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아야 할 돈을 갚지 못하였더라도 법에 어긋난 독촉은 불법!
"네가 사람이야?"
"나 사람 아니야. 쓰레기야."
지난 2012년에 개봉했던 영화 '화차'의 대사입니다. 여자 주인공인 경선(김민희 씨)는 사채에 시달리다가, 견디다 못해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 약혼자에게 여 주인공이 자책하면서 내뱉는 대사입니다.
화차는 불법 사채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영화로 꼽힙니다. 영화의 실제 줄거리는 조금 더 복잡하지만, 사채업자에 시달렸던 여 주인공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돈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수백, 수천 퍼센트의 이자를 받아내는 '불법' 사채. 그리고 돈을 빌렸다는 이유만으로 폭력과 협박을 참기만 하는 사람들. 영화에만 있는 일일까요? 아닌가 봅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불법 사채 거래 310건을 분석해보니, 연평균 이자율이 2,279%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법정 최고 이자율은 연 27.9%입니다. 이를 초과해서 이자를 받으면 당연히 '불법'이라는 사실을 꼭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든, 돈을 빌려 갚아야 하는 사람이든, 지켜야 할 규칙이 있으니까요
이자율뿐만이 아닙니다. 사정이 생겨 돈을 못 갚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때 돈을 빨리 갚으라고 독촉하는 '추심'에도 법적인 제한이 있습니다. 물론 빚은 갚아야 하는 게 맞지만, 부득이하게 사정이 어려울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규정을 정해놨습니다. 아무리 빚이 많더라도,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이 불법 채권추심의 유형과 대응 요령을 소개했습니다. 갚아야 할 돈을 못 갚는 처지에 있더라도 불법 행위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1. 폭행, 협박 등을 사용하는 경우
2. 반복적 또는 야간(오후 9시 이후)에 방문하는 경우
3. 관계인에게 거짓 사실을 알리는 경우
4. 금전의 차용을 통해 변제를 요구하는 경우
5. 관계인에게 대신 변제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6. 무효인 채권을 변제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7. 오인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
8. 곤란한 사정을 이용하는 경우
가장 대표적인 '불법' 행위는 폭행과 협박입니다. 구타하거나 폭언을 수차례 반복하는 것은 당연히 불법입니다. 침을 뱉거나 채무자의 손이나 옷을 세게 잡아당기는 행위도 마찬가지고요. '빚을 빨리 안 갚으면 평생 후회한다'는 식의 협박을 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채권추심을 하는 데에도 횟수와 시간의 제한이 있습니다. 하루 2회까지만 전화나 이메일, 문자메시지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 또 사전에 전화나 우편,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방문할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다른 장소에서 만나기로 해놓고 집이나 직장으로 찾아가는 것도 안 됩니다. 채무자가 경조사를 치르는 등 곤란한 상황인 것을 알면서도 방문하거나 전화해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안 됩니다.
빚을 갚으라며 차라리 카드깡을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보험을 해지해서라도 갚으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채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가족과 친척, 직장동료 등에게 빚을 대신 갚으라고 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가족에게 채무자를 설득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안 됩니다.
빚에도 소멸시효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5년 이상 채권자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 소멸시효가 완성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확인한 뒤 시효가 완성됐고 빚을 갚지 못하겠다고 판단하면, 채권자에게 이런 의사를 주장하고 채무 상환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소멸시효 완성의 절차를 거쳤는데도 훗날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면, 불법 행위입니다.
금융사들은 일정 기간 이상 연체된 '채권'을 다른 금융사에 파는 경우가 있습니다. 돈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싼값에 다른 금융사 등에 넘기는 겁니다. 그러면 이 채권을 받은 업체가 연체자에게 연락해 돈을 갚으라고 합니다.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느닷없이 한 대부업체에서 연락이 와 돈을 갚으라고 하면 황당할 겁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불법은 아닙니다. 많은 금융사가 '합법적'으로 이런 거래를 합니다. 다만, 여기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정부가 최근 금융회사들이 대출채권 매각 과정에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내놨습니다. 다음 달(4월)부터 금융사들은 이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합니다. 대출채권 매각을 깐깐하게 해 채무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매각 단계별 주요 준수사항 가이드라인]
1. 매각채권 선정 시 : 소멸시효 완성 채권, 소송 중인 채권 등은 제외한다
2. 매입기관 선정 시 : 채권추심 법령, 가이드라인 준수 등을 실사(Due Diligence)한다
3. 채권 매각 시 : 계약 시 일정 기간 (ex.3개월) 재매각 금지를 명시하고, 채권 정보를 정확히 제공한다
4. 사후 관리 : 매입 기관의 규정 준수 및 계약 이행 등을 점검한다
5. 내부 통제 : 일관성 있는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하고, 담당 부서를 지정·운영한다
먼저 대출자들이 본인의 '대출 채권'을 어느 금융사에서 관리하고 있고, 또 소멸시효가 지났는지 등을 확인하는 시스템이 구축됩니다. 신용정보원(www.credit4u.or.kr)이나 신용회복위원회(cyber.ccrs.or.kr), 신용조회회사인 나이스 지키미(www.credit.co.kr),올크레딧(www.allcredit.co.kr) 등에서 4월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금융사가 부실채권을 계속 재매각해서 정작 돈을 빌릴 사람은 지금 누가 내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이를 확인해서 내 채권을 보유하지도 않은 업체가 돈을 갚으라고 하면 이를 거부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일부 업체들은 소멸시효가 지났는데도 돈을 갚으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시스템을 통해 소멸시효가 끝났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돈을 안 갚아도 됩니다. 이 밖에 금융사들은 앞으로 소멸시효가 지났거나 소송 중인 대출 채권을 매각하면 안 됩니다. 또 채권을 샀으면 3개월간 재매각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이런 규칙들을 어기는 업체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바로 신고해 '불법'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금감원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센터(국번 없이 1332번)이나 경찰(112번) 등에 전화해 신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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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나원식
경제, 금융이라는 영역이 낯설기만 했던 사회과학도였습니다. 졸업 뒤 여러 언론사에 입사 원서를 넣다 보니 '어쩌다 경제지 기자'가 됐습니다. 경제지 이데일리에서 2년여 금융부 기자를 하다가, 지난해 온라인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워치로 옮겨 어느새 4년째 금융 영역만 취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습니다. 그래서 궁금한 것도 많습니다. 기자는 전문가에게 질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과 독자 여러분이 모르는 걸 꼼꼼하게 질문해서 알기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질문 거리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해주세요. setisoul@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