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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Nov 12. 2021

8. 국마진상을 떠나는 고동지

이어도 설화 동화 _여돗할망 이야기

조천리에는 예부터 고려에 국마 진상을 다녀온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경험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말테우리였을 뿐 아니라 바닷길에도 능한 사람들이었어요. 고동지의 아버지도 고려에 국마를 진상하는 배를 탔었어요.

“동지야, 말을 진상하러 가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말도 뱃멀미를 한단다. 배에 말을 태울 때는 눈을 가리고 말 등을 손으로 살살 긁어주어라. 그러면 말이 네 손길을 느끼고 안심하게 될 것이야.”

“네. 알겠습니다. 아버님”

“말이 배에서 내려 육지에 닿을 때는 바로 물을 먼저 먹여서는 안 된다. 마른 풀을 먼저 먹여 속을 다스린 연후에 물을 먹여야 한단다.”

“네. 그렇게 하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천포에서 전라도 해남까지 가는 데에도 말이 기진맥진하여 맥을 못 추는 데 머나먼 중국까지 말을 싣고 무사하게 갈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바람의 방향을 잘 보고 좋은 날을 택해 떠나야 할 것이다.”

 “네. 목호 석다시만도 그리도 아끼던 거문돌이를 데려가지 못하고 제게 주고 간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말을 싣고 서해를 건너 중국 강남까지 가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했어요.”

고동지는 걱정스러워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그때 강심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어도만 무사히 건너면 중국에 닿을 수 있어요.”

“당신이 그걸 어찌 안 단 말이오?”

“서방님! 저는 해상상인의 딸 아닙니까? 서해를 지나 중국에 이르는 바닷길이 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특히 전라도 해남에서 강남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이어도 바다는 몹시 험해 열에 아홉은 그곳에서 좌초되어 목숨을 잃었어요. 이어도만 무사히 지나가면 중국으로 가는 길은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로울 것입니다.”

송나라 때는 공무역이 벽란도에서 성행하였지만, 송나라가 망하자 무역항이 해남의 관두량까지 내려와 사무역이 성행하였지요. 해남에서 출발한 배는 조천포를 거쳐 중국으로 떠나고, 중국에서 오는 배도 조천포에서 쉬었다가 해남으로 떠났어요.

“우리 조천포는 예부터 용천수가 풍부하고, 항아리 모양으로 굳은 암석이 풍랑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여 천혜의 항구가 되었다.”

“그래서 육지에서 제주 땅에 첫발을 내딛는 항구가 조천포가 된 것이군요.”

조천 근방 사람들은 일본으로 무역을 떠날 때도 조천포에서 배를 띄웠어요. 조천 사람들은 조천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중국으로 떠나는 날이 다가오자 강심은 아침 일찍 일어나 용천수가 나오는 바닷가로 갔어요. 정갈하게 목욕을 하고 이레기당에 가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어요. 

“바다에 사는 용왕님, 이어도에 사는 용왕 따님! 부디 우리 낭군님이 말을 싣고 무사히 바다를 건너가게 도와주세요. 흰 파도가 치는 이어도를 지나 중국에 말을 바치고 무사히 돌아오도록 해주세요. 남풍에 돛을 달고 고래의 등을 타고 집채만 한 파도를 넘어 이어도를 무사히 지나 머나먼 원나라까지 무사히 말을 싣고 가게 해주소서. 제주로 돌아오는 길에는 순풍에 돛을 달고 고래의 등을 타고, 이어도 여인들이 흔드는 손짓을 마다하고 이곳 조천포까지 바람길로 한걸음에 돌아오게 해주세요.” 

강심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강심의 간절한 마음이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서야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 그림은 강심이 이어도로 떠나기 전 지내는 해신제에서 한 번 더 써먹어도 되므로 사슴 빼고, 제단에 사람들 다 빼고 왼쪽 산 빼고 저 멀리 백해를 표현해서 한 번 더 써먹으면 될 것 같아요.     

고동지가 국마진상을 떠나는 날이 내일로 다가왔어요. 포구를 떠나면 열흘 가까이 망망대해를 항해해야 했기에 배에 실을 물건들도 많았어요. 마을 사람들은 해신제를 지내기 위해 돼지를 잡고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갔어요. 말을 싣고 떠나는 고동지 일행을 위해 바다 날씨를 관장하는 해신에게 제를 지내기 위해서였어요. 

“어르신! 저기 남서쪽 바다는 왜 저렇게 하얗습니까?”

“저 멀리 백해 말인가?”

“네, 저 흰 바다 말이에요.”

“이어도라네. 바다 아래 암초가 있어서 풍랑과 너울이 항상 일어서 그렇다네. 암초에 부딪혀 높고 거센 파도가 백해를 이룬 셈이지.”

