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하나 못 바꾸고.. 나는 진짜 게으르고 절제도 안되는 앤가 봐..
# 현재 30세인 김소비와 이저축은 매월 똑같은 급여를 받지만 저축하는 돈은 다르다. 김소비는 매월 60만원씩 저축하지만, 이저축은 그보다 20만원 더 저축하여 매월 80만원씩 저축한다. 이 금액은 3% 수익률(월복리, 비과세)로 투자된다.
10년 뒤, 40세가 된 김소비는 약 8,500만원을, 이저축은 약 1억 1,300만원을 모으게 된다. 그들은 이 돈으로 집을 사기로 결심한다. 주택 가격은 2억원으로 동일하며 모자란 돈은 대출을 받아 채우기로 한다. 대출금리는 4%(월복리, 비과세)이다. 대출금은 저축과 동일한 액수로 상환한다. 만약 대출을 전액 상환하면 30대에 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저축한다.
그로부터 20년 뒤, 김소비와 이저축은 60세로 은퇴를 앞둔 나이가 된다. 김소비는 2억원짜리 집이 있지만 여전히 약 3,600만원 상당의 빚을 지고 있다. 반면 이저축은 대출을 전액 상환했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저축으로 금융자산을 9,500만원이나 모았다. 매월 20만원 더 저축하는 습관 차이가 김소비와 이저축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월복리와 비과세라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긴 하나, 위 사례의 요지는 명확하다. 20만원이라는 작은 저축 금액 차이가 수 십 년간 꾸준히 누적될 경우 수 천 만원의 자산 격차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축을 늘리고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소득은 원하는 대로 쉽게 늘지 않기 때문에, 저축을 늘리려면 지출을 조정해야만 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출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며 꾸준히 강조해왔다. 지출관리는 가계부를 활용하여 소득 및 지출을 정확히 파악하고, 합리적인 예산을 세우며, 예산대로 꾸준히 지출하도록 관리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왜 그런 것일까? 단순히 게을러서, 유혹에 굴복하기 쉬운 마음을 가져서, 사치스러워서가 아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이미 만들어진 사고의 틀이 있는데, 이 틀은 우리가 쉽고 빠르게 선택하도록 돕지만 이득이 되지 않는 결정을 내리게도 한다. 지출관리도 마찬가지여서 아무리 잘 하겠다고 마음먹더라도 이 틀 때문에 이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안다는 것이 언제나 더 나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 틀에 대해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조금 더 낫게 행동할 수 있다. 어떤 틀이 우리 사고와 지출관리에 개입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더 나은 지출관리를 위해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한때 TV 홈쇼핑에서 불티나게 팔렸던 청바지는 한 세트에 39,800원이었다. 왜 하필이면 39,800원이었을까? 40,000원과 39,800원간의 차이는 고작 200원에 불과하지만 40,000원보다는 39,800원 짜리 청바지가 훨씬 더 싸게 느껴지고 구매할 경우 굉장한 이득을 얻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우리는 큰 수를 판단할 때 가장 높은 자리 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왼쪽 자릿수 편향)
우리는 소득 내에서 여러 상품들을 검토하여 비용대비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상품을 소비해야 한다고 배워 왔다. 그러나 실제 소비 결정은 이와 다르게 이뤄지곤 한다.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이러한 선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행태경제학은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선택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검토할 여유가 없을 경우 직관적이고 빠른 판단 기제를 활용하여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우리는 여러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지출관리를 비롯한 여러 가계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3만원 짜리 탁상 시계를 구매할 때에는 1만원을 절약하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몇 시간 동안 뒤진 적 있지만 300만원 짜리 고급 시계를 살 때에는 1만원 쯤이야 그냥 더 쓰자고 생각한 적 있는가? 금액의 절대적인 차이보다는 기준 값에 근거한 상대적 변화로 싸고 비싸고를 따지는 “닻 내리기 효과” 때문이다.
