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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오 Mar 11. 2022

백범의 '내가 희망하는 나라'

제20대 대선으로 뜨거운 날, 백범 선생의 책을 다시 꺼냈다. ‘내가 원하는 나라’다. 일제가 모진 탄압으로 한민족의 영혼까지 갈아엎으려 능욕을 서슴지 않던 시절, 백범은 무력이 아닌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잠깐, 백범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한세기전 나라 잃은 백성으로 살면서 문화의 힘을 외친 백범의 탁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바로 공존과 공유, 그리고 공감과 감동의 정신을 인류의 가치로 집약한 백범의 시대 정신이 뿌리였다. 백범은 우리 민족이 자강의 힘조차 없어 국권을 뺏긴 민족이었지만 결국엔 강인한 정신으로 주권을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으로 민족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 미래가 바로 우수한 문화를 가진 민족, 독창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가 행복한 나라임을 강조하고 우리 민족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한 세기를 관통한 이 문장은 지금 우리에게 엄청난 울림으로 다가온다. 분열과 모략, 삿대질과 흑색선전이 난무한 한 달여 간의 대선 동안 우리 사회는 밑바닥을 다시 한번 체험했다. 극단적인 분열과 갈등으로 완전히 둘로 갈라진 사회가 우리의 민낯이라는 사실을 세계만방에 고했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지만 몇 마디 말과 구호로 갈라진 사회는 통합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대선 동안 모든 후보는 한결같이 성장과 분배, 4차산업과 신성장동력, 그리고 AI 이야기를 미래의 과제로 풀었다. 어떤 후보도 우리의 미래에 문화강국이라는 가치에 방점을 두지 않았다. 그저 문화는 들러리가 돼 옷을 입히고 감싸 안아주는 이벤트성 공약의 하나쯤으로 치부됐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문화는 그런 부류였다. BTS를 팔고 기생충과 미나리를 언급하며 오징어 게임을 흘리면서도 한류와 K 콘텐츠는 주류가 아니라 액세서리의 하나로 잠시 걸치고 지나칠 뿐이었다. 선거를 기획하고 공약을 다듬는 이들에게 문화는 그냥 양념이었다. 문화가 가진 힘, 그 저력을 꿰뚫지 못한 리더는 미래를 볼 줄 모른다. 백범이 한 세기 전에 외친 문화강국의 구호가 오늘의 시대정신으로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사용법을 몰랐다는 게 정답이다.         



  

문화의 힘을 어디서 어떻게 펼쳐야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을지를 모르니 꺼내 들 수가 없었다. 한 시대의 리더가 문화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냐 아니냐는 한 국가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바로 전쟁광 푸틴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백범이 한 세기 전 우리에게 문화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나라를 이야기한 것은 지배가 아니라 공감과 공존을 강조한 죽비였다.   



            

대선이 끝나면 곧바로 지방선거가 펼쳐진다. 저마다 지역을 살리겠다고 목젖을 세우는 이들이 두 달여 동안 지역의 곳곳을 누비게 된다. 이들에게 지금 위기이며 자신이 위기의 해결사요 미래는 자신과 함께해야 번영이 보장된다고 웅얼거릴 것이 뻔하다. 오래된 레코드판을 돌리듯 똑같은 단어와 똑같은 깃발이 난무할 세상이 이젠 그저 지나가는 통과의례로 보일 지경이다. 왜 우리 사회의 리더를 뽑는 선거는 이 모양이 됐을까. 대통령을 뽑는 선거든 지역의 리더를 뽑는 선거든 하나같이 자신이 도깨비방망이를 든 것처럼 능력자로 변신하고 뒤로는 패거리와 흑색선전으로 무장하는 구태는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 정치가 여전히 김두환식 똥물 정치 수준에 머무는 것은 정치가 그저 생계형이 됐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정치 이벤트를 제대로 이용해 권력을 쥐면 함께한 패거리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패거리 정치가 반세기 한국 정치를 관통한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의 정치다. 뿌리에 인문학적 소양과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적 소양을 갖추지 못했으니 리더의 겉옷과 분칠에 발정 난 수컷처럼 흥분만 했을 뿐이다.    



       

인문학적 소양과 문화적 내공은 상대를 제압하고 무너뜨리는 승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함께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그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맞설 뿐이다. 그 치열함 속에서 새로운 길을 함께 열어가길 권하는 것이 리더의 덕목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지난 한 달간 가장 극명한 대립의 실상을 체험했다. 함께 나아갈 상대는 없고 오직 타도와 멸시의 대상인 상대만 존재하는 둘로 쪼개진 사회의 민낯이다.                   



  

선거만 되면 그래도 통합을 외치던 과거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너만 빼고 다 된다’는 식의 갈라치기가 공식 문장으로 내걸릴 정도였다. 바로 우리 사회가 이제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는 징표였다. 우리 편의 이야기는 모두가 옳고, 우리 편이 아닌 자들의 주장은 모략과 음모에 불과하다는 식의 살벌한 문장이 일반화됐다. 잠시 생각이라도 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보수나 진보 모두에게서 이분법은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터져 나오고 있다.   



                  

조선조 말 다산은 리더에 대해 이런 경구를 남겼다. 청렴하고 좋은 인재를 구하라, 공부하고 겸손하며 소통하라.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문화의 힘을 끈으로 연결하라. 물론 목민심서에는 없는 필자의 재해석 판이다. 오늘 대한민국 새 리더로 뽑힌 당선자와 유월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자들이 함께 새겨야 할 죽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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