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로소 사랑을 배웠다.
겨울을 맞아 두툼한 극세사 이불을 장만했다. 새 이불이 마음에 드는지 구름이도 예전보다 더 자주 그 위에서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때론 둥그렇게, 때로는 길쭉하게 잠든 구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얼굴에는 자잘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러다 나무 막대기에 꽂혀 있는 솜사탕처럼 미동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져 그 작은 몸집 위에 손을 올려 움직임을 찾는다. 구름이는 갑자기 자신의 몸에 붙은 손이 불쾌하다는 듯 한 번 째려보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들숨날숨에 맞춰 몸집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잠시 분주해졌던 나의 마음이 평안으로 돌아간다. 미동 없는 잠잠한 모습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은 것은 구름이가 나의 첫 번째 고양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름이가 우리 집에 오기 일 년 전, 우리에게는 오묘한 털색을 가진 러시안블루 고양이가 있었다.
밤밤이. 추석연휴, 커다란 밤송이가 가득 달린 밤나무 아래에서 처음 만나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는 호기심과 애교가 많던 아이였다. 궁금한 물건은 양손으로 축구하듯 주고받다 떨어트리기 일쑤였고, 키보드를 열심히 치고 있으면 놀아달라며 노트북 위에 올랐다. 다만 그는 세상에 태어나 1년도 채 살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복막염이었다. 집사가 된 지 3개월 만에 겪는 일치고는 가혹했고, 우왕좌왕하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다 ‘마음의 준비’라는 말을 결국 듣고야 말았다. 눈은 점점 탁해지고, 잘 먹지 못하고,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우린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결국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그는 눈을 감았다. 후에 밤밤이를 비롯해 흩어진 형제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밤밤이는 하늘에 별이 됐을까?”하고 가끔 엄마에게 묻는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괜스레 마음으로 바라게 된다. 짧은 생이 어디선가 빛나기를.
나는 항상 밤밤이의 꿈이 궁금했다. 내 옆에 누워, 나의 볼록 솟은 배 위에 올라 잠을 청하던 그 모습을 보면 항상 소리 내어 물었다. “밤밤아 너는 꿈이 뭐야?” 하고. 그 작은 몸 안에 엄청난 꿈이 숨어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제는 구름이에게 묻는다. 함께 살아감이 편안한지, 우리가 이제는 믿을만한지. 나는 그것이 자꾸만 궁금하다. 그가 우리 집에 온 첫날이 자꾸만 떠올라서. 불신과 두려움으로 흔들리던 눈동자, 눈치를 살피던 뒷걸음질,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경기를 일으키며 저 멀리 도망가 숨던 모습. 우린 구름이가 태어나 우리 집까지 오는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 길에서 발견되어 병원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행동 하나하나에 상처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보니 그가 가진 사연이 좋은 이야기만은 아님을 지레짐작으로 알뿐. 그리하여 나는 계속해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편안함을 비는 마음으로 머리부터 꼬리까지 쓰다듬으며 오늘은 괜찮았는지, 우리가 이제 믿을만한 존재가 조금은 되었는지.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쓰다듬는 행동과 소리 내어 질문하는 동안 내 안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사랑이다. 추상적인 단어는 언제나 어렵고, 괴롭다. 그리하여 나는 참으로도 오랫동안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가족을 사랑하는지, 친구를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 없어 괴로웠다. 그런데 이 작은 존재를 쓰다듬으며 돌연 깨달았다. 누군가를 향해, 무언가를 향해 질문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사랑임을. 그리하여 오늘도 사랑고백하듯 묻는다. “구름아, 오늘도 편안했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