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의 기원은?
17세기의 “동인도회사”. 많은 사람이 아는 이름이면서도, 왜 세계사 교과서에 들어가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주식 이야기 하자더니 왜 지루한 역사 이야기를 하느냐.
사실, 주식의 역사가 여기서 시작되거든요.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던 시기, 서유럽은 큰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상거래가 발달하면서 초기 자본주의가 틀을 갖추기 시작했고, 국가간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제국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이죠. 그 당시 사람들은 ‘새로운 어떤 것’, 그리고 ‘유행’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후추, 커피, 면직물 등은 매우 귀한 상품이 되었죠. 그 때문에, 당시 아시아에서 생산되던 ‘후추’라는 향신료를 떼어다가 유럽 시장에 팔기만 하면 요즘 말로 대박이 났다고 합니다.
‘대항해시대’라는 게임(Ⅴ부터)을 해 본 적이 있다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도 한번 다녀오면 갑부가 되죠. 추측하건대, “동인도회사”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아마 그 회사는 동인도에서 물건을 떼어 오는 일을 했을 겁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대박을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인도에서 물건을 떼어 오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라이트형제가 태어나기 전일 테니, 후추를 들여오려면 해상 운송 밖에 방법이 없었을 터. 거친 풍랑을 뚫고 오랜 항해를 이어가려면 큼지막한 배가 필요했고, 들끓는 해적들을 피하려면 무장도 필요했죠. 반란 한 번 일어나면 값비싼 화물들은 바닷길 황천행이었구요.
숱한 ‘리스크’들이 있다 보니, 그 막대한 비용을 나서서 부담하려는 사람은 드물었을 겁니다. 필요가 있으면 방법이 나오는 법, 주식회사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한 가지 픽션을 소개해 보죠.
어느 날, 네덜란드에 살던 똑똑한 “베네딕타”라는 여성 사업가가 여러 사람들의 돈을 모아 배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고 싶긴 하지만 배를 만들만한 돈도 없고, 혼자 위험을 부담하기도 싫었던 거죠. 지난번에 동인도로 보냈던 “산 호세”호가 소말리아에서 피랍되는 바람에, 돈을 대던 쩐주들도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노는 남편과 아이는 베네딕타에게 돈 벌어오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지혜로운 베네딕타는 “동인도회사”를 차렸습니다. 네덜란드 한복판에 위치한 멋들어진 빌딩에 사무실을 내고 평소 친하던 인쇄업자 스테파노를 섭외했습니다. 스테파노는 당대 인쇄업자 중에서 디자인을 가장 잘 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죠. 배를 만들라고 했더니, 인쇄업자로 전향이라도 할 생각이었던 걸까요?
아니요, 그녀는 아직도 배를 만들 생각입니다. 베네딕타의 아이디어는 단순했습니다.
'소수의 쩐주가 아닌, 소액투자자들 여럿을 모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녀는 스테파노에게 주문을 넣어서, “동인도 다녀오는 배 5천원에 사기”라고 써 있는 빳빳하고 멋들어진 종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종이의 위에는 “주식”이라고 써 놓고 말이죠. 맞습니다. 베네딕타는 이 종이들을 팔아서 배를 만들 자금을 모으려는 겁니다.
배 하나 만드는 데 5억이 든다고 가정하죠. 5천원짜리 종이를 팔아서 5억원을 모아야 하니, 10만장의 종이를 만들어 팔면 되겠네요. 이제 10만장의 종이를 매력적인 ‘수익의 증표’, 즉 ‘주식’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5억원짜리 배가 인도에 한번 갔다 오면, 온갖 비용 다 떼고 50억원 정도 벌었다고 칩시다. 이 “순이익”을 종이를 산 사람에게 배분하면 되겠죠? 50억원을 10만장으로 나누면 5만원. 종이 한 장을 5천원에 산 사람은, 배가 아무 탈 없이 인도에 다녀오면 10배인 5만원을 벌게 되는 셈이었습니다.
베네딕타는 행사용 풍선과 나레이터 모델들을 총 동원해 시장 좌판에서 ‘종잇조각’을 팔기 시작합니다.
“동인도 다녀오는 배의 주인이 되세요! 고작 5천원이면 됩니다!”
