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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오 Mar 12. 2023

울산여지도 蔚山輿地圖  2

언양, 1만년 전 바다였던 비밀의 땅



깨끗한 언양물이 / 미나리강(꽝)을 지나서 / 물방아를 돌린다 // 팽이같이 도는 방아 / 몇 해나 돌았는고 / 세월도 흐르는데 / 부딪치는 그 물살은 / 뛰면서 희게 웃네…


 가곡 물방아 가사의 일부다. 스스로 언양의 주산 화장산을 뒷배로 화장산인이라 부른 정인섭 시인의 가사에 작곡가 김원호가 선율을 띄웠다. 필자는 이 노래와 묘한 인연이 있다. 10여년 전 언양의 한 식당에서 공무원 몇몇과 식사를 마치고 읍성 쪽으로 걷다 이 노래를 불렀다. 도랑가에 설핏 몽글거리며 올라오는 미나리가 눈에 들어온 탓이다. 그런데 노래 한 소절이 끝나자 공무원 한사람이 방금 부른 노랫말을 다시 읊어달라고 청했다. 울주가 고향이지만 처음 들어봤다며 무슨 노래인지 알려달라는 주문이었다. 가곡하면 18번으로 부르던 산들바람과 그 산들바람 때문에 알게 된 물방아는 필자가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곡이지만 그 뿌리가 언양이라는 것은 울산 공부를 하면서 알게된 사실들이다. 


 바로 그 물방아가 지난 7월1일 울산광역시장 취임식 자리에서 울려퍼졌다. 일제의 부역자라며 친일반역행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행적과 작품을 지우기에 열중했던 일부 인사들은 귀를 막고 싶겠지만 그날 취임식 축하공연의 꽃은 단연 물방아였다. 노랫말에 나오듯 언양에는 맑은 물이 지천으로 흐르고 미나리꽝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깨끗한 언양물이 흐르는 남천을 거슬러 오르면 언양의 진산인 고헌산과 영남알프스 아홉봉우리가 병풍처럼 버티고 섰다. 가히 웅장한 배경이다. 바로 이 땅이 울산의 시작이자 한반도에 흘러든 인류가 최적의 터전으로 점지한 장소다.


 고고학을 공부하다 보면 인류가 문명의 흔적을 남기고 이를 발전하는 과정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이론과 만나게 된다. 그 주류가 전파설과 자체발생설이다. 전파설은 문화의 기원이나 전달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문화 집단간의 접촉에 의한 전파의 역할을 강조하는 학설로 지난 반세기 동안 고고학의 주류로 인정됐다. 반면에 자체발생설은 전파가 아니라 일정 장소에 머무는 집단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문화적 산물을 만들어 냈다는 주장이다. 최근들어 자체발생설은 신진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로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어느쪽도 절대적 우위에 있는 학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문제는 인류 집단이 남긴 증거다. 


 언양은 고헌산을 진산으로 하는 울산의 오래된 터다. 언양의 옛지명이 헌양인 이유도 고헌산의 헌자와 사람살기 좋은 양지라는 뜻의 양자가 만나 이름이 된 결과다. 지금이야 불고기와 읍성으로 대표되는 관광지로 이름 나 있지만 1,000년 전 언양은 노략질의 땅이었고 그보다 수천년 전에는 동해 물길이 남천 줄기따라 제법 깊이까지 들어온 해변이었다. 이 주장은 경북대 지질학과 황상일 교수의 논문에 나와 있다. 황 교수는 '후빙기 후기 울산만의 환경변화'를 통해 1만년 전에는 울산만은 반구대암각화 일대까지 바다의 영역이었고 수심 15~30m의 얕은 해변에 취락이 분포했다고 주장한다. 후빙기 이후 한반도 동남 해안은 수온이 적당하고 기후가 평온해 해초나 육상식물의 생육이 활발했고 이는 육상생물과 해양생물의 천국이 되기에 필요충분한 조건이 됐다. 


 먹이가 풍부한 울산만 일대는 당연히 고래천국이었고 선사인들은 자신들의 몇 배나 되는 고래를 먹이로 이용하려는 궁리를 하다 얕은 수심의 울산만 내륙으로 고래를 몰아가는 몰이식 고래잡이를 고안해 냈다는 추론이다. 이른바 '고래몰이 사냥법'이다. 바로 그 증좌가 언양의 대곡천 골짜기 모퉁이에 새겨져 있다. 반구대암각화다. 영남알프스 아홉봉우리를 뒷배로 품은 언양의 불과 1만년전 모습이다. 이 정도의 추론이 사실이라면 울산에서 한반도 인류가 대륙문화와 해양문화를 제대로 버무려 독특한 문화유전인자를 만들어 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반구대 바위그림을 주목해 보자. 수렵과 사냥으로 웅비하던 북방인류의 흔적이 절반이다. 고래를 잡던 해양문화와 호랑이를 때려잡던 북방의 기개가 왜 하필 구곡계곡에서 절묘한 만남을 했을까. 의문은 의문을 낳아 오래된 미래와 만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울산은 동쪽 무룡산부터 서쪽 문수산까지 한반도의 광활한 산자락이 동해로 뻗어가는 형상이다. 그 뒷배경에 영남알프스 아홉 봉우리가 버티고 있고 1,000m 이상의 아홉 봉우리에서 굽이친 다섯 자락의 강이 동해를 향해 내달리는 형세다. 


 조선조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는 양택의 조건으로 4가지를 꼽고 있다. 지리(地理)와 생리(生利), 인심(人心)과 산수(山水)다. 이 네가지 조건은 일부러 따지는 게 아니라 좋은 곳에 살다보니 그 조건과 일치한다는 편이 정확하다. 지리는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생리는 누구나 탐을 낼만한 터를 말하고 인심은 그 터에 자리잡은 사람과 식생의 조화를, 산수는 주변 산자락의 모양과 물길을 이야기 한다. 그 중 첫째는 물이다. 물이 없는 곳에 사람은 없다. 언양은 바로 그 네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땅이지만 물이 흘러 떠 있는 형상이기에 태화강으로 연결되는 남천 하구에 물막이 인공산을 만들었다. 바로 조산배기다. 그 인공산이 튼튼할 때는 변고가 적었지만 무너지고 떠내려가면 재앙이 찾아왔다. 백가천가(百家千家)가 모여 새로운 것을 잉태하려면 물길을 다스려야 한다는 지혜였다. 그 흔적은 지금도 언양 땅 곳곳에 남아 있다. 바로 그 사람들의 지혜와 풍수가 만나 인물을 낳았다. 고려장군 김취려와 나주출신 김천일이라는 걸출한 장군부터 신격호와 조용기,오영수와 송석하, 그리고 신고송과 정인섭까지 재벌과 장군, 학자들이 무수히 나온 길지다. 조일전쟁 때 라도(羅道)를 호령했던 김천일 장군은 나주 출신이지만 뿌리는 언양이다. 마지막 한가지 덤. 언양주변 10리는 울주 7봉의 길지로 20세기 이후 3명의 인물이 난다는 설이 떠돈다. 재계와 종교계의 두 인물이 나왔고 아직 나오지 않은 한 인물은 언제 어디서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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