’50% 세일’이란 홍보 문구 때문에 불필요한 물건들을 마구 구입한 적 있는가? 방에 너무 큰 책상이나 꽉 끼는 옷 마저도 단지 평소보다 싸다는 이유만으로 구입한 적 있는가? 우리는 물건의 소유 뿐만 아니라 거래 자체에 대해서도 기쁨을 얻는다. 이 ‘거래 효용’은 물건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가격보다 싸게’ 살 때 발생한다. 거래 효용이 너무 클 경우, 물건이 아무 쓸모가 없거나 조금 불편한 경우에도 즐겁게 구입하게 된다.
신문 무료 구독 서비스를 받은 후, 무료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구독을 끊지 못한 경험이 있는가? 아니면 학생 시절에 고른 금리 낮은 수시입출금 통장을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급여통장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바꾸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기존의 선택을 유지하려고 하는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 때문이다. 심지어는 타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현재를 유지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현상유지 편향은 마치 관성과도 같으며, 기존의 선택을 바꾸는 데 발생할 지도 모르는 손실에 대한 두려움, 처리해야 할 정보량이 많고 복잡한 선택을 미루려는 성향 등으로 인해 발생하곤 한다.
한편 ‘심적 계정(mental accounting)’이라는 것도 있다. 심적 계정은 우리의 예산 관리에 직접 관여하는 마음의 틀이다.
A와 B 두 사람이 모두 영화 값으로 1만원을 쓸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A와 B가 처한 상황은 조금 다르다.A는 어제 연극을 보기 위해 이미 3만원을 지출하였다. 한편 B는 어제 주차요금으로 3만원을 지출하였다.
A, B 중 어떤 사람이 영화 티켓을 구입할 가능성이 높을까?
아마 B일 것이다. 연극과 영화는 모두 여가 활동의 일종이므로, 어제 여가 활동에 돈을 쓴 A는 오늘 다시 여가 활동에 돈을 쓰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다시 생각해보자. 어차피 A, B 두 사람 모두 어제 쓴 돈은 3만원이고 앞으로 써야 할 돈은 1만원으로 똑같다. 돈을 어디에 지출했는지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게 바로 우리 사고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니다. 우리는 돈을 ‘식비 계정, 여가 계정, 자동차 계정’ 등 여러 ‘심적 계정’으로 분류하여 관리한다. 일단 한 계정에 들어간 돈은 다른 계정으로 쉽게 전환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즉, 식비 계정의 돈이 좀 남는다고 해서 교육에 보태거나 저축으로 전환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컨대 전 시간대 영화 티켓 가격이 하락하여, 예전처럼 영화를 보면 여가 계정의 돈이 좀 남는다고 하자.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 남는 돈을 저축하거나 식사나 옷 등 더 만족감을 주는 소비에 보탤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영화를 더 많이 보거나 좀 더 가격이 비싼 시간대의 영화를 본다. 즉, 여가에 쓰는 돈을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맞추는 경향이 있다.
영화 보는 데 돈 좀 더 쓴다고 해서 지출관리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심적 회계 때문에 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바로 대출 상환과 저축을 병행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출 금리는 예 · 적금 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대출상환과 저축을 동시에 실시하면 금리 격차만큼 손실을 보게 된다. 예 · 적금에 부과되는 15.4%의 이자소득세까지 고려하면 금리 차이로 인한 손실은 더욱 커진다.
예컨대 대출잔액이 1,000만원 있는 사람이 월 여유자금을 100만원을 저축(연 2% 월복리)과 대출 상환(연 3%, 월복리)에 투입할 수 있다고 해보자. 여유자금 전액을 대출을 상환하는데 썼다가 상환 완료 후 저축하는 사람은 2년 뒤 1,605만원을 모은다. 반면 50만원으로 저축하고 나머지 50만원으로 대출을 상환하는 사람은 2년 뒤 1,297만원을 모은다. 단순한 선택 차이지만 2년 뒤 무려 300만원이나 되는 자산격차로 돌아오는 것이다.
