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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다정 씨 Oct 28. 2023

들숨 날숨의 위력

화가 날 땐 잠시 호흡에 집중해 보자.

우리 가족에게 큰 숙제 중 하나는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이다.

될 수 있다면 원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자는 것이 우리 가족의 암묵적 원칙(?)이고,

"오늘 뭐 먹고 싶어?"라는 숙제가 매일 반복된다.

이거다 하는 음식이 있다면 좋으련만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는 날도 있고,

어떤 날에는 서로 이걸 먹겠다, 저걸 먹겠다... 난리 블루스인 날도 있다.


한 번은 오랜만에 외식 메뉴를 정하다가 

첫째는 육류, 둘째는 해산물로 크게 의견 조율이 어려운 날이 있었다.

오랜 논쟁(?) 끝에 가족 모두의 동의를 얻어, 

육류로 정하고 원하는 식당으로 갔는데 불이 꺼져있다. 쉬는 날이란다.

메뉴를 정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낸 탓에 배가 등에 달라붙어 그냥 근처 식당에 들어가자 했는데

이것도, 저것도 싫다... 

결국 아무것도 정할 수 없으니 집에서 먹자는 날 선 이야기를 던지고는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짜증과 화가 물밀듯이 다가왔다.

아이들의 태도에서, 

쉬는 날이 아닌데 쉬게 된 식당 사장님께도

아이들은 왜 자신밖에 모르나 하는 비난까지...


모든 것에 꼬투리를 잡고,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며 머릿속은 온갖 비난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서로 누군가와 함께 하려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해야 한다며 일장 연설을 하던 찰나에 아내가 나에게 슬쩍 신호를 보낸다.


"오빠~"

아! 내가 화를 내고 있었구나...

순간 놓쳐버린 화가 아이들에게 향하는 것을 알고는 멈췄다.


순간의 감정을 멈출 수 있었던 것은 분노표현에 대한 우리 부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 나면 알아차리고, 잠시 혼자 시간을 갖은 후 진정이 되면 

그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자고 약속을 했고,

그것이 잘 안 될 때는 서로가 알아챌 수 있도록 알려주기로 했다.

내가 화가 난 순간을 잽싸게 알아챈 아내의 표현과 눈빛에서 그 신호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본다.

감정의 출렁임이 점차 줄어든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났을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먹는가 보다, 

서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하 호호 즐거운 순간들을 기다렸는데

그 기회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 같아 서운한 마음에 화가 났음을 확인하고 다시 호흡에 집중했다.


집에 도착해 있는 반찬들을 모두 모아 계란프라이를 넣고 비며 먹으며 서로의 마음도 확인한다.

화를 내 미안한 마음, 서로 원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기대하는 것 등등...

화가 난 순간 놓쳤다 생각했던 가족과의 시간이 다시 돌아와 있음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결국 나의 화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 자신에게 있음을 확인한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잠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상황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그럴 힘이 나 자신에게 있음을 마음에 잘 담아둔다.

단지, 호흡에 집중하는 것. 잠시,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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