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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Jun 03. 2024

하나님의 자녀

우리 아버지는 시골 목사였다. 일반적인 시골이 아닌 정말로 영화 ‘집으로’의 할머니 집 같은 산골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교회를 옮겨 다녀 나는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다녔다.

시골 교회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텃세와 싸움과 교회 재산이 엉뚱한 사람 명의로 되어있는 등등의 문제가 많았고 아빠는 그런 일들을 하나도 봐주지 않고 칼같이 처리하고 교회를 나오곤 했다. 교인들의 반발에 쫓겨나기 전에 그만두기도 했었고 노회에서 목사들 간의 정치질에 참여하지 않고 꼿꼿이 버티다 내쫓긴 일도 있었다.

누가 아빠의 설교를 꼬투리 잡아 이단으로 공격을 하려 했기 때문에 설교를 모두 녹음해서 테이프로 제작해 놓아야 했던 적도 있다. 교회 재산을 개인이 아닌 교회 명의로 바꿔놓자 앙심을 품은 사람이 아빠를 쫓아내기 위한 서명을 교인들을 찾아다니며 받아내었다. 일요일에 동생이 갑자기 아파서 엄마가 동생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가는 모습을 보고 교인들은 사모님이 돈독이 올라서 일요일에도 일을 하러 간다며 소문을 퍼뜨리고 욕을 했다. 7년간 목회를 하며 심혈을 기울여 겨우 세력다툼을 잠재워놓고 났더니 교인들이 누구누구는 권사, 누구누구는 장로로 세워달라는 목록을 작성해 아빠를 찾아왔다. 아빠가 그 요구를 거절하자 7년간 정식 담임목사로 세워주지 않고 임시목사로만 두었던 것을 이용해 당장 아빠를 내쫓아버렸다.


나는 이런 모습을 주구장창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이 교인들의 수준에 정말로 환멸이 났다. 나는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예배가 끝난 뒤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기 싫어서 모두가 나간 이후에 교회를 빠져나왔다. 교회에서 밥을 먹지도 않았다. 이런 나에 대해 엄마는 불만을 강하게 품었다. 목사님 딸이 교회에서 어른들에게 식사할 때 반찬도 퍼드리고 해야 하는데 살갑게 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목사 딸이라는 이유로 왜 그런 일을 해야 해? 아빠는 원해서 목사가 되었고, 엄마도 원해서 목사와 결혼한 것이지만 나는 태어나보니 목사 딸로 태어난 것이지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닌데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해? 그리고 나는 목사 딸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잖아. 나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엄마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교인들도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다 똑같은 입장인데 다들 잘해야지 왜 나만 특별히 잘해야 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보다 목사의 딸인 것이 엄마에게는 더 중요해? 하나님에게는 똑같은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엄마는 사람들 시선 때문에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잖아. 내가 엄마 딸이라고만 생각하지 마. 나는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딸이야. 엄마는 나를 낳았을 뿐이지만 나를 만드신 건 하나님이잖아. 엄마한테는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어. 오히려 하나님의 딸에게 그런 강요를 했다고 하나님한테 혼나게 될걸?”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따박따박 반박을 하며 말싸움을 다 이겼기 때문에 우리 엄마는 분통이 터져 어쩔 줄 몰라했다. 얼마나 잘난 척하고 싸가지가 없는지 너무 똑똑한 것도 문제라는 말을 하면서도 엄마는 나를 이기지 못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내가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불효녀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 있는데 나는 실질적으로 기본적인 엄마로서의 돌봄과 양육을 엄마에게서 거의 받지 못했다. 우리 막내동생은 가정위탁으로 들어온 아이인데 그 애는 나라에서 지원금이 나왔기 때문에 나보다 사정이 훨씬 나았다. 나는 나라에서 책임지는 고아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다. 엄마는 옷은 물론이고 샴푸, 양말, 속옷, 위생용품 등을 사 달라는 나의 요청에도 극도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모든 세뱃돈을 모조리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고등학교 올라갈 때 가방과 신발, 겉옷을 샀다. 고등학교 때는 아빠에게 받은 차비를 모조리 모아두었다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 노트북을 샀다. 학교에 내야 하는 등의 꼭 필요한 돈은 아빠에게 요청하면 주었지만 그 외에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돈들은 엄마에게 부탁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내가 알아서 해야만 했다. 그래도 나는 알뜰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살아나갔다. 시골이라 따로 돈을 쓸 일도 없었다. 내가 학창 시절 엄마에게 신세진 것은 교복을 세탁해 주는 일과 가끔씩 차를 태워주는 일, 그리고 주말에 집에 왔을 때 밥을 얻어먹는 것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엄마가 너무나 내게 욕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나는 밥도 가능하다면 먹고 싶지 않았다. 밥을 너무 먹지 않아 중학교 시절 내 체중은 39kg로 누가 봐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지금 내 키가 165cm로 작은 키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말랐던 것이다. 집에는 나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쓰는 책상 하나와 내 옷이 들어 있는 옷장 서랍 하나가 전부였고 이 집에 여자아이가 살고 있다는 흔적 자체가 없었다. 아마 60년대 식모살이를 했어도 나보다는 처지가 나았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는 꿋꿋이 내 방을 혼자 쓰겠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대학을 가니 내 방이 없어져버려 힘든 학교생활을 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나에게 엄마아빠는 따로 자야 하니 나는 부엌 바닥에서 자거나 상가 사무실 소파에서 자라고 말했다. 정말 신데렐라나 콩쥐가 따로 없었다. 이런 내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키워준 은혜’ 라거나 ‘그래도 엄마’ 같은 소리를 하면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보살펴준 은혜 따위를 생각해 엄마를 용서한 것이 절대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계모가 아닌지를 의심했고 엄마와 내가 눈썹에 똑같은 점이 있다는 것에 좌절했다. 나는 내가 알아서 컸다는 말에 우리 부모님은 아무런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내게 들어간 돈보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받아온 장학금이 오히려 더 많았을 것이다. 정말로 나는 남의 집에 얹혀사는 심정이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웬만해서는 신세를 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가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집 어떤 딸은 부모가 중학교도 안 보내주는데도 공장에 다니면서 부모님께 생활비를 가져다 드리면서 ‘어머니 쓰세요' 라고 효도를 한다더라.” 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면(나는 91년생이다^^) 나는 또다시 엄마가 딸을 운전해서 태워주고 밥을 해주는 것이 그렇게 억울하냐고 이런 딸을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아냐고 당당하게 주장을 했다. 엄마도 외할아버지가 리어카 장사를 하면서도 엄마를 경북대에 보냈고 엄마를 공주처럼 택시만 타고 다니게 키워주었는데 엄마는 왜 외할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내게 베풀지 못하느냐고 혼을 냈다. 내가 집에서 얼마나 신데렐라 같은 대우를 받는지와 상관없이 엄마는 나를 말로는 절대 이기지 못했다.

