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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May 20. 2024

참말과 거짓말

조정이 결렬되었다.


나는 당장 3일 뒤인 오늘 지불할 카드값이 없어 마이너스통장 잔고가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내일은 대학원 등록금 납부기한 마지막 날이다. 나는 엄마에게 급하게 돈을 빌리면서 월요일까지 돈을 좀 더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바로 돈을 보내주고 오늘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아 내게 돈을 보내주었다. 

내가 엄마에게 정말 고맙다고 하자 엄마는 무슨 소리냐고, 내게는 우리 딸이 최고이고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엄마가 나를 딸로 만나게 된 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야."라고 말해왔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나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항상 내게 "너도 너희 아빠 같은 남편을 만나 너 같은 딸을 낳아서 죽도록 고생해 봐라."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나 같은 딸을 낳으면 너무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엄마, 대체 무슨 소리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딸을 그렇게 키웠는지 다들 물어보지 않아? 내가 학원 하나 보내지 않아도 알아서 전교 1등만 하면서 옷이나 연예인이나 남자친구에 관심도 없고, 집에서 책만 읽고 교회에서 반주하고 주일학교 봉사하고, 엄마 아빠가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잖아? 내가 엄마에게 원하는 것은 단지 나를 괴롭히지 말고 미워하지 말라는 것인데.. 나는 나 같은 딸을 낳으면 진짜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나는 내가 딸을 낳더라도 나처럼 자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아. 보통 부모들이 자식을 이렇게 키우고 싶어서 죽도록 노력을 해도 힘든 일이야. 내가 주말에 집에 와서 밥 먹는 것 외에는 엄마한테 힘들게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대체 왜 그래?"라고 따졌다.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진절머리를 치며 얼마나 잘난 척을 하고 정 떨어지는 말만 하는지, 지가 얼마나 나쁜 년인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욕을 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은 엄마는 진심으로 "반짝아, 나는 우리 딸을 만나서 너무 감사하다. 우리 딸이랑 통화를 하면 내 마음이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우리 착한 딸이 최고다. 너만 잘 살면 엄마는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 내가 나중에 너 힘들게 하면 안 되니까 열심히 일도 하고 건강도 잘 유지해서 꼭 죽을 때 너한테 모든 것을 다 물려주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할게."라고 말한다. 


나는 그때도 진심이었고 지금도 진심이다. 내가 한 말이 그때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할지라도 이후에 내가 행동으로 증명을 했기 때문이 참말이 되었다. 반대로 처음에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이후에 행동으로 그 말을 저버리게 되면 그 말은 참말에서 거짓말로 바뀌게 된다. 전남편이 내게 처음에 한 약속들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한 참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본인의 행동으로 본인의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게 약속을 했다면, 그 말을 참말로 만들어나갈 수 있게 계속해서 믿어주고 기대하고 행동을 촉구해야 한다. 


자폐에 걸려 병원에 있는 내 동생은 최근에 아빠에게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아빠를 먹여 살리고 싶어서 공부를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얼마나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하지만 이 말이 귀엽기만 한 말이 아니라 본인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면 진짜로 실현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아빠가 "괜찮아. 그런 공부는 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니 동생이 시무룩해했다고 한다. 나는 아빠에게 "걔가 무슨 공부든 하게 되면 머리가 맑아지고 깨어나서 나중에 편의점이나 카페에서라도 일할 수 있게 될지도 몰라. 너무 순진해서 걱정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좋은 고용주를 만나게 해 주시면 아무 걱정이 없어.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해 보자."라고 말하고, 동생의 전화를 받았을 때 공부는 무엇이든 간에 도움이 되니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신난 동생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이 씁쓸하거나 걱정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만 하면 동생의 말이 진짜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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