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족력이 갖는 위력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였다

by 스칼렛

맨 처음 남편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2006년 12월의 끝자락이었다. 자다가 일어난 남편이 냉장고 거실에 냉장고 문을 열기에 목이 마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냉장고 문을 열고 오줌을 벌벌 싸고 있었다. 순간 남편의 머리통에 남편이 성경처럼 갖고 있던 두꺼운 자본론 책을 날렸다. 남편은 고꾸라졌고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이 인간을 내 눈앞에 치우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먼저 경찰서에 전화해서 이런 알코올 중독자를 몇 시간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기관이 있느냐고 물었다. 경찰에서는 그런 사람을 피해서 집을 나와 아이 셋과 함께 살 곳은 있지만 남편을 수용할 곳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학교에 다니는 아이 셋을 데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후 남편이 술 마시고 무너지는 장면은 나를 처참하게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가 좀 못 배운 사람이라면 참을 수 있었을까? 그가 나이가 더 많이 먹어서 노인이라면 참을 수 있었을까?


정신병원에 맨 처음 가서 하는 일은 가계도를 그리는 일이었다. 남편의 가족사를 드문드문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남편의 가계도를 그려놓고 보니 처참했다. 우선 배우 유인촌을 닮았다던 남편의 큰형은 부산고등학교를 보내 달라했는데 가정형편상 부산상고로 진학을 했다고 했다. 인문계형의 형이 상업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했고 거기서 마음의 끈을 놓아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 남편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누나의 얘기는 남편의 얘기와는 사뭇 거리가 멀어 죽은 동생에 대한 포장이 보태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성현이 아빠랑은 또 달랐어. 죽은 큰 동생은 정말 머리도 좋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정말 주변에서 입 안대는 사람이 없었어. 얘가 귀티가 잘잘 흐르는 게 정말 귀공자 모양이었거든.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전거 타고 부산 영도다리 놀러 갔다가 트럭 운전사가 차를 세우고 차문을 열고 내리는데 거기 전력질주하다가 친구가 죽은 거라. 그 친구가 죽고 나서는 얘가 자꾸 죽은 친구가 보인다며 그렇게 마음을 주저앉히더라고. 그 죽은 동생 때문에 서면에 있는 100평짜리 집도 날리고 아버지도 술만 드시다가 산에서 돌아가셨잖아. 나도 그 때문에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고. 내가 서울 올라가서 성현이 아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데려다 키우다시피 했지. 정말 그 동생만 살았어도 우리 집안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그리고 정유회사를 다니며 대학교 학비를 대줬다던 작은형은 전라도 정읍에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중산층으로 잘 사는가 싶더니 당뇨로 몇 년 고생하다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째 되고 있었다. 어린 남편을 시누이에게 맡기고 시누이가 시집가고 나서는 위암으로 돌아가신 시아주버님에게 맡긴 시어머니에 대해서는 잘해야 1년에 한 번 보는 손윗동서에게 영화 한 편을 보듯 들을 수 있었다.


나름 요조숙녀, 현모양처라고 자부하던 동서는 얼굴은 말상에 키 크고 덩치도 컸다. 눈과 코까지는 인물이 좋았는데 입술에서 분위기가 흐려지는 상이 었고 내가 결혼해서 얼마 안 됐을 때 나름 맏동서라고 나에게 군기를 잡는다고 이러쿵저러쿵 시도하다 그 관심마저 꺼버리고 자기 식구 넷에 혹시라도 시댁에서 끼어들까 봐 철옹성을 쌓는 스타일이었다.

“동서? 아휴. 자네는 도련님 잘 만나서 시어머니 꼴 안 보고 산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이야. 자네 시어머니 말이야. 내가 결혼해서 와보니 오십도 안됐더라고. 그런데 도련님 서울서 대학 다닐 때 생활비 하루만 늦어도 머리 질끈 동여매고 벽쳐다 보고 누워서 흰 죽 끓여라, 콩죽 끓여라……. 정말 내가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많아. 다른 사람 같아봐. 그 나이에 뭘 해도 하지 안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 시어머니 하루 웬 종일 하고 다니는 게 곱게 차려입고 양산 쓰고 한복 치마 왼쪽으로 치켜세우고 화투판에 쫓아다니며 산 양반이야. 아무리 10원짜리 화투라지만 그 형편에 하다못해 노점상을 해서 자식 키우는 부모도 얼마나 많은가? 우리에게 도련님 학비 떠넘기고 그때 생각하면 내가 정말 화병 나서 죽어. 도련님은 어떻고? 도련님도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 한번 했는지 아는가? 방학 때 내려오면 다리 건너 약방 가서 거기 약사랑 바둑 두는 것이 일이었어. 정말 자네 시숙만 뼈골이 녹아 났지.”


그럴 말을 할 때마다 손윗동서는 커다란 눈망울을 치켜세우며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형님에게 빚을 지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어서 송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