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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스도시락, 한중일 미국 이민자

미서북부 한중일 이민자 30년

by 반 필립

나이가 들면 잠이 안 온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이 날까? 알람을 설정하지도 않아도 문득 잠에서 깨서 시계를 보면 아직 새벽 5시경이다. 오늘도 시애틀의 1월 겨울비는 안개와 함께 부슬부슬 내린다. 카디건을 걸치고 부엌에 내려가니 전기밥솥은 비어 있었다. 그냥 학교에서 사 먹으라고 할까? 잠시 고민하다, 결국 냉동실에서 밥을 꺼내 2분간 전자레인지로 데우고, 인스턴트 하이라이스는 3분간 끓는 물에 넣었다. 냉장고에서 마카로니 샐러드와 어묵 반찬을 꺼내, 딸아이 도시락에 하이라이스 덮밥 위에 마카로니 샐러드와 어묵볶음을 올렸다. 간편 인스턴트 도시락 완성이다.

문득 30년 전 시애틀의 일본 분식점에서 먹었던 하야시라이스(ハヤシライス)가 떠올랐다. 일본 카레와 돈카츠를 주로 파는 그곳에서 한국에서 가끔 먹었던 하이라이스(쇠고기 양파가 소스 안에 들은 카레와 짜장의 중간(?) 소스요리)가 하야시라이스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1990년대 중반, 일본 유학생과 일본 교포들은 서북부 지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당시 일본 마켓은 지금의 대형 한국 마트보다도 컸고, 한국과 중국 마트는 상대적으로 작았으며 유통 상황도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 출신이었고, 간혹 본토에서 온 중국인이 있으면 그 중국인의 의상패션과 하는 행동이 상당히 독특해 눈길을 끌었던 것이 기억난다. 마치 고위층 북한 동포가 미국 유학 온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에서 무척 유행하고 시애틀 벨뷰지역에 흔한 마라탕, 훠궈집이나 양꼬치구이를 그 당시엔 미국에서는 볼 수 없었다. 중국음식점은 주로 중국타운의 광동식 해산물 전문점이나 한국에서 건너온 화교가 운영하는 자장면집이 전부였다. 2010년대 들어 본토 중국인의 유입이 시작되며 중국 투자이민 러시가 본격화되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본토 중국인 이민자들이다 베이징보통화를 쓰는... 물론 옛 홍콩영화처럼 삼삼오오 모여 아직도 광둥어를 사용하는 노인들도 벨뷰 주변에 산책을 하면 종종 볼 수 있다.

그렇게 많았던 일본학생, 교포, 일본 음식점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본 가라오케가 새벽 3시까지 운영되고, 초밥집과 일본 가정식 백반을 파는 곳이 많았던 그 시절. 백인과 동양인 모두 일본어 몇 마디는 필수였다. 일본어 학원도 많았고, 일본어 배우기, 일본 친구 사귀기도 무척이나 활발했다.

일본인 2세, 3세는 일본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몇십 년 전 일본인들이 주로 시애틀, 벨뷰에서 중국인, 한국인에게 밀려 다른 도시로 이동한 것뿐이다. New Castle(시애틀 동쪽 벨뷰 남쪽) 지역에는 일본인 2세, 3세가 모여서 많이 살고 있으며, 이곳에는 한국인, 중국인이 시애틀 벨뷰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지역에는 소위 말하는 학군이 좋다고 소문난 인기 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이민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주재원 혹은 유학목적으로 온 한국, 중국인들은 진학률이 높은 벨뷰 지역에 자리를 잡는다.

미국에서도 공부를 많이 시키고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교를 학군이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 이민자들은 한국인, 중국인 이민자들보다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사실 일본도 학구열이 무척이나 높았고, 일본열도에서는 아직도 이곳 일본교포보다는 높다고 한다. 다만 미국에서 그것도 서북부에서 2세 3세가 되면 한국, 중국보다는 교율열이 식는 듯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유럽 서구 이민자들의 3세, 4세와도 유사하다. 하긴 일본인의 미국 이민 역사는 한국이나 중국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19세기말부터 이미 워싱턴주 시애틀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의 경우는 1980년대까지 1차 이민러시 이후에 한인이민 1세의 유입은 2000년대 초반부터 다시 급증했다. 중국교포는 사실 홍콩, 대만인들의 미국이민이 2000년 이전에 많았다면, 어마어마한 인구의 중국 본토 교포들의 이민이 2000년대 후반부터 급증했다. 따라서 한국인, 중국인이 모이는 곳은 학군이 좋고 집값이 비싼 지역이며,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아빠, so many Indian friends are so genius at Math (인도애들 새로 온 애들 수학 진짜 잘해)!” 학교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딸아이가 요즘 수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더니 더 잘하는 인도애들이 이제 보이는 듯 나에게 묻는다.
“음.. 한국애들도 잘하잖아 No worries, I am so proud of you. Keep going! (걱정 마 네가 잘하는 거 알아 계속 잘해!)” 나는 더 긴말하지 않고 잘하라며 격려해 주고 딸아이를 내려주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가 위치한 South Seattle은 동남아, 필리핀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이곳의 학군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고 여겨진다. (물론 모두 상대적이다) 인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위치한 시애틀 동쪽의 Redmond 지역은 학생들의 수학 실력의 평균이 높아 그들이 다니는 학교 순위도 높다.

그런데 과연 1990년대 사쿠라이, 쿠와타, 오자키, 마츠다, 미야자와 등 그 많은 일본 친구들은 모두 일본으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시애틀, 벨뷰에서 아님 주변 도시에서 나이 먹어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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