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의 응급실이란 곳의 풍경은 의외로 지루하게 움직였다. 집에서 가까운 한마음 병원이나 시내에 있는 한국병원의 경우엔 교통사고 환자들도 인산인해를 이루며 소란스러웠지만 이곳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지루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나마 119에 실려 간 남편이 가장 위급한 환자처럼 보였다. 응급실에서의 불편한 통과의례가 시작되었다. 나는 의사랑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천장을 쳐다보며 묻는 말에 대답을 하다가 고개를 떨궈 신발을 보니 삼선 슬리퍼의 크기가 달랐다. 한쪽은 240mm 하늘색, 한쪽은 235m 분홍색이다. 양말도 신지 못한 삼선 슬리퍼 사이로 엄지발톱이 꽤나 길게 자라 있었다.
그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추위가 등 뒤로 밀려오면서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발까지 시렸다. 하긴 내일이 11월 1일이니 발이 시린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생명이 위독하진 않겠지만 봉합하는데 두 시간 이상 걸립니다.”
나는 그런 것 따위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물끄러미 양말을 신지 않은 내 발만 쳐다보았다.
응급실의 많은 눈들이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떨군 고개를 들어 올리는 일조차 너무나 힘이 들었다. 턱을 밀어 올리다시피 고개를 들어 의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잠깐 눈을 감고 있는데 광목 끈에 내 몸이 묶여서 시렁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내 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잠을 잔 것도 아닌데 눈을 감으면 헛것이 보였다. 그 와중에 찾아온 허기는 배고픔 하고는 달랐다. 입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뭔가 이 상황을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었다. 마땅히 얘기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1621개였다. 이 많은 전화번호 중에 나의 이 처절한 마음을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럴 때 누군가라도 와서 내 어깨에 무릎담요라도 덮어주고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건네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어둡고 긴 복도에서 혼자 뎅그러니 앉아 가누기조차 힘든 머리를 벽에 기댄 채 하룻밤을 견뎌내야 한다.
다행히 주머니에는 천 원짜리 지폐 몇 장과 체크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나는 양말을 사고 싶다는 생각에 지하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누군가 컵라면을 먹고 있는지 역한 기운이 밀려왔고 비위를 견디지 못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하긴 아침도 먹는 등 마는 등 서둘렀고 점심은 바빠서 못 먹고 저녁이래야 말라비틀어진 밥 한술을 말아 무장아찌 한 개 올려 먹은 것이 다였다.
편의점에 양말은 없었다. 대신 발목 스타킹이 있었는데 2,500원이나 했다. 마트에선 10개에 3,000원인 발목 스타킹이 1장에 2,500원이나 하다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사기가 망설여졌다. 한번 양말에 생각이 머물자 마치 발가락이 얼어가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스타킹을 까서 신었다. 스타킹에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1층 로비에 앉아 400원을 넣고 커피자판기에서 고급을 선택하여 밀크커피를 뽑았다.
차창 밖으로는 의사 한 명이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의사는 국화가 심어진 화분의 흙에 담뱃불을 비벼 끄더니 꽁초는 가운 주머니에 집어넣고 고개를 돌려 들어오려다 내 눈빛과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못 본채 하려고 했다. 의사가 현관으로 들어와 나를 지나 응급실로 향하다가 뒷걸음질 쳐 내 옆에 앉았다.
“보호자님은 술 못하시죠? 보호자님이 술을 한잔 한다면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좀 쉬울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양 입술을 안으로 말아 입을 꼭 다문 채 애써 웃어보려고 하였지만 눈물이 먼저 방울방울 떨어져 무릎을 적셨다.
“보호자님을 이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난 그해 저는 레지던트 1년 차였어요. 몇 년이 흐른 지금 환자도 환자지만 볼 때마다 보호자님이 걱정이 돼요. 뭐랄까요. 낙엽이 바스락 거리듯 보호자님이 순식간에 바스러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필요하시다면 제가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괜찮습니다. 선생님 제가 슬퍼해서가 아니라 슬퍼하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하셨죠? 그냥 슬프지 않은 건 아닌데 슬퍼할 기운이 없어요. 어쩌면 맘껏 슬퍼할 시간도 없어요. 슬픔도 유효기간이 있나 봐요. 이런 일도 계속 반복되다 보니 슬픔도 학습이 되나 봐요. 이렇게 반복되는 슬픔을 처음처럼 똑같이 표현하다 보면 제가 어떻게 견디겠어요. 남들에게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이런 울툴불퉁한 일들이 저에게는 일상이 된 지 오래잖아요. 그 사람은 하루 종일 누워서 어떻게 하면 나에게 관심을 보일까 생각하며 보내겠지만 저는 사실 관심이 끊어진 지 오래고요. 저도 좀 눕고 싶어요. 어디에든. 이 지친 몸을 좀 누이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머리가 너무 무거워요. 볼이 찢어질 것 같고 정말 어딘가에 누워서 눈을 붙이고 싶은 생각 밖에 없어요. 그제도 못 잤고 오늘도 못 잤어요. 오늘도 못 자면 72시간 동안 겨우 4시간 밖에 자지 못했어요. 게다가 저는 내일 아침 8시에 조찬으로 열리는 이사회에 준비한 서류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저는 119 구급차를 함께 타고 왔고 서류는 제 차에 있어요. 제 차는 집에 있고 제 호주머니엔 4,500원뿐이에요. 여기서 우리 집까지 택시비가 4,500원 넘으면 어쩌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어요.”
뭔가를 더 말하려고 할 때 간호사가 의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는 내 어깨를 한번 터치하고 병동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