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주변엔 제주도서관이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 제주도서관의 열혈 이용자였다. 일요일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왔다. 한사람에 2권씩 빌려주던 때였다. 도서관에서 서로 빌리고 싶은 책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문열의 삼국지, 어린이 토지, 그리스 로마신화, 허영만의 식객을 함께 읽었다. 그중 고구마 편은 우리 가족 모두 감동받은 이야기였다.
옛날엔 맞고 사는 여자들이 많았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맞고 사는 여자였다. 매를 이기지 못한 어머니는 도망가서 산너머 다른 남자에게 재가했다. 주인공은 산너머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반기기는 커녕 눈에 불을 켜며 주인공을 내쫓았다. 불 꺼진 집에 어머니는 몰래 사립문을 열어놓았고 주인공은 몰래 부엌으로 숨어 들어갔다. 가마솥에는 삶은 고구마 3개가 놓여 있었다. 그 아이는 커서 사형수가 되었고 사형이 집행되기 전 뭐가 제일 먹고 싶냐는 물음에 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대답한다. 우리는 그 대목에서 모두 울었다.
우리는 남편이 알코올 중독자로 진단을 받기 전까진 나름 행복했다. 아니 진단을 받고 나서 술을 먹고 음주운전을 해서 경찰서에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무너지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주말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고 점심엔 고구마를 삶아 먹으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그리고 주말엔 무한도전을 보며 박장대소했다. 남편이 사고를 칠 땐 절망스러웠지만 나는 또 어찌어찌 해결을 해냈고 해냐야만 했다. 내가 남편의 음주로 인한 사고를 감당해낼 때까지는 그래도 우리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남편도 우연히 신제주에 살고있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 동창 부부는 우리 집에 매주 놀러 오다시피 했고 올 때마다 먹을걸 사 왔다. 아이들은 그들은 신제주 아저씨 신제주 이모라 불렀다. 신제주 이모는 아이들에게 산타였다.
신제주 언니는 말했다.
"너희 집에는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구나. 깔깔깔. 껄껄껄."
어쩌면 남편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어도 사고만 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남편을 병원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술만 마시면 음주운전을 했다. 그리고 꼭 경찰에 걸렸다. 정말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벌금이 늘어갔다. 그때 나는 왜 면허를 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면허시험을 보러 갈 돈이 없었다. 운이 나쁘게 경찰에 걸려 벌금을 내면 운이 좋게 광복절 특사가 되어 3진 아웃이 풀렸다. 그렇게 남편은 3번씩이나 광복절 특사가 되는 행운을 누렸다.
남편의 음주운전은 가히 병적이었다. 그나마 경찰에 걸리면 벌금으로 끝나지만 접촉사고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의 사고처리 기억은 지금도 하고 싶지 않다. 너무 기가막히고 그때의 기억은 아파서 지금도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처리 과정은 쓸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나를 환장하게 하는 것은 그렇게 사고를 치고는 잠적해버리는 것이었다.
아~~ 이때의 내가 갖는 분노, 절망,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얼마나 아프고 아파야~~ 임재범의 노래가 가슴에 저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