“배가 인도에서 후추 싣고 돌아오기만 하면, 장 당 5만원의 수익이 생깁니다!”
“5천원으로 시금치 사시려고요? 1년 후에 5만원으로 소고기 드세요!”
장이나 보려고 시장에 온 사람들은 무척 흥분 – 물론 시금치 파는 할머니는 싫어했지만 – 했습니다. 5천원으로 배의 주인이 된다니! 백작, 남작 나으리들이나 하던 투자를 내가 할 수 있다니! 한 장을 산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열 장, 백 장을 산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삽시간에 퍼진 소문으로, 돈을 대지 않겠다던 쩐주마저 급히 줄을 서 주식을 사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해가 지기도 전에 다 팔려나간 동인도회사의 ‘주식’. 그 간 쩐주들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투자자금을 모아 왔던 베네딕타는, 순식간에 5억원이라는 돈을 시장 좌판에서 모았습니다.
베네딕타는 모인 돈으로 타이타닉에 버금가는 크기의 “산타마리아 호”를 건조시켰습니다. 배의 주변은 강력한 태풍도 이길 만한 강철로 둘렀고, 당 대 최고의 해상전략가인 퇴역 해군대장 브리앙을 배의 경비대장으로 초빙했습니다. 산타마리아 호는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동인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베네딕타가 설립한 동인도회사는 현대 ‘주식회사’의 원형입니다. 주식회사는 주식을 멋들어진 종잇조각으로 ‘발행’하고 주주들에게 ‘배정’하죠. 주주들은 5천원씩 동인도회사에 ‘납입’해서 주식회사를 ‘설립’해 주인이 됩니다. 우리가 아는 주식시장과는 뭔가 달라 보이죠? 사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주식이란 것은 투자한 돈을 회수하겠다는 계약의 증표입니다. 동인도회사가 만든 산타마리아 호가 아무 탈 없이 인도에 다녀왔다면, 회사는 수익을 배분하고 ‘청산’하게 됩니다. 벌어들인 50억원을 주주들에게 5만원씩 나눠주고, ‘청산파티’를 하고 “굿바이 산타마리아”하고 끝나는 거죠. 만약 배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주주들은 투자한 5천원을 ‘날리고’ 돼지고기 사 먹으면 그만입니다.
주식시장은 크게 “발행시장”과 “거래시장”으로 나뉩니다. 우리가 아는 주식시장이라 함은 “거래시장”이죠. 베네딕타의 사업은 “발행시장”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산타마리아 호를 건조하기 위해 든 비용인 5억원은 동인도회사의 “자본금”이고, 장 당 가격인 5천원은 주식의 “액면가”를 의미합니다. 처음 그 회사를 만드는 데 동참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책임은 ‘5천원’이 전부이고, 이 것이 주식회사의 가장 큰 특성인 ‘유한책임’을 만듭니다.
현대의 발행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베네딕타처럼 사업 아이템은 있는데 돈이 부족한 사람은 주위의 사람들의 돈을 모아 주식회사를 만들고, 투자자에게 주식을 배분하죠. 투자자는 가지고 있는 주식의 비율만큼 그 회사의 주인이 되고, 창출되는 수익을 배당의 형식으로 배분받습니다. 청산하게 되면 남아 있는 자산을 역시 비율대로 배분 받고, 망하게 되면 투자자금을 잃고 돼지고기 사먹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주식의 매력, ‘유한한 책임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데서부터 바로 주식은 시작됩니다. 베네딕타의 동인도회사에는 수많은 주주들이 생겨났고, 투자자들은 여유자금으로 적은 금액을 투자했기 때문에 마음도 편안합니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빚을 내 백 장, 천 장을 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산타마리아가 출항한 후 지혜로운 베네딕타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멋들어진 종잇조각인 주식이, 주식을 팔았던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한거죠.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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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종헌
동부증권에서 영업직원의 삶을 시작한 이종헌씨는 언제부턴가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틀에 박힌 일에서 전혀 재미를 얻지 못한다는 그는, 별 것도 아닌데 어려워 보이는 증권사 금융상품을 쉽게 풀어주는 강의를 하기도 하고, "단기매매"에 빠져 있는 고객들을 위해 주식의 "진짜 모습"을 설파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