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간

누구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by 반나무

옥상 창고를 정리하다 아코디언처럼 접힌 빨간 터널을 발견했다. 집은 좁은데 구름이 물건이 자꾸만 늘어나니까 그중 몇 개를 엄마가 옥상에 숨긴, 아니 처박은 것을 내가 찾아낸 것이다.


‘구름이가 터널 좋아하는데' 3개의 작은 터널이 연결된 길쭉한 터널을 거실 한가운데 촤-악하고 펼치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난 구름이가 본능적으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요지부동이다. 터널 끝자락에 얼굴을 들이밀고 이름을 불러도, 터널을 이리저리 끌어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구름이만의 동굴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구름이는 작은 몸을 이용해 어디서든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어떠한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을 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옷장 위 구석에 숨어들고,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 수 없지만 옷장 속에서 스르륵 나타나기도 한다. 옥상에서도 함께 즐거이 놀다 혼자 있고 싶어지면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옥상 지붕 위로 사라지더니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집에 가고 싶다 소리치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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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은 시간, 구름이는 사람의 손길이 닿기 힘든 지붕으로 올라간다


살다 보면 혼자 있고 싶어지는 순간이 문득문득 생겨난다. 회사에서 에너지를 다 쓰고 돌아와 더 이상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어 지는데 엄마가 뭐 해달라며 부탁을 하는 순간, 같은 문제로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는 말씨름을 해야 할 때, 나의 취향으로만 공간을 채울 수 없을 때 등등.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는 따사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 온기가 내 몸에 전달되어 오는 것만으로 지긋지긋하기도 하다. 그럴 땐 유연한 작은 몸집이 부럽다. 어디서든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나만의 공간’이란 글자를 마음속으로 따라 읽으면 갓 구운 빵의 달콤한 냄새가 어디선가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나의 오래된, 그렇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 돌이켜보면 6살 아래 동생이 태어난 이후 오롯이 나만 쓸 수 있는 공간을 나 또한 가져보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다. 엄마, 아빠는 왜 하나의 방을 공유하는지. 명확한 나의 바운더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어린 시절 내 시각에서 결혼을 참 별로인 일로 만들기 충분했다. 이제는 모두가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살 수 없게끔 하는 한국 집값이 문제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나는 동생들-한 명은 인간이고, 한 명은 고양이다-과 방을 나눠 쓴다. 각자의 영역을 똑 부러지게 구분할 수 없는 작디작은 방이라 서로의 빛과 소음 공해가 잦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생활 스타일이 달라 적당히 영역을 설정해 두면 크게 티격태격할 일이 없다.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랜 분투의 시간이 있었다.

여전히 나만의 공간을 꿈꾸지만 우리도, 구름이도 주어진 공간 안에서 필요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서로의 필요를 지켜주는 방법을 배워 나가는 중이다. 동생은 공간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나의 물건들과 점점 늘어나는 화분 그로 인해 매일 6시에 켜졌다 11시에 꺼지는 식물등을 견뎌주고 있고, 나는 와식생활자인 동생을 위해 침대생활을 쿨하게 포기했다. 구름이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공간에 들어가 쉬고 싶을 때 명확히 요구한다. 옷장 문을 열라고. 오늘도 굳이 굳이 옷으로 꽉꽉 차있는 옷장에는 왜 들어가겠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옷장 문을 열어둔다. 동시에 내 마음에는 안내멘트가 재생된다. ‘지금은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조정 시간입니다.’


사진_나만의공간4.JPG 작은 틈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고 보는 구름이가 이따금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