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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Dec 27. 2022

고슴도치의 사랑

쿨한 엄마

어느 날 두더지가 무너진 흙더미에 깔려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 고슴도치는 두더지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펴준다. 그런데 두더지 몸에는 온통 상처투성이다. 고슴도치의 가시 때문이었다. 고슴도치는 동물 친구들을 찾아가 자신의 가시를 잘라야 하나 의논한다. 사슴벌레, 코뿔소, 다람쥐 등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고슴도치야. 너에게 가시는 아주 소중한 거야. 위험으로부터 너를 보호해 주니까" 우리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그때 다람쥐가 도토리 껍질로 옷을 만들어 고슴도치에게 주자는 의견을 낸다. 코뿔소가 나무를 쿵쿵 부딪혀서 도토리가 떨어지고 동물친구들은 도토리를 주워서 고슴도치에게 갑옷 같은 옷을 만들어준다. 덕분에 두더지 할아버지는 고슴도치의 집에서 잘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에게도 토토리껍질로 만든 갑옷이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나는 병든 남편을 보살피는 과정에서 그 모든 문제를 어린 딸에게 하소연했다. 결혼을 반대한 친정에는 숨기고 싶었고 친구들은 멀리 있었고 직장동료들은 모르길 바랐다.

마르타수녀님의 대부님이 알아넌에 국내로 들여온 허근 신부님이었다. 그때가 2012년쯤이었을까? 2013년이었을까? 알아 넌 회원 6쌍에게 허근신부님이 오셔서 혼배성사를 해주는 행사를 진행했었다. 수녀님이 대부님이 내려오시기에 이 행사를 잘 진행시키고 싶었고 6쌍 모두 행사에 참석해주십사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혼배반지도 받고 부케도 받았다. 다른 회원들의 남편은 그날만큼은 말끔하게 차려입고 왔지만 내 남편만은 한 달 전부터 그렇게 부탁을 했어도 그날도 몸을 가누지 못했다.

성당의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나에게 쏟아졌다. 다른 다섯 쌍의 부부들은 이미 단상에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눈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혼자 서있었다. 다른 신도들이 큰애에게 엄마옆에 서라고 했다.

그때 큰애와 눈빛이 마주쳤다. 너무 부끄럽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군중 틈에서 나에게 쭈볏쭈볏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신부님이 단호하게 저지했다.

"자매님 혼자서 걸어오세요. 자녀에게 짐을 지우지 말고 혼자 당당히 걸어오세요. 자매님은 할 수 있어요."

그때 그 많은 군중사이를 걸어가는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서 어떻게 혼배성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엄마로서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여전히 무슨 일이 있으면 딸과 상의하려 했다. 그 애는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이 되어서도 엄마의 카운슬러 었던 것이다.

그녀가 엄마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은 공무원에 임용한 후였다. 본인도 직장생활로 너무나 힘이 들어 더 이상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줄 힘이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딸은 거리 두기를 한 거였는데 나는 또 다 키워놓으니 자식 소용없다는 생각에 힘들어했다.

모든 일에 해결사처럼 설치고 다니면서 정작 우리 딸의 영혼을 갉아먹는 어리석은 엄마였던 것이다.


어느 날 다음 브런치에 올라온 글이 메인화면에 떴는데 책 제목이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였다. 한편 읽어보는데 나는 우리 딸이 가명으로 쓴 줄 알았다. 어쩌면 그렇게 나와 딸사이와 똑같은 상황이었는지.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했다. 위로가 되는 점은 나 같은 엄마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힘들어서 하소연하는 대상은 아무리 마음이 커도 그래봤자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이었는데 나는 딸에게 구원을 요청하다니.


그 책을 본 지 3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딸 전화번호부터 누르고 본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나는 '아. 또..."


이제는 내가 우리 딸을 보살펴주어야 할 때가 왔다. 하지만 솔직히 방법을 모르겠다. 우선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해서 음식을 해주기로 했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올라로 전할 방법이 필요하다. 내가 사랑한다고 아이를 안아줄수록 내 가시에 아이가 상처를 입을 테니...


나에게도 도토리 껍질로 만든 갑옷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부모교육에 관한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재하게 되는 글을 부모교육 상담 과정에서 얻게 되는 지식을 나 같은 어리석은 부모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상처 주지 않고 나의 사랑이 딸에게 안전하게 닿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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