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빌라이웃들

기꺼이 참아주는 마음

by 반나무

"구름이는 가족들 오는 때를 어찌나 기가 막히게 아는지- 시간 맞춰 맨날 야옹야옹 열심히도 우네."

옆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께서 첫 번째 귀가 집사를 기다리며 현관문 앞에서 목청껏 우는 구름이를 보고 하신 말씀이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타박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집에는 계단 오르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열심히 짖는 말티즈 미미가 살고 있다.


20190617_001.JPG 구름이는 집사들의 귀가 시작이 다가오면 현관문 앞에 자리를 잡는다.


지하 1층과 지상 4층, 총 15 가구가 살고 있는 붉은 벽돌로 감싸진 1동짜리 작은 빌라. 이곳으로 이사와 20년 넘게 사는 동안 이웃의 반 정도가 바뀌었다. 요즘은 이사를 왔다고 떡을 돌리는 시대도 아니기에, 바뀐 이웃의 얼굴을 몇 년 넘게 알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올해, 얼굴을 알고 인사를 나누는 이웃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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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와 미미는 나름 친한 사이다


이러한 변화는 구름이와 함께 집 밖으로 산책을 하면서부터다. 구름이가 옥상을 산책하 듯, 옆집 미미도 하루에 몇 번이고 옥상을 오른다. 둘은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종종 같이 뛰어다니며 논다. 옥상에서 상자텃밭 지분이 가장 많은 것도 구름이네와 미미네다. 아랫집 아주머니께서도 몇 개의 화분을 가꾸러 종종 옥상을 찾으시고, 장독대를 점검하거나 빨래를 널기 위해 2층 할머니께서도 가끔 오신다. 그러면 이번에 그 집 토마토가 잘 되었네요, 올해는 뭐뭐 심었어요 하며 서로의 농사에 기꺼이 참견하기도 하고 필요하면 우리 집 고추, 상추 가져다 먹으라며 마음을 베풀기도 한다.


20220516_별것없는휴무일지11.JPG 옥상텃밭에 작물이 점점 늘어난다


이따금 구름이가 전력질주로 뛰어나가 집 앞에 주차된 차 밑으로 숨어버리면 우리를 대신해 찾으러 가거나, 빌라 현관 밖으로 못 나가게 문을 닫고 우리가 내려오기를 기다려주는 이웃들도 있다. 빌라 앞 화단에 심긴 식물이 자라나는 향과 차 타이어 고무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고 있으면 외출하는 이웃도, 귀가하는 이웃도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넨다. 그럼 구름이는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집집마다 놓인 택배 박스를 정성스레 탐지한다. 이 관계성을 가만히 보고 있는 내 마음에는, 새벽 2시에도, 5시에도, 저녁 6시에도... 수도 없이 빌라 복도를 울리는 구름이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기꺼이 참아주는 빌라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과 정겨움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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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는 이따금 다른 집 앞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계단 오르기가 힘들면 남의 집 문 앞에 주저 앉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