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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크샐러드 Mar 27. 2017

로스차일드 가문의 비밀 "채권"이란?

채권이란 무엇이고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1. 채권이란?


필요한 자금을 타인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가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채권은 일반적으로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비교적 장기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정해진 이자와 원금의 지급을 약속하면서 발행하는 증권을 말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돈을 빌릴 때 언제까지 자금을 사용하다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줄 것임을 표시한 일종의 차용증서가 채권인 것이다. 이런 채권의 탄생은 자금 공급 조달 측면에서는 일종의 혁명이었다. 은행 대출 이외에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2. 주식과 채권의 차이는?


채권은 오늘날 주식과 함께 가장 일반적인 자금 조달 방법이자 일상적인 금융투자상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채권과 주식은 다양한 측면에서 상반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주식을 발행하여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데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법률적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자금을 투자하여 주식회사를 차리는 행위를 국가가 별로도 관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식의 발행은 원칙적으로 별도의 인허가를 받을 필요없이 신고에 준하는 절차만 거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채권은 다르다. 채권의 발행 주체 및 한도는 관련 법률에 의거하여 정해진다. 국채의 경우에는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회사채의 경우에는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과 간이사업설명서를 제출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발행이 가능하다. 만약 금융위원회의 효력이 발생 전에 사채발행을 위한 청약권유를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예비사업설명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주식과 채권의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주식은 일반적으로 회사만 발행이 가능한 데 반해 채권은 회사뿐만 아니라 정부, 지자체 등이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하고 있는 채권의 대부분은 정부나 지자체 내지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채권들이다. 2015년 기준으로 국내 채권시장의 전체 규모는 1,780조원에 이른다. 이는 전세계 12위권 수준의 시장 규모에 해당한다. 이중 국채(544조), 공사채(330조원) 규모의 합이 900조에 가까운 수준인데 비해, 회사채의 규모는 368조원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도 채권의 발행 주체는 대부분 국가 내지 공공부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주식이 회사의 발달과 함께 진화해왔다면, 채권의 발달과 진화는 국가가 견인해왔다. 










3. 국가가 채권 발행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세금으로 충분히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있음에도, 국가가 '채권'이라는 또 다른 자금 조달 방법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전쟁’ 때문이다. 전쟁을 치르는 중에는 군비 조달 등에 막대한 추가비용이 유발된다. 하지만 '세금'은 일상적인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다. 또한 세금이란 일단 국가에 내고 나면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부과할 경우 전쟁에 대한 국민적 동의마저 얻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채권은 다르다. 채권 발행으로 군자금을 조달하면 전쟁 수행 기간에만 일시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역시 국가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자금 모집도 용이하다. 국가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많은 전리품을 얻기 때문에 이들 전리품을 이용해 채권을 갚을 수 있다. 많은 국가에서 전쟁 시 세금보다 채권 발행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많은 역사적 현장 속에서 전쟁 수행 시 채권을 발행한 사례를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중상주의 시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영국은, 유럽과 신대륙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국가였다. 아래 그래프는 1688년부터 1850년까지 영국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영국 국채 발행이 급격하게 증가하였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국채를 발행하여 필요 자금을 조달하는 행태는 다른 국가에서도 쉽게 목격된다. 

14~15세기 중세 이탈리아 도시인 피렌체, 피사, 시에나와 같은 국가는 서로 전쟁을 치르기 위해 채권을 발행한 기록이 있다. 당시 이들 도시국가는 자국 시민만으로는 온전한 군대를 조성할 수 없어 용병을 고용해야 했다. 하지만 자국민을 의무 징집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것과는 달리 용병을 이용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당시 사료에 따르면, 15세기 초 피렌체의 차입금 규모는 1년 세입 규모의 70%에 달하는 수준까지 상승하였다. 그렇다면 해당 국가들은 어떻게 해서 막대한 자금을 융통할 수 있었을까?  

피렌체를 비롯한 여타 도시 국가들은 채권을 발행해 용병 고용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당시 피렌체 전체 가구의 3분의 2 정도가 국가가 발행한 채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피렌체를 비롯한 여타 도시 국가들은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채권 구입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 주었다.  

먼저 주민들이 국가에서 발행한 채권을 구입할 경우 재산세 납부를 면제받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발행한 채권을 구입하면 그 대가로 일정 수준의 이자를 지급해 주었다. 즉, 채권을 구매하는 것은 세금 감면 효과뿐만 아니라 이자 수익도 누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경제활동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금쪽같은 자금을 흔쾌히 빌려주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국가가 요청할 경우 국채 매입을 통해 자금을 빌려주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법으로 규정한 의무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금을 빌려주고 받은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팔아 다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제도적 유인과 강제성을 제공하여 당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전쟁 수행시 필요한 자금을 채권 발행을 통해 쉽게 조달할 수 있었다.  








