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님 소개로 마르타 수녀님을 만난 건 2010 년 어느 늦가을이었던 것 같다. 가끔 나는 어떤 장면이 사진 한 장처럼 선명하게 기억되곤 한다. 중앙성당에서 마르타 수녀님을 만난 날이 그런 날이다. 그날 내가 입었던 옷과 신발 가방까지 다 생각난다.
그때 몸무게는 48.5kg이었다. 동생이 시집가면서 사준 kieth 감청색 니트 원피스에 스카프를 둘렀었다. 수녀님을 만나러 간다고 할 때 나는 왜 그렇게 기대가 컸는지 모르겠다.
절에 시부모님 위패를 모시고 마음이 답답할 때는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부처님을 뵙고 위로받는 보살님이 있었고 또 회오리바람이 불 때는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어느 한구석 마음을 붙일 새도 없었지만 내 마음도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때였다.
달이 뜨면 달님에게 빌었다.
"달님. 남편이 술을 끊게 해 주세요."
별이 반짝이면 별님에게 빌었다.
"별님. 남편이 술을 끊게 해 주세요."
감나무에 까치가 놀러오면 까치에게 빌었다.
"까치야.성현아빠가 술을 끊게 해줘."
그러니 내가 수녀님에게 바라는 것도 오로지 한 가지였다.
"수녀님 제발 우리 남편이 술을 끊게 해 주세요."
수녀님은 말했다.
"자매님 여기는 남편이 술을 끊게 해주는 곳이 아니에요. 저를 찾아온 사람은 자매님이세요. 저는 자매님이 남편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하여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하는지 그걸 훈련시켜주는 사람이에요."
"훈련이라고요? 제가요? 제가 뭘 훈련받아야 하지요? 술을 마시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남편인데요."
그날처럼 절망스러웠던 날이 또 있었을까?
내가 바꾸고 내가 고치고 내가 훈련을 해야 한다니.......
나는 몹시 실망스러웠고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 같다고 했다.
3만 원짜리 점을 봐도 뭔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는데 수녀씩이나 되는 사람이 한다는 말이 뭐라고? 나는 너무 슬펐다. 수녀님은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차를 타려는 내 옆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박 선생님과 3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나는 가디건을 챙기지 않고 온것을 후회하며 울었다. 가을바람이 쌀쌀하게 불어 성당 마당에 떨어진 낙엽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게 알코올 중독 가족자들의 자조모임인 알아넌에 참석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마다 시간을 내서 상담을 다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모든 면에서 혹독했던 반면 이 상담시간을 내주는 데는 후했던 편이다.
나는 인터넷 신문사의 편집국에서 잠깐 일을 했다. 그 신문사의 사장님과 주주들이 이어도연구회의 이사들이었다. 그리고 이어도연구회의 이사장님이 제대 총장 재선에 실패하고 연구회로 돌아와 있던 참이었다. 연구회 사무국을 운영할 사무국장으로 총장님이 나를 발탁했다.
면접이라면 면접이랄 수 있는 면담 시간을 가졌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남편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때였다.
"총장님. 제가 연구회의 사무국장으로 일을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자라면 채우고 모르면 배워갈 것이고 또 열심히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사실 밝히지 않은 결격사유가 있습니다."
이사장님은 빈틈없이 냉정해 보이고 아무런 티 없이 맑은 얼굴로 하는 심각한 얘기에 좀 놀라셔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씀하셨다.
"그게 뭐요?"
"사실은 제 남편이 알코올 중독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런데 그 대답에서 대학총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로구나 생각했다.
"결혼할 때부터 남편이 알코올 중독은 아니었을 거 아닙니까? 그동안은 남편이 최 선생을 부양했다면 이제는 최 선생이 부양하면 되겠네요. 꼭 남자만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그때만 해도 남편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사실은 내게 주홍글씨의 캐서린이 갖고 있는 수치심보다 더 강력한 것이어서 정말 그걸 숨기기에 정신이 없던 때였다.
그런데 총장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인생 살다 보니 깁디다. 100미터야 혼자 거침없이 달려야 하지만 400미터 800미터부터는 바턴 터치해서 선수 교체하지 않습니까? 이제 최 선생이 선수가 되면 되겠네요. 남편이 최 선생에게 기회를 주려고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죠."
나는 어쩌면 이날 처음으로 남편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했던 것 같다. 그렇게 부끄럽고 수치스럽던 사실이 '그래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내가 열심히 살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이날의 대화는 어쩌면 첫 만남에서 차려야 할 격식과 위선에 잘 포장된 대화의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내가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쉽게 회사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로 소위 지성인이라는 집단에서 내가 격은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이 건에 대한 얘기는 차후에 하기로 하고
어떻든 그래도 이 모임에 가는 일만큼은 회사에서 후하게 허락해 주었다.
알아 넌 멤버는 7~8명 정도였다. 등록된 인원은 15명 정도였지만 거의 매주 안 빠지고 오는 멤베는 그 정도였고 그중에서 나는 제일 어렸다. 그때가 마흔이 갓 넘었을 때였으니까......
처음엔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를 올리고 간사님이 알아 넌 10 계명을 낭독했다. 그리고 말한다.
"지난 일주일간 있었던 이야기를 나눠 주세요.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담자의 성장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처음 한 달은 한마디 말도 못 떼고 울고 또 울었다.
다른 분들도 안타까워서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우리 친정어머니 또래의 크리스티나 정 할머니가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거의 두 달간은 울고 온 기억밖에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바쁜 시간을 틈타 이곳에 와서 눈물을 흘리고 가는 것이 전부여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입을 떼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자조모임에서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수녀님의 가르침에 따르고 멤버들의 응원을 받았다.
-어떤 때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착잡해진다. 생각을 정리하면, 부정적인 사고가 내 삶을 정체시키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알아넌에서 그 사실을 알았으며, 내 감정에 불문하고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도 알았다.-
알아넌에서 하루하루에 살자 10월 5일 페이지에 쓰인 글이다. 주로 이 글을 내가 읽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뼈에 사무치는 말이었다.
-때로는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며 나갔다가 거의 언제나 그렇듯이 아름다운 뭉게구름에 얹혀서 집으로 돌아온다.- 인디언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