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망자와의 화해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였다

by 스칼렛

오늘 남편의 3주기였다.첫해 제사엔 큰딸이랑 아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시누님 가족을 모셨다. 딸도 아들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겨우 절만 하고 사라졌다. 작년엔 혼자서 제사상을 차렸다. 작은 딸은 육지에서 공부 중이었고 아들은 군대에 있었다. 큰아이가 퇴근 후 나타나 겨우 절만 하고 제삿밥은 먹지 않았다.


오늘은 작은애가 비대면 수업이라 집에 와있고아들도 군에서 제대해서모처럼 아이 셋이 모두 참석해서 제사상에 음식도 같이 올리고 제사를 모시고 음식도 같이 먹었다.


남편을 화장하고 이승에서 마지막 제사를 지내고장례지도사가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미안하다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그리고 다음 생애에는 술 마시지 말고 멋진 삶을 살라고...


작은딸도 울며

아빠 안녕히 가세요.

아들도 울며

좋은 곳으로 가세요.


그런데 큰딸은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아무것으로도 태어나지 마세요.

울지도 않고 너무나 또박또박...


나는 어쩌면 천사표로만 생각했던 큰아이의 상처를 그때 처음으로 심각하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빠가 떠난 후 평화롭지만 서로 서먹해졌다. 그렇게 살갑던 사이에서 대화가 사라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조급해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말했다.

엄마 모두 각자의 슬픔이 있어요. 우리 그냥 각자 알아서 지내보게요. 서로 위로하느라 애쓰지 말고 엄마 슬픔은 엄마가 처리하고 우리 슬픔은 우리가 처리할게요.

그렇게 우라 좀 거리를 두고 남남인 듯 가족인 듯 어색하게 지냈다.

뭘 요구하지도 않았고 엄마를 챙기는 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좀 외로웠고 섭섭했지만

엄마로서 2021년을 사는 엄마로서의 자세에 대해 탐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좀 힘 있는 엄마로 기다리기로 했다.

네들이 참석 안 해도 엄마 혼자 할 수 있어.

하지만 함께 하면 기쁘겠지.

나는 정서적으로 아이들에게서 당당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려면 바라는 게 없어야 했다.

나는 훈련하고 또 훈련했다.


엄마가 집을 지키고 있을게.

언제라도 네들이 찾아올 수 있는 집

음식 냄새가 나는 집

보송한 이불이 있는 집

깨끗한 수건이 차곡차곡 쌓인 집

냉장고에 얼음이 떨어지지 않은 집

언제 와도 라면에 먹을 생강냄새가 살짝나는 김치가 있는 집

그런 집에 엄마가 있을게.


아이들은 내가 제사를 차리는 걸 못마땅하다고 했고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시부모님과

스무 살에 죽은 시아주버님

그리고 남편 대학공부를 시킨 정읍 아주버님

남편.


나는 다섯 명의 제사를 한꺼번에 지낸다.

법도 없고 뭐도 없다.

그냥 내가 차리고 싶은 대로 차린다.


과일 3가지, 전 3가지, 나물 3 가지,

밥, 생선, 탕


그리고 김치를 담고 잡채를 했다.


오늘은 웬일인지 아이들이 상 놓는 걸 거들어주었다.

당일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지낸다.

아이 들은 깻잎전이 맛있게 됐다고 했고

김치가 맛있다고 했다.


나는 제사상을 사진 찍어 우리 형제 단톡방에 올리고

남편의 대학 동기 두 명에게 보내준다.


벌써 그랬게 됐느냐

수고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남동생은 전화해서 더 많이 차리지 그랬냐며 가까이 있으면 참석했을 텐데 못 가봐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상을 차리면서 말한다.

아버님 어머님 성현 아빠 덕에 제삿밥을 얻어 드십니다.

맛있게 드시고 우리 아이들 잘 보살펴 주세요.

아주버님 두분도 성현 아빠 덕분에 제삿밥을 얻어 드십니다.

제가 건강해야 더 맛있는 음식 해드립니다.

제가 건강하게 해 주세요.

성현 아빠! 내가 혼자서 차리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어제 백신 2 차 맞고 땡땡 부은 팔로 혼자서 한 손으로 차렸어.

잘 먹고 아이들 잘 보살펴줘.


남편이 죽고 3번의 기제사와 추석 3번, 설 3번,총 9번의 제사상을 차렸다.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들은 아빠에게 술 따르는 걸 거부했다.

오늘은 성현이가 제주를 사 왔고

수현이가 외출했다 오면서 샤인 머스캣 포도를 사 왔다.

용하가 술을 따르고 수현이 상에 올렸다.


성현아 빠가 잘 먹고 갔을 것이다.

제사상을 두 개나 샀다고 면박을 주던 성현이도

놋담에서 놋수저 5벌을 사줬다.


나는 얘들에게 말했다.

어쩌면 엄마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지도 모르지. 엄마는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떻게 하니?

너희들은 엄마가 고생하는 거 싫다고 하지만

네들 마음에 아무 뿌리도 없는 것보다

이런 날을 통해

비록 엄마만 살아 있지만

너희들에게 아빠도 있었고

큰아빠도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고...

사랑 많이 받고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은 거야.

그냥 엄마는 이렇게라도 조씨집 조상들 대접하는 거 좋아.

힘은 들지만

너희들 잘 되게 해달라고 당당하게 빽 쓸데 있어서 좋아.

너희들에게 엄마만 있는 건 아니야. 적어도 엄마에게 제삿밥 얻어 잡수는 이 다섯분들도 너희들의 강력한 조력자라는 걸 잊지마.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