해신제를 지내고 내려오는 길에 고동지와 마을 사람들은 설문대할망 소원돌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고동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했어요. 소원 돌을 감싸 안고 들어 올릴 때는 설문대할망의 기운도 함께 올라오는 것 같았어요. 소원 돌을 제자리에 내려놓은 고동지는 다시 합장하고 간절한 소원을 빌었어요. 

“설문대할망님! 저는 조천에 사는 말테우리 고동지 입니다. 내일이면 원나라에 바칠 말을 싣고 중국으로 떠나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늙은 아버지와 배 속에 아기를 품은 색시를 두고 멀리 있는 길을 떠나려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녀로 끌려갈 마을의 처녀들을 구하려는 대의를 어찌 사사로운 정으로 거스르겠나이까. 설문대할망이시여! 부디 제가 파도가 높이 치는 이어도 바다를 무사히 지나 원나라에 말을 바치고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소서.”

마을 사람들도 한마음이 되어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고 동지가 다시 할망돌을 들어 올리자 마치 큰 힘이 끌어당기듯 소원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손뼉을 크게 치며 기뻐했습니다.

“되었네. 잘 되었어. 설문대할망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 게야. 이제 안심하고 길을 떠나도록 하세.”                   

그날 밤 강심은 고동지에게 곱게 지은 버선과 산굼부리에서 꺾어온 억새로 삼은 초신을 내놓았어요. 

“서방님 내일 떠나면 언제나 돌아올까요? 대정에서는 중국을 오가는 뱃사람들이 많았어요. 뱃사람의 아내는 시집올 때 입고 온 치맛단을 잘라서 뱃길 떠나는 지아비의 버선을 지어 주곤 했어요. 아내가 지어 준 버선을 가슴에 품고 배에 오르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비록 이제는 오래되어 빛이 다 바랜 치맛감으로 지은 것이지만 이 버선을 가슴에 품고 가세요. 만일 풍랑이 일거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얼른 갓을 벗어 바다에 던져버리고 재빨리 버선을 머리에 쓰세요. 그러면 용왕님이 목숨을 구해주실 거예요.”

“용왕님이 어찌 알고 내 목숨을 구해준단 말이오?”

“머리에 버선을 쓴 사람은 용왕님께 갓을 바친 것으로 알고 목숨을 구해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바다에서 풍랑을 맞아 물속에 빠지면 물고기 떼들이 모여들어 사람을 먹이로 알고 뜯어 먹게 되지요. 그러나 얼굴을 가리게 되면 물고기 떼들의 습격을 피해 얼굴을 그대로 보전한 채 용왕님께 갈 수 있답니다.”

“당신은 모르는 것이 없구려. 내 그대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자 다짐했었소. 그러나 손톱이 자랄 새 없이 열심히 일했건만 원의 횡포가 날로 심해져 행복은커녕 목숨도 부지하고 살기 힘들어졌소. 더구나 배 속에 아기를 품은 그대를 두고 나 혼자 먼 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오.”              

“서방님이 무사히 원나라에 말을 바치고 집으로 돌아오길 빌고 또 빌겠어요. 설사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용왕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신다면 서방님은 이어도로 갈 수 있을 거예요. 이어도에서는 어떤 고난도 없이 연꽃에 편안히 앉아 쌀밥에 미역국을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요. 이어도에 가거든 거기서라도 행복하게 잘 사세요.”

강심은 눈물을 훔치며 옆구리에서 초신을 꺼내 고동지 손에 쥐여 주었어요.

“이 초신은 산굼부리에서 억새를 베어다가 실을 내고 내 머리카락을 섞어서 석 달 열흘 동안 온 정성을 다하여 삼은 신입니다.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새겼어요.”

“부인! 그래서 흰 수건으로 머리를 가린 것이요? 나를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다니 이게 웬일이요. 머리카락을 잘라 신으로 삼아주다니! 내 어찌 부인의 머리카락으로 지은 초신을 신을 수가 있겠소. 가슴 속에 고이 품고 가리다. 내 그대의 정성을 생각하여 용기 내어 노를 저어 가리다.”

“머리카락은 다시 기르면 그뿐입니다. 이 갓은 거문돌이의 갈기로 만든 것입니다. 당신이 거문돌이에게 사랑을 준 만큼 거문돌이의 영혼도 당신을 지켜줄 거예요. 떠날 때 이 갓을 쓰고 가세요” 

“부인! 고맙소. 이런 호강이 어디 있겠소. 태어나 처음으로 고관대작들이나 쓰는 것을 써보다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기쁘오. 이제 죽은들 뭐가 아쉬울 것이 있겠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구려. 배 속에 있는 아이는 딸이 아니고 아들이었으면 좋겠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버님 잘 모시고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시오.” 

고동지는 아내 강심을 힘껏 끌어안았어요. 고동지의 품에 안겨 강심은 흐르는 눈물을 닦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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