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멀티 플레이어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였다

by 스칼렛

13. 멀티 플레이어

남들 퇴직할 나이에 공무원이 되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경력 합산이 될 게 없어 9급 1호봉으로 임용되었다. 며칠 후 8급 승진을 앞두고 있다. 지금 상황으로 잘해야 7급에서 정년퇴임을 하게 될것이다.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은 천안 상록리조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오전 과채류 검사관 필기시험을 보았다. 오늘 본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내일 실기시험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라서 그 압박감이 상당했다.

"시험 떨어지면 내려오지 마세요."

출장 보고를 하러 갔더니 지원장님이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이 시험이 그런 시험이다.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떨어지면 레전드로 전해지는.

어젯밤엔 공부도 안되고 잠도 오지 않았다.

다행히 오늘 시험에 합격해서 내일 실기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시간이 휴식처럼 느껴진다. 청소를 할 일도 없고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에서도 해방이지만 업무에서도 해방되었다. 와중에 이어도 설화 그림동화집 더미북이 나왔다. 그리고 원산지 표시판 시안에 관한 메일이 왔다. 나는 이렇게 시험 중에도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나는 그동안 한 가지 일만 하면 능률을 낼 수 없었다. 특히 지출증빙서 등 단순 업무를 할 때는 너무 시간이 아까워서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겐 블루투스 이어폰이 필수다.


빨래를 개면서 영어회화 듣기

설거지하면서 오디오북 듣기

반신욕 하면서 토익 Lc 듣기

지금은 유튜브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쓴다.


이게 병이다.

난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없다.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만 능률이 오른다.그간 한 가지 일에만 매진할 시간이 없었다. 남편 대신 혼자서 아이 셋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야 했다.가장 나를 혹사했던 기간은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10년이였다. 이때 나는 두 가지, 세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낮에는 이어도연구회 연구지원팀장으로 밤에는 초등학생을 캐어하는 베이비시터로 일했다. 연구회에서 박사 교수들을 상대하다 보니 나도 학위가 필요해서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원 들어가서 얼마 안 돼서 딸과 함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연구지원팀장, 베이비시터, 공무원시험, 대학원 논문준비 네 가지 역할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던 때도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느낀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를 혹사시켰는지가 수치화되었다.

나는 일반인의 두배, 세배, 네 배로 활동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많은 일을 도대체 언제 다 하세요?

비결은 불면증이다.

남편이 알코올 병원을 드나들 때 난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원 들어가서 일주일에 하나씩 리포트를 써내면서 불면증을 이겨냈다.


요즘도 질 좋은 잠을 자진 못한다.

4시간 정도 자면 감사하게 생각한다.

예전엔 잠이 안 오면 자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제는 잠이 안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할 시간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고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고

영어책을 읽고 글을 읽는다. 그리고 글을 쓴다.


내가 난소암 진단을 받았을때 성현이가 말했다.

"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게 이상할게 하나도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이렇게라도 멈출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젠 엄마 몸을 좀 돌보세요."

그 이후로도 나는 쉬지 못했다


배를 움켜쥐고 아들 입대시키고 왔더니 한의대 다니는 딸이 휴학을 하겠다고 짐을 부쳐왔다.

20평 아파트에 열개가 넘는 택배박스가 배달되었다.


"엄마. 저 너무 힘들어요.저도 공부 좋아서 한 거 아니에요.내가 할 수 있는 게 공부뿐이었어요.

고등학교부터 지금까지 공부 공부 공부...

제가 엄마에게 관심받을 수 있는 게 공부뿐이었어요.

그런데 정말이지 엄마 저 너무 지쳤어요.

한해 쉰다고 별일 나지 않아요. 재수했다 치면 되잖아요.

우리 동기들 재수는 기본이고 장수생들도 많고 삼성다니다 온 애아빠 치대나 의대에서 전환애온 사람들도 많아요. 저는 엄마 너무 어려요. 유급 당해서 쉬는 동기들도 있어요. 저는 엄마 유급당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기를 썼는지 몰라요. 모든 사람이 엄마처럼 열심히 살진 않아요. 저는 제 속도로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렇게 둘째가 휴학을 해서 내려왔다.

인생 참 쉬운 게 없었다.

다행히 수현이는 1년 동안 한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복학을 했다.


혼자서 아이 셋을 키우며 남편 병시중을 들며 내 성장을 위해 공부를 해야 했으니 한 가지씩 해서는 이룰 수 없었다.

와중에 수다를 요청하는 전화가 올 때는 식기세척기의 그릇을 빼서 정리하곤 했다.

그때마다 20년 지기 후배 미정은 소리친다.

"언니 내 말 건성으로 듣지?

제발 내 말에 집중 좀 해줄래?

전화 끊을까?"


"그래 끊자."

이렇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미정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출장지에서 한가로움을 느낀다.

필기시험 합격을 확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을 걸어서 만보를 채웠고 깨끗한 이불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또각또각 글을 쓴다.


쾌적해서 좋고 한가해서 좋다.

집에는 없는 텔레비전이 있어서 참 좋다.

오늘은 멀티로 해야 할 일이 없다.

텔레비전 소리가 시끄러워서 끄고 창문을 열었더니 가을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할 일이 없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