나는 엄마에게 한 번 선언한 것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열두 살 때 엄마가 시키는 공부를 거부하며 반항한 이후로 나는 고3 입시가 끝나도록 절대로 집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일절 보여주지 않아 엄마는 내가 잠만 자면서 전교 1등을 하는 줄 알고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다. 내가 유치원 때부터 설거지를 하다가 이제 동생들도 나이가 됐으니 설거지를 물려받을 때가 됐다고 선언한 이후로 설거지는 동생들을 넘어 아빠에게 넘어가기까지 나는 절대 집에서는 엄마가 시키는 설거지에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한 번 한다면 하는 사람인 것을 엄마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엄마를 가차 없이 버릴 것이라는 말에 우리 엄마가 벌벌 떨면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부모가 없는 것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다. 이후에도 차라리 내 부모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크게 한탄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굳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하나님께서는 다 책임지셔서 그 어떤 육신의 부모보다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완벽하게 케어되는 삶을 살아왔다. 하나님이 정말 2천 년 전에 예수님 한번 보내주고 성경에 떨렁 해석하기도 어려운 설명을 적어놓고 제대로 믿지 못했다고 탓하며 자신이 지은 자녀를 지옥에 보내는 그런 하나님일까? 우리 아버지인 하나님은 그런 분이 절대 절대 아니다. 과거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율법으로 문둥병자들을 내쫓으라고 명령하셨지만 나는 분명 하나님을 의지하는 환자들을 하나님께서 아주 세밀하게 개인적으로 케어해 주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수많은 하나님의 도움과 보살핌, 기이한 기적들을 내가 어떻게 다 말할 수가 있을까? 이제는 나도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기적 같은 일들이 내게는 일상생활이 되어버려 전혀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말하면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까 봐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훨씬 많다. 이 모든 일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나는 최대한 진실되게 말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진정 살아계시며, 나의 아버지 되시며,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을 믿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로 나는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깨닫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놀라운 삶에 참여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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