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집 구할 거야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12]

by 반년작가

1평 남짓, 작은 숲

: 중고 신입 식집사 이야기 [12]


엄마, 나 집 구할 거야




“엄마, 나 집 구할 거야.”




부동산 아줌마를 따라다니며 대여섯 군데 방을 본 후 그중 가장 끌리는 곳으로 골랐다. 회사 근처에 소형 평수 아파트 전세를 얻은 나는 2020년, 그렇게 생애 처음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의 반대와 걱정도 많았고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집에 살림살이들을 부랴부랴 채워 넣느라 이사 온 후 몇 달 내내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개성 있는 나만의 자취방을 완성해 보겠다며 호기롭게 덤벼든 셀프인테리어는 막판에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겨우 해나가다가 마침내 계획한 걸 전부 다 해내면서 끝이 났다. 진짜 내 집이 생기면 그때는 돈 많이 벌어서 인테리어 업자에게 돈 주고 전부 다 맡겨야지…라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웬걸, 초보자가 한 것치곤 셀프인테리어 완성도가 제법 높아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내가 꿈에 그리던 첫 자취방에 필요한 살림살이들도 모두 갖춰놓았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노란 조명 아래,

드디어 '즐거운 나의 집'이 되었다.



그러나 자취방이 온전한 집의 모습을 갖추었을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허전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따뜻한 집안 분위기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집 안 구석구석을 채워주어 분명 허전할 틈이 없는데도 뭔가 삭막했다. 자유로운 나 홀로 라이프에 겨우 숨통이 트이면서도 나는 외로웠다. 부르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수 있는 동네 친구 하나 없는. 미우나 고우나 평생 부대끼고 산 가족들조차 없는. 사실은 아무 연고 없는 이 낯선 곳에 나 혼자 떨어져 있기 싫었다.



그런 내 허전한 마음을 포근히 감싸준 건

의외로 엄마의 식물들이었다.



처음에는 식물을 키우는 이유나 식물이 주는 의미와 역할이 뭔지 잘 몰랐다. 흙이 마를 때 물을 주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대체 무슨 재미로 키우는 건지, 식물 키우는 게 왜 취미가 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따뜻한 봄기운에 속아 ‘나도 식물이나 한번 키워볼까?’ 하면 왜 자꾸 내 식물은 시래기가 되어 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쪼르르 달려와 이제야 집에 오냐며 애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감정 표현도 못 하는 식물과 대체 무슨 교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초록빛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난생처음 식물 하나 없는 공간에서 나 홀로 지내보니 초록빛이 주는 안정감을 몸소 깨달았다. 나는 엄마의 식물원이 그리웠다. 태어나보니 식물들이 가득 찬 집에서 살고 있었고, 엄마가 화분 키우는 걸(엄마만의 표현법이다) 좋아해서 우리 집은 늘 초록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도 하나면 됐지, 왜 몇십 개씩 키우는 건지 항상 의문을 들었다. 정글과 같은 우리 집 풍경에 늘 그러려니 했고, 꾀죄죄한 주말의 몰골로 발코니 문턱에 걸터앉아 멍하니 화분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 또한 익숙했다. 화분을 키우는 건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오롯한 엄마의 취미였다. 그렇기에 녀석들과의 동거는 온전히 내 선택이 아니었다. 엄마의 식물들은 뭐랄까, 어디를 가도 항상 있는 ‘당연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녀석들의 소중함을 미처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연약해 보이는 이 작은 생명체는 그저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나를 단단하게 지지해 주었다. 멀리 떨어진 물리적 거리를 심리적으로 가깝게 좁혀 주면서 엄마와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나는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엄마의 취미를 물려받았다.





나는 엄마를 ‘화분 전문가’라고 불렀다. 본가에서 업어 온 우리 집 식물들이 비실거릴 때면, ‘화분 전문가’에게 전화해서 이유를 물어보거나 상담과 치료(?)를 받기 위해 화분들을 조심히 차에 태워 길을 나섰다. 엄마가 우리 집 화분들 소식을 궁금해할 때면 틈틈이 사진을 보내 녀석들의 생존 신고를 해줘야 했다. 나의 생존 보고를 받은 엄마는 깔깔 웃으면서 나를 ‘작은 ㅇㅇㅇ(엄마의 이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엄마의 말에 장난스럽게 반박을 해나가면서 말대꾸를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화분들과 함께였고,

녀석들과의 이번 동거는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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