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나의 열애설에 비춰진 케이팝 산업의 자화상
3분 34초. 2024년 5월 19일에 방영된 SBS 음악방송 ‘인기가요’에 출연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 ‘aespa(에스파)’의 무대를 편집한 유튜브 편집본의 길이다. 실제 퍼포먼스 시간, 즉 곡의 길이는 3분도 채 되지 않는다. 컵라면을 아슬아슬하게 익힐 수 있을 정도의 짧은 시간. 그 찰나의 시간 속에서도 그들은 화려한 조명 속에서 빛나며 군중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이 영상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백 번의 연습, 수십 번의 리허설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빛나는 무대 위의 모습뿐, 나머지는 그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연습에 지쳐 피곤한 표정, 무대에서 내려온 직후의 거친 숨소리, 실수한 날의 울먹임까지도. 우리가 사랑하는 건 ‘아이돌’일까 ‘사람’일까.
작년 보도된 에스파의 리더 카리나의 열애설의 파급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가장 빠르고 예민하게 반응한 집단은 팬덤이었다. 분노를 토로하며 ‘탈덕’을 주장하는 팬들이 등장했고 ‘그들도 사람이다’라며 섣부른 비난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기에 기성 언론들까지도 가세했다. 아이돌의 연애를 터부시하는 케이팝 문화를 비판하는 칼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해외 팝스타들의 당당한 연애와 비교하며 한국 팬덤의 풍조를 ‘후진적’이라며 일갈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한국의 아이돌 산업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아이돌은 단순히 ‘음악+퍼포먼스’로 이뤄진 상품이 아니다. 종교와 연애를 혼합해서 빚어낸 거대한 서사이자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되는 비즈니스다. 팬들은 음악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멤버 개개인을 ‘최애(最愛)’ 즉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고 칭송하며 아낌없는 애정을 쏟는다. 그 애정의 대가로 팬들은 ‘완벽하고 먼 존재’인 아이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유한다. 소속사는 이러한 이미지와 서사, 나아가 비즈니스 모델을 철저하게 설계하여 아이돌을 만드는데 들어간 막대한 자금을 회수한다.
이는 아이돌이 ‘멤버 개개인의 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소 냉소적으로 바라보면 멤버들은 그룹의 거대한 간판에 불과하다. 하나의 그룹은 기획사, 방송사, 광고주, 투자자 등 수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거대한 유기체다. 따라서 멤버 개인의 ‘일탈’이 일으키는 파장은 단순한 가십을 넘어 실질적 손해로 이어진다. 카리나의 열애설 보도 직후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출렁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아이돌도 사람이다’라는 말은 일견 타당하나, 동시에 아이돌은 ‘사람 이상의 존재’로 설계된 상품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반쪽짜리 주장이기도 하다. 그들은 우리처럼 하루하루를 이악물고 버티는 인간인 동시에, 소속사의 재무제표 속 상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길. 아이돌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스캔들에 대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대로 멤버 개개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아이돌 시장은 이 구조 속에서 너무 거대하게 성장해 버려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아이돌의 열애설이 보도될 때마다 상품과 인간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시각을 만들어낸 산업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러한 노력이 뒤따른다면 제2, 제3의 카리나가 등장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덜 시끄럽고, 훨씬 더 뼈 있는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