해보는 과정은 ‘가성비’ 못지않게 중요한 소비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한 결과를 용인하기 어려운 인간은 자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에 빠져 더욱 더 가성비에 집착하게 되곤 합니다.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부딪혔는데 그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합리적인 결론이 기존에 철석같이 믿고 있던 자신의 생각과 정면으로 모순될 때, 합리적인 결론보다는 부조리하지만 자신의 기존 생각에 부합하는 생각을 선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지 부조화 원리 [Cognitive Dissonance] - 오류를 바로잡기보다는 생각을 바꿔버린다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 2011. 10. 20., 케이엔제이) 


이러한 불일치는 심리적 불편(psychological discomfort)을 초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줄이기 위해 애를 쓰게 마련이고, 뿐만 아니라 부조화를 낳거나 증가시키는 상황이나 정보를 적극 피하려고 한다는데요.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은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부조화를 줄이려는 의도라고 해석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한 번 받아들인 믿음에 반하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면 그 믿음을 고쳐 심리적 조화를 이루려고 하기 보다는 그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부조화를 없애려고 한다는 겁니다.  
인지 부조화 이론 - 왜 우리는 누군가를 한 번 밉게 보면 끝까지 밉게 보는가? (감정독재, 2014. 1. 9., 인물과사상사) 

가끔 자신도 모르게 예기치 않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오류를 돌이켜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자신이 멍청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난 후에 어떻게든 그 선택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합리화하고 믿으려 애쓰며, 명백한 판단 착오였어도 끝까지 자신이 옳았다고 우기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이 엄청난 수고를 했거나 큰 노력을 쏟아 부을수록 그 결과를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노력 정당화 효과 (Effort Justification Effect)’에 쉽사리 빠지곤 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어느 브랜드의 물건을 얼마나 어렵게 저렴한 가격으로 득템(?)했는지 그 생생한 무용담으로 유명한 L씨는 한참 후에야 그 물건들을 바자회에 내놓으며 자기가 왜 그렇게 어렵게 특정 브랜드의 물건을 사모으느라 돈과 시간을 들였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고 끝에 엉뚱한 절충수를 두게 되다


아주 저가나 고가 상품이 아닌 중간치 평균값에 가까운 상품을 선택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이용한 가격전락을 ‘골디락스 (goldilocks)’ 가격이라고 합니다. 이런 소비자들의 특성을 이용해 대형마트의 진열대에는 가격이 아주 비싼 상품과 싼 상품, 그리고 중간가격의 상품이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결국 합리적 소비에 지칠대로 지친 소비자들은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중간 가격대 상품을 손쉽게 ‘합리적’으로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요. 아주 싸면 품질이 의심스럽고, 그렇다고 아주 비싼 것을 사자니 주머니 사정의 여의치 않다는 지극히 단순한 셈법이지만, 이것은 특정 상품으로 구매를 유도하려는 전략에 불과할 뿐 제품의 질에 따른 가격 차이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힘없는 중소기업이 자사 제품을 품질에 관계없이 싸게 납품했다가 이런 유통 전략 탓에 질 떨어지는 상품 취급을 받게 되더라도 어디에 억울함을 하소연할 길이 없습니다. 만약 가격 정책에 관계없이 제품의 질을 알아보는 현명한 소비자들에게 선택될 수만 있다면 서로가 좋겠지만요. 

이대로라면 우리는 '합리적 소비'의 강박에 휘말려 대형마트의 가격 정책에 전적으로 의존해버리고 마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마트에서 매겨놓은 가격의 차이를 자연스레 품질 차이에 대한 등급으로 인식하게 되어, 우리 스스로 어떤 상품의 가치를 골라내는 눈썰미는 점차 퇴화되어갑니다. 



수많은 물건이 넘쳐나는 시장에서 우리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결정’하고 골라내는 능력이 없다면 결국 단순 가격 비교를 ‘합리적 소비’라 여기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싱싱한 생선 고르는 법, 제철에 나는 건강한 농산물 고르는 법 등은 글로 배울 수가 없는, 생존의 가장 필요한 기술입니다. 합리적 소비 강박으로 가격 비교에 올인하며 정작 중요한 소비 행위의 근본 기술은 놓치고 있는 셈입니다. 애초의 소비의 목적을 다시 돌아보고 예산에 맞게 선택하는 소비는 그래서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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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미정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으나 사서가 될 생각은 못하고 문화기획, 벤처회사 홍보팀 등 평균 1년에 1직장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직장생활을 경험했다. 불안정한 직군에서 열정을 담보로 땀흘린 결과 신용불량과 개인파산까지 겪고 시름하다 금융회사 FP로 취직, 제법 높은 실적을 올리며 모든 빚을 한번에 해결했다. 그러나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신이 팔았던 투자성 금융상품들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며 고객들이 손해보는 것을 속수무책 지켜보며 현재의 금융경제 시스템에 회의를 느꼈다. 그렇게 돈 때문에 울고 웃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돈 관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취지 하에 <M밸런스노트>를 개발해 적정소비생활을 통한 심신의 안정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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