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소미경이 내 브런치를 보고 전화를 했다. 나는 마침 다른 직원들과 출장 중이었다. 양곡 시료채취를 하러 하나로마트로 들어가려던 참이어서 나중에 통화를 하자고 했다. 퇴근 후 미경이랑 긴 통화를 했다. 우리 시대에는 미경이가 왜 이리 많은지 우리 반에는 큰 소미경, 작은 소미경, 그리고 최미경이 있었다.
큰 소미경이었던 고등학교 동창 미경이를 제주에서 다시 만난 때는 컴퓨터 매장을 운영할때였다. 나는 우리 매장에서 컴퓨터를 사준 고객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러 다녔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집안에서 정해져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고객 집에 미경이가 놀러 와 있었다. 같은 학교 학부형 집이라며.
미경이는 우리 아이들을 정말로 아끼고 사랑했다. 딸만 둘인 미경이는 우리 딸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을 주기도 하였고 뒤늦게 태어난 용하를 많이 귀여워했다. 미경이는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궁금해하며 안부를 물었다.
나는 성현이는 시청에 다니고 있고 수현이는 한의대 본과 3학년이고 용하는 롯데시티 호텔에 셰프로 다니고 있다고 했다. 미경이는 용하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방황하던 용하가 방황을 끝냈는지 궁금해했다.
"응. 군대 갔다 오더니 어릴 적 신사로 다시 돌아왔어."
"그래. 젠틀맨. 용하 정말 신사였지."
미경이만큼 나의 어려웠던 생활을 잘 아는 친구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제주를 떠날 때만 해도 남편은 술을 많이 좋아하지만 인물 좋고 인상 좋고 자상하고..........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컴퓨터를 사러 온 손님들과 술친구가 되었다. 정형외과 의사, 치과 의사, 방송국 DJ. PD, 아나운서, 양식장에서 치어를 기르는 수의사, 철물점 사장, 문방구 사장. 빙과회사 직원, 학원 강사, 신문배달 기사, 콩나물 공장 사장....
우리 집 고객은 모두 그의 술친구가 되었다. 오죽하면 우리 집에 반디 카페 당호가 붙었다.
남편의 천리안 아이디는 ISKRA였다. 세상의 불꽃이 되고 싶다는 그의 프로필에 나는 정말로 그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달변에, 촌철살인의 필력에, 기타를 잘 치는 그는 누구와 대화를 해도 막힘이 없이 주도해 나갔다. 요샛말로 인싸였다.
꽃보다 귀한, 보석보다 소중한 성현 & 수현
장난기 가득하고 마음 따뜻한 신사
아이들에게도 지극정성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태워다 주고 점심시간에 맞춰서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 가거나 집에서 내가 싸준 도시락을 갖고 도서관 옆 근린공원에서 먹는 것을 좋아했다.
또 여건이 허락하는 날은 아이들을 칠성통에 있는 승진반점으로 데려 갔다. 어느 날 내가 갔더니 여자 사장님이 말했다.
"아휴. 어떤 여자는 저렇게나 자상한 남편이랑 사나 보나 궁금했어요. 어쩌면 저렇게 자상한 아빠가 있는지. 짜장면 시키면 애들 다 먹이고 아빠 먹어요. 내가 오죽하면 애들 거 먼저 해주고 우리 사장님 꺼 해 준다니까. 어쩌면 저런 남편 만나 집니까?"
남편은 그렇게 자상한 사람이었다. 주말엔 아이들을 데리고 오름을 데리고 가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서점에 데리고 가서 책을 사주고 읽어주고..........
요즘이야 남녀가 가사를 분담하는 것이 일상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남자들은 꼼짝도 안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곧잘 요리도 해주고 내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커피도 타 주었다. 내 친구가 오면 커피는 물론 과자 한 봉지라도 사다 주면서 놀다 가라고 했다. 술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남편은 선하고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때도 남편에게서는 늘 술냄새가 났다. 음주운전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음주운전에 걸려 무면허로 차를 끌고 다니고 접촉사고가 나면 옴팍 뒤집어쓰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내가 괴로움을 잊기 위해 선택한 것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일에 매진했다.남편이 사고를 칠때마다 폭풍같은 분노가 일었고 그 분노로 나는 먹지 못하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다 문화원에서 윤석산 교수님이 시 쓰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여기서 상담을 하는 박 선생님을 만났고 박 선생님 소개로 마르타 수녀님을 만났다.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알코올 중독자 가족들의 자조모임인 알아넌에 다니기 시작했다.
알코올 중독자 가족의 자조모임인 알아넌을 국내에 도입한 허근 신부님이 제주에 강연차 내려오신 적이 있었다.
허근 신부님은 마르타 수녀님의 대부님이라고 했다. 마르타 수녀님을 응원하기 위해 무슨 캠프가 제주에서 있었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 다 기억나진 않지만 알코올 중독 부부 6명 결혼식을 재현하고 혼배성사라는 걸 봤다. 다른 남편들은 모두 말쑥하게 나타났는데 남편만 술에 취해서 나타나지 못했다. 어찌어찌 수녀님이랑 성당분들이 태워왔지만 도저히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다들 쌍쌍인데 나 혼자 걸어가야 했다. 주변의 자매님들이 큰애에게 아빠의 자리에 서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때 허 신부님이 제지했다. 혼자서 걸어오라고 했다. 자식에게 남편의 역할을 기대하지 말고 혼자서 당당히 걸어오라고 했다. 나는 혼자서 걸어가는 내내 울었다. 거기에 있는 다른 5쌍의 부부도, 그 행사에 참여한 다른 신도들도 다 울었다. 여기저기서 휘청이며 걸어가는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신부님 앞에 섰을 때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고 흐느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나이 마흔이 되던 해였던 것 같다.
혼배성사가 끝나고 가족치유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순서가 있었다. 일종의 미술치료였던 것 같다. 가족을 그려보라고 했던가 그 수업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용하가 그린 그림이 단상에 내걸리고 신부님이 용하에게 그림을 설명해 보라고 했다. 용하는 망설이지도 않고 떨지도 않고 그림을 설명했다.
-여기 이 큰 나무는 엄마예요. 그리고 이 딱딱 구리는 아빠예요. 딱따구리가 나무를 파먹어서 구멍이 났고요. 여기 두 마리 새들은 큰누나 작은누나예요. 새들은 나무가 즐거우라고 노래를 하고 있고 저는 코알라예요. 엄마가 쓰러질까 봐 제가 엄마를 꼭 붙잡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감탄하며 눈물을 훔쳤다. 크리스티나 정, 마리아 조, 세실리아 김, 다른 자매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자매님은 자식들 믿고 살아집니다. 세상에나. 아이고 세상에나.., "
신부님은 용하에게 말했다.
"엄마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아. 엄마는 강하단다. 너도 걱정하지 말고 누나들처럼 엄마에게 기쁨이 되도록 하렴."
그때 용하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두배, 세배로 노력해서 아이들만큼은 상처 없이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도 조금씩 상처를 갖고 자라났다. 초등학교 1학년인 용하는 엄마가 쓰러질까 걱정이었다. 수현이는 어렸을 때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으로 상처를 입기를 거부했다. 성현이는 어릴 때 있는 힘껏 엄마의 동반자가 되어주었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서는 녹다운되어 지금은 엄마와 적당한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