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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Nov 12. 2021

9. 풍랑을 맞은 고동지 일행

이어도 설화 동화 _여돗할망 이야기

마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고동지 일행을 위로하고 배웅하기 위해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돼지를 잡아 조천포에 모여 잔치를 벌였어요. 

“우리 탐라 사람들은 예부터 중국과 해상무역을 하지 않았겠나. 송나라 때만 해도 해남의 관두량에서 탄 배는 이곳 조천포에 들러 하루를 묵고 중국으로 떠났지.”

 선흘리 양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말했어요.

“제주에서 중국 강남으로 가는 길 절반쯤에 흰 파도가 일렁이는 이어도가 있다지요?”

예로부터 한라산에서 남서쪽으로 300리 너머에는 바닷길이 험한 이어도라는 섬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렇다네. 이어도만 무사히 지나가면 중국이 가까워진다고 하였네. 중국 배들은 이어도에서 좌초되고 말지만, 탐라의 배들은 이어도를 무사히 지나곤 했다네. 그래서 이번에 말을 조공하러 가는데 탐라 사람들이 동원된 것이지.”

“그런데 이어도는 여인들만 사는 여인국이라지요?”

“이어도에는 공녀로 끌려간 여인들이 중국으로 가기 전에 몸을 던져 그 혼들이 지나가는 뱃사람을 쉽게 보내주지 않는다면서요?”

한배 가득 말을 싣고 원나라로 떠나는 고동지를 배웅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포구에 모여들어 한마디씩 했어요. 

강심은 눈물을 삼키며 이별의 손을 흔들었어요. 고동지의 아버지는 수평선 너머로 배가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어요.

고동지 일행이 말을 한가득 싣고 뱃머리를 서해로 돌려 순풍에 돛을 달고 바닷길을 떠났어요. 파도가 잔잔하니 바닷길을 가기에 안성맞춤이었어요. 

바다의 물빛은 짙푸르고 하늘 또한 맑았어요. 배는 하늘과 잇닿은 새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순항했어요. 조천포를 떠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어요. 

“바람 부는 형세가 심상치가 않네. 먹구름이 짙게 끼었다 걷히기를 반복하고 있어. 기후가 순조롭지 않은 날이야.”

노를 젓던 사공의 혼잣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어요. 배가 심하게 흔들렸어요. 

삼대같이 굵은 비가 내리퍼붓고 성난 파도가 한라산보다 높이 일었어요. 휘몰아치는 파도는 배를 하늘에 닿을 듯이 사정없이 밀어 올렸어요. 돛대가 와지끈 부러졌어요. 말들도 놀라서 날뛰기 시작했어요. 두려움에 떠는 말들이 일제히 우는 소리는 세찬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무시무시하게 들렸어요.
 “바람에 돛대가 부러졌소. 갑판에 물이 들기 시작했소.”

노를 젓던 사공들의 다급한 외침에 누군가가 말고삐를 풀어 뱃전으로 올렸어요. 캄캄하게 어두워진 바다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니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어요. 울부짖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어요. 

“용왕님, 우리는 탐라 사람들로 중국에 말을 진상하러 가는 길입니다. 본디 우리는 남의 탐하지 않고 착하고 어질게 살았어요. 어느 날 원의 목마장이 들어서더니 말테우리가 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말을 돌봐야 했습니다. 원나라 관리들은 우리가 애써 기른 말을 싣고 국마 진상을 떠났지만, 바다에서 풍랑을 맞아 죽은 이가 허다하여 말을 바치러 가려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원나라에서는 공녀를 면해준다는 말로 우리더러 원에 말을 바치고 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을의 처녀들이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배에 올랐습니다. 부디 불쌍한 목숨만은 살려주소서.”                   


그때 뱃사공의 우두머리인 양노인이 소리쳤어요. 

“일단 널뛰는 말을 용왕님께 바쳐야 하오.”

사람들은 말의 눈에 검은 띠를 둘러 눈을 가리고 뱃전으로 데려가 말의 엉덩이를 걷어찼어요. 화들짝 놀란 말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어요.

“이 말을 용왕님께 인정(人丁)으로 바치오니 부디 바람을 돌리고 파도를 잠재워 주소서.”

“아니! 말을 바다에 빠뜨리면 어찌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지금 이 험한 바닷길을 가는 이유를 잊었습니까? 우리가 무사히 말을 진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마을의 처녀들을 구할 수 있는데 말을 바다에 빠트리면 어찌한단 말이오?”

고동지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두 뺨에 흐르는 물을 닦으며 소리쳤어요.

“지금 말이 대수인가? 우리가 먼저 죽게 생기지 않았나! 우선 우리가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서 말들이 놀라 날뛰니 우리가 더 위험한 지경이네. 용왕님이 노하여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이니, 무사히 이 바다를 건너게 해달라고 인정을 바쳐야 하네. 말 아니면 지금 누구를 제물로 바칠 텐가?”

사람들은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고성을 지르며 싸움을 하기 시작했어요.

잠시 후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더니 먹구름 사이로 해가 내비쳤어요. 그러나 뱃사공들은 더는 노질을 할 수가 없었어요. 돛대가 부러지고 노는 전부 파도에 휩쓸려 버렸으니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치는 대로 떠다닐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조천포를 떠난 지 이레째 되는 날이었어요.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어요. 비는 세찬 폭풍우로 변했어요. 바람의 방향도 삽시간에 바뀌어 물결은 배 주위를 세차게 맴돌았어요. 파도는 하늘 높이 솟구쳐 내려앉았어요. 바다가 온통 하얗게 변했어요.

“저기 저 봉우리를 보시오. 저기가 이어도요. 지금 우리는 이어도 바다를 지나고 있소.”

“이어도 아래에는 큰 암초가 숨어있어 배가 암초에 부딪히면 큰일이오. 어서 뱃머리를 돌려야 하오”

온갖 의견을 내놓았지만, 돛대와 노를 다 잃은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어도를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그때 고동지는 아내 강심의 말을 떠올리며 갓을 벗어 던졌어요. 그리고 재빨리 가슴에 품고 있던 버선을 벗어 머리에 뒤집어썼어요. 순식간에 집채만 한 파도가 고동지를 덮쳤어요. 고동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물속 깊이 가라앉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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