4. 로스차일드 가문이 1조 원을 번 방법, '채권'


17세기 암스테르담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 여러 국가에서 발행한 다양한 채권 거래소 기능을 수행하면서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부상하였으며, 18세기에는 세계 최고의 금융 재벌 가문으로 부상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군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된 영국 채권 매매에 참여하면서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세계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영국에 거주하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 밀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영국의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럽 대륙에 영국 봉쇄령을 내려 영국과의 교역을 중단시켰다. 공식적인 교역이 차단된 당시 영국과 유럽 사이에는 밀수가 성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대금 결제 역시 금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때 금괴 밀수 등을 수행한 가문이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 본격화되자, 영국은 전쟁에 필요한 여러 군수 물자들을 유럽 각지로부터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영국 화폐로 대금을 결제받길 원하지 않았다. 영국이 전쟁에 질 경우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을 영국 화폐의 가치를 믿고 물건을 공급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은 군수 물자에 대한 대금 지급을 금으로 결제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막대한 자금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 로스차일드 가문이 이러한 금괴 수급을 거의 전담하면서 막대한 수수료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이 유일하게 금괴를 밀수한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영국 정부는 로스차일드 가문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상황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 각지에서 금괴를 조달하는 업무와 영국 정부에 군수물자를 제공한 유럽 각지의 상인들에게 대금을 결제하는 업무를 담당하면서 그 누구보다 전세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영국이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쟁이 끝날 것을 간파한 로스차일드 집안은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투기를 감행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자신들이 그동안 벌어들인 재산을 영국 국채를 매입하는 데 대규모 투입한다. 결국 전쟁이 끝나고 나면, 영국 정부도 채권을 발행해 무리한 차입을 지속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며,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 역시 높아지면서 이 과정에서 영국 채권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1815년부터 영국 국채를 대규모 매입한 로스차일드 가문이 자신들이 보유한 영국 국채를 1817년 다시 매각할 때는 채권 가격이 40% 이상 오른 상태였다. 세계적인 경제사학자이자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당시 로스차일드 가문이 채권투자로 벌어들인 수익이 6억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1조원이 넘는 수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5.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 채권


남북전쟁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와 북부 모두 막대한 군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집적화된 도시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북부는 중앙 집중화된 세금 징수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농장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던 남부는 이러한 조세 징수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 결국 남부는 군자금을 조달할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역시 이때도 결론은 채권이었다. 하지만 남부에서 발행할 채권을 대규모로 구매해 줄 구매력을 갖춘 집단은 남부 내부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농장 운영을 중심으로 자급자족 형태의 경제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남부 유럽인들에게 눈을 돌렸지만 유럽인 역시 전쟁의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남부의 채권을 쉽게 매입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부 측은 전쟁에 필요한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신들의 면화를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많은 유럽인은 미국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면화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 남부에서 발행한 채권에 적극 투자했다. 하지만 전쟁 과정에서 북부군이 남부 측의 면화 생산 지역과 이를 수출하는 항구 등을 점령하자마자, 전쟁은 북군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남부에서 발행한 채권에 투자한 많은 유럽인은 이자를 지급받지 못할 경우 받기로 한 면화를 제대로 수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유럽인들이 남부에서 발행한 채권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았으며, 결국 남부 측은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채권 발행을 통해 효과적으로 수급하지 못했고, 결국 전쟁에서의 패배로까지 이어졌다. 








이상에서 나열한 바와 같이, 오늘날 대표적인 금융투자 상품인 채권은 전쟁을 통해서 대중화되었고, 매매 형태나 거래 방식이 고도화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많은 국가들이 채권을 원활히 발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자 지급 방식과 채권 발행 시 담보를 제공하는 방법 등이 고안되었다.  

오늘날에도 채권 발행의 주체는 단연 국가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전쟁을 위한 군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을 발행하지는 않는다. 대신 다양한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채권이 발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권시장은 해당 국가의 주식시장에 비해 훨씬 큰 규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15년 기준 채권시장의 시가총액은 1,780조원인데 비해,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이보다 작은 1,404조원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1950년 부족한 국가 재정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 아래 건국 국채가 최초로 발행된 이래, 지금도 주택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특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 등 다양한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채권들이 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다양한 공익적인 목적 아래 사회적 필요성이 확인될 때면, 해당 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채권을 통해서 조달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가장 참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발전해 왔던 채권이 오늘날에는 다양한 공익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변화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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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으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제학을 KAIST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였다. 세종시 지역산업발전위원, 양성평등위원,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KBS1 〈아침마당〉, KBS2 〈여유만만〉, tvN 〈곽승준의 쿨까당>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경제 강의를 전개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1, 2』, 『경제학 입다/먹다/짓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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