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중인 소설 일부
어제 들어와서 남자친구와 며칠 만에 통화를 했었는데... 어떻게 통화를 끝내고 잠들었는지 기억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가채점도 아직 하지 않았다. 세 번째 시험이었지만 마음의 갑각이 아직 다 여물지 않은 모양이다. 두렵다. 남자친구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일부러 배려하느라 묻지 않은 거겠지. 이런 데선 쓸데없이 단단하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먹고살기 빠듯해서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어린이날도, 크리스마스도, 내 생일도 부모님께서는 신경 쓸 틈이 없으셨다, 아니, 바빠서 신경 못쓰신 거겠지 하며 마음을 단련했다.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때 트리 밑에 부모님들이 놓아둔 선물 중에 내 것만 없어서 선생님들이 대신 챙겨준 것도, 학교에서 소풍 갔을 때 김밥 안 싸주셔서 저금통에서 오백 원을 꺼내 빵 하나를 사 먹은 것도 다 괜찮았지만, 한 번은 실패한 적이 있다. 4월 2일, 아홉 살 내 생일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으면서 9월 13일인 여섯 살 동생 놈의 생일은 챙겨주었을 때다. 챙겨주었다는 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아무 말 없이 아침 상에 미역국 하나가 올라와 있던 게 다였다. 꼴랑 미역국 하나에 눈물이 났다. 그때만큼은 내 생일 땐 바빴지만 오늘은 좀 덜 바쁘셨나 보다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나와 동생이 뭐가 다르길래. 스물네 살 대학을 졸업하던 날 물어봤다. 너는 첫 아이라 아직 익숙하지 않았는데, 동생을 낳아보니까 그제야 애가 귀엽다는 걸 알겠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집안 형편이 조금 풀리고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일이다. 나만이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내일이 내 생일인 게 이제야 떠올랐다. 남자친구는 연락이 없다. 부담 주기는 싫고, 남자친구에게서 무언가 기대하기는 더 싫다. 기대를 하는 만큼 나에게 상처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기운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내 마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해서 접어 두었다. 술자리에서 너네는 왜 만나냐 했던, 장수생의 말이 떠오른다. 사실 이렇다 할 이유는 없다. 연인들은 저마다 운명적인 만남을 이야기하곤 한다. 운명론만큼 생각 없는 것이 없다. 다 그렇게 되기로 정해져 있었다는 이야기. 나는 이렇게 되기로 정해져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 괴롭다.
고시촌의 생활은 좁고 단조롭다. 한 치수 작은 옷을 계속 입고 있다, 생각을 하면 된다. 두 평 반의 공간에 침대와 책상과 화장실이 가능했다. 타이머를 켜고 공부를 시작한다. 책장이 넘어 갈똥 말똥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네 시간을 앉아있었다. 바람을 잠시 쐬러 나간다. 사람들이 복잡하게 지하철을 드나들고 초등학교 저학년 애기들은 하교를 하는 시간이다. 자동차들은 도로를 빠르게 지나가고 종종 비행기도 날아간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지만, 사람들과 한번 뻑적 지게 놀아보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기상 스터디(아침에 서로 기상했는지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모여 확인하고 헤어짐)라도 해볼까 하여 시작했다. 아무 말하지 않더라도 아침에 사람들을 만나니 좋았다. 문제는 밤이었다.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양팔을 벌리면 닿을 것만 같은 양쪽 벽도 불을 끄면 경계가 사라졌다. 눈을 감아도 떠도 온 우주에 나밖에 없다. 미역국을 먹는 동생이 떠오르고, 너 때는 어색했다는 부모님의 멋쩍은 미소가 떠오른다. 찾아보니 취침 스터디(늦게까지 깨어 있었는지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모여 확인하고 취침하러 감)도 있었다. 밤이라는 정서 때문에 기상 스터디보다는 취침 스터디 사람들에게 왠지 정이 갔다. K라는 사람도 취침 스터디에 있었다. 첫 번째 공무원 시험을 치른 날 취침 스터디에선 술 마실 사람들을 모집했고, 나도 거기에 참석했다.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고, 그간의 사회적 욕구를 분출했다. 장수생들은 다들 무표정했는데, 나만이 그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를 썼다.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으면 왠지 나 때문인 것 같아 그랬다. 필름이 끊겼고 눈을 뜨니 K가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아직 깜깜했다. 원래의 나라면 깜짝 놀라 그 공간을 벗어났을 테지만, 돌아갈 두 평 반의 우주가 떠올라 그냥 옆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K도 나 때문인지 이윽고 깨어났고, 나를 잠시 쳐다봤다.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치고 이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삶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가 나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나의 우주에는 한 사람이 늘어, 총 두 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