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딱 한 번의 강렬한 기억. 낮잠을 자고 있던 어느 평일의 오후. 저만치 떨어져 이불 위에서 자던 구름이가 갑자기 내게 다가와 가슴팍에 꾹꾹이를 하며 공간을 만들더니 이내 품으로 쏙 들어와 안겼다. 내게 안겨 그르렁 거리며 자는 구름이가 혹여 깰까 움직임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던 그 순간, 내 안에는 기쁨의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구름이에게 가까운 사람, 믿을만한 존재가 되었구나 하는 감격 말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구름이는 이불 위로 걸어와 꾹꾹이를 하며 잘 공간을 마련한다. 오른발, 왼발 번갈아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그르렁 거리다 이내 찬찬히 눈이 감긴다. 만족감을 나타내고,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행동이라는 꾹꾹이는 새끼 고양이가 모유를 먹을 때 젖을 잘 돌게 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어미 배를 양손으로 누르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깊은 잠에 들 때까지 발놀림을 멈추지 않는 구름이를 보고 있으면 이 예쁜 아이를 낳은 엄마는 누구일지 저절로 궁금해진다. 지인들이 구름이 정말 예쁘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집사인 내가 봐도 미묘(美猫)는 미묘다. 구름이의 엄마는 이 예쁜 아이를 품에 안고 혀로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 준 적이 있을까? 구름이는 엄마의 얼굴을 기억할까? 도시의 사는 고양이는 뭐 하나 자신의 맘처럼 되는 게 없었을 것이다. 엄마와 헤어진 것도, 길에 나온 것도, 우리 집에 온 것도… 그래서일까 산책을 하며 이리저리 킁킁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면 추억의 냄새를 찾아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고, 그르렁 그르렁 소리를 내며 꾹꾹이 하는 모습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기억을 꾹꾹 눌러보는 다듬이질 같아 마음이 찡하다.
시간, 장소, 소리, 냄새…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잠재우는 수많은 감각. 언젠가 부친상을 당한 지인을 만나러 갔던 날, 나는 한 번도 뵌 적 없는 그의 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또 한 편으로는 원망했다. 바쁜 일상에도 기일을 깜빡하는 일이 없게 수많은 날 중 어버이날을 고르셨다. 그는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전보다 더 많이 죄송하고, 슬플 것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 곳곳에 그리움이라는 점을 찍을 것이다.
나에게는 특정 장소를 통해 소환되는 사람이 있다. 초3, 진해 군항제를 시작으로 틈만 나면 손자녀들을 데리고 국내 곳곳을 여행하셨던 할아버지. 덕분에 함께 갔던 여행지에 갈 때면, 아니 여행이라는 행위를 할 때마다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이제는 2시간이면 도착하는 목포행 KTX 안에서는 가도 가도 끝나지 않아 지루했던 10시간의 기차여행이, 경주에 갈 때면 성큼성큼 남산을 오르시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강화에 갈 때면 직접 운전을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추억은 이렇게 저마다 다른 모양새로 쌓이고, 그리움이 필요할 때 꺼내 먹을 수 있는 조각이 되며, 그리움이 짙어질 때 마음에 위안을 주는 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모님과는 이러한 추억이 많지 않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셨고, 집에는 나와 동생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가족 여행은커녕 다 함께 잠시 외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각자의 삶이 바쁘니, 각자의 취향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보낸 시간에 구름이의 꾹꾹이는 작은 균열을 만들고 조급함을 심어 주었다. 훗날 나는 무엇으로 엄마, 아빠를 추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말이다.
다행히 우리는 구름이 덕분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조금 늘어났고(대부분의 대화가 구름이에서 구름이로 끝난다), 구름이가 만든 작은 균열을 메꾸는 가족 이벤트도 하나씩 해나가는 중이다. 이런 시간들이 한 겹 한 겹 쌓여 훗날 그리움이 필요한 순간 한 입 꺼내 먹을 수 있는 디저트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도, 구름이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