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걷고 뛰며 나를 찾다

런린이 탈출 대작전

by 반다정 씨


“아이고~ 아이고~”


움직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곡소리가 새어 나왔다. 강렬했던 첫 마라톤의 여운은 온몸의 통증으로 바뀌어 한동안 날 괴롭혔다. 운동과 담을 쌓고 살던 내가 갑자기 장거리를 달렸으니,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풀코스도 아닌 고작 10km 달리고 나서 몸져누운 내 모습에 스스로도 한심함을 느꼈고, 그 죄책감은 곧 운동에 대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뭔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때 디지털카메라 열풍이 불던 시절, 무거운 DSLR과 다양한 렌즈를 들고 출사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도 장비병에 걸려 온갖 리뷰를 뒤적이며 월급을 탕진하던 웃픈 기억이 있다. 러닝에 관심이 생기니 이번에도 똑같이 러닝화, 러닝복, 스포츠 워치, 러닝고글... ‘러닝장비의 세계’가 어느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며칠 동안은 마치 프로 러너가 된 듯 온갖 제품과 내돈내산 리뷰를 탐독하며 검색을 이어갔다. 고작 10km를 준비도 없이 뛰다 걷다 반복했던 내가, 머릿속에서는 벌써 풀코스를 완주한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 허황된 상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건 꼭 필요해!”를 외치며 장바구니를 채워갔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곡소리를 내며 몸을 질질 끌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혹시 지금, 본질이 아닌 겉모습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차차! 지금은 멋진 장비보다 꾸준히 뛸 수 있는 몸이 먼저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복잡한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매일 새벽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처음 며칠은 정말 쉽지 않았다. 다리는 모래주머니를 단 듯 무거웠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몸의 고통마저도 뿌듯하게 느껴졌다.


알람 소리에 두 눈을 찡긋 뜨고 일어나는 아침,

‘그래도 내가 뭔가를 시작했구나.’

그 느낌만으로도 하루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새벽 공기는 상쾌했고, 새벽의 고요함 속에 있는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걷고, 조금 뛰었다가, 숨이 차면 다시 걷고… 어디선가 본 러닝 공식처럼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기록을 세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매일의 루틴을 만드는 것, 그 자체가 내 목표였다. 하루를 땀으로 시작하면 머릿속이 맑아졌고, 마음은 가벼워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닌 내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 있었다. 그 일상 안에서 나는 다음 마라톤을 상상하며 부푼 꿈을 키워갔다.

작가의 이전글01. 달려라! 런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