바람직한 행동은 저축할 돈을 대출 상환에 모두 보태 대출을 빠르게 상환한 후, 저축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마음 속 심적 계정간 허들이 너무 높아 저축용 돈이 대출 상환용 돈과 잘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적 계정은 돈의 사용처 뿐만 아니라 돈이 어떻게 들어오는지에 따라서도 결정된다. 열심히 일해 번 월급 200만원과 복권으로 당첨된 200만원 중 어떤 돈을 쉽게 쓰게 될까? 예상치 못하거나 아무 대가 없이 들어온 돈은 소위 ‘쉽게 쓸 수 있는 돈’으로 분류되어 빠르게 소비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분류는 금액에 따라서 이뤄지기도 한다. 성과급으로 500만원을 받은 상황과 50만원을 받은 상황을 비교해보자. 500만원을 받은 사람은 전액 저축하는 반면, 50만원을 받은 사람은 그 돈을 흥청망청 써버릴 가능성이 높다. 목돈은 ‘저축해야 할 돈’으로 분류되는 반면, 소액은 ‘소비지출용 돈’으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심적 계정이 반드시 돈 관리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심적 계정으로 구분된 지출 금액을 가능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예산을 짤 때 심적 계정의 교훈을 고려함으로써 예산을 더욱 잘 실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통계청의 ‘소비 · 비소비지출’ 분류를 이용하여 ‘식료품·비주류음료, 술·담배, 가정용품’ 등으로 예산 항목을 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출을 ‘식료품·비주류음료, 술·담배, 가정용품’을 따로 구분하기보단 ‘장보기 비용’으로 묶어서 생각하곤 한다. 외식비도 통계청 분류처럼 숙박비와 묶어 생각하기보다는 ‘회사 중식 값’, ‘배달음식’ 등으로 나누어 생각하기도 한다.
심적 계정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하여 예산을 짤 때 각 예산 항목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심적 계정과 일치시키는 것이 좋다. 일단 심적 계정과 일치하지 않는 예산 항목들을 외우고 구분하는데 드는 피로를 절약할 수 있다. 예산대로 지출을 절약하려는 마음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각 예산 항목별 금액은 최소한으로 설정하고 ‘예비비’라는 별도의 항목을 정해두자. 장마로 인하여 채소 가격이 폭등하거나 친구들과의 모임이 평소보다 자주 잡혀 관련 비용을 더 지출하는 등 지출은 상황에 따라 예산으로 잡았던 금액보다 늘어나기 마련이다. 예비비는 이럴 때 사용하는 돈으로 세후 소득의 5~10% 정도를 배정해 두는 게 적절하다.
지출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하여 각 예산 항목별 금액을 여유 있게 설정할 수도 있지만, 지출 변동성을 대비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지출 규모 자체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예산 항목별 금액을 최대한 빠듯하게 정하고 예비비를 따로 설정하는 것이 더 낫다.
예비비를 ‘비상예비자금’과 연관시키면 돈 관리를 더욱 현명하게 할 수 있다. 비상예비자금이란 가족이나 지인의 부조금이나 골절 등 가벼운 사고의 의료비 등 예산으로 잡아두기 어려운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했을 때 즉각 사용할 수 있는 목돈이다. 예비비와 마찬가지로 지출 변동성을 대비하기 위한 금액이나, 그 액수가 훨씬 크다. 보통 월 소비지출의 3~6배 정도 모으는 것이 적절하다고 알려져 있다.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비상예비자금을 따로 저축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비슷한 속성을 가진 예비비를 사용하기로 원칙을 정하자. 급여 전날 매월 쓰고 남은 예비비에 대한 잔액이체(‘스윙’서비스)를 걸어두면 비상예비자금이 수월하게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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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투자자의 권익향상을 목적으로 투자자보호를 위한 조사, 연구, 금융교육에 주력하는 비영리 공익재단입니다. 금융회사의 건전한 펀드 판매문화정착을 위하여 ‘펀드판매회사 평가’를 매년 실시하며, 우리나라 펀드 투자자들의 현황 및 행태를 파악하는 ‘펀드투자자조사’ 또한 매년 실시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금융생활 개선을 위해 「신혼부부의 돈 관리(2012)」, 「새내기직장인의 돈 관리(2013)」, 「놀부의 생활금융가이드(2014)」, 「만화 흥부가 알려주는 연금저축의 모든 것!(2016)」 등 알기 쉽고 재미있는 금융교재 및